수출과 내수의 2대 체감지표가 한결같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는데서 비롯한다.

국내 완성차업계에 요즘 "자동차산업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위기설의 요체는 올연말께 자동차수출이 사상 처음으로 연간 1백만대를
돌파할 것이라는 등 "잘 나가고 있는 외견"과는 다르다는것.

수출에 드리운 그림자는 "엔저". 엔저현상이 일어나면 일본과 경합관계에
있는 이리산업은 거의가 다 좋을리가 없다.

그중에서도 자동차는 특히 그렇다.

그야말로 악재다.

엔화악재가 왜 "수출전선 = 먹구름"으로 작용하는가는 지난 10년간 자동차
수출과 엔화의 환율변동추이를 비교해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엔화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이면 우리나라 자동차수출은 큰폭으로 늘어났다.

이에 반해 약세로 돌아설 때는 어김없이 하향곡선을 그려왔다.

그것도 큰폭으로. 실제로 엔화가치가 달러화에 대해 강세를 유지하던 87년
(1달러=1백23.5엔)과 88년(1백25.9엔) 그리고 93년이후(90~80엔) 자동차
수출은 연간 50만~70만대를 오르내리는 호조를 보였다.

반면 엔화가 달러당 1백35엔대로 떨어져 약세를 면치못했던 89~91년기간중
수출은 30만대수준에 머물렀다.

엔화가치의 변동이 자동차수출에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는 사실은
한국산 자동차가 가격경쟁력 하나만으로 해외에서 버텨왔다는 점을 반증하는
셈이다.

환율변동이 4~5개월의 일정한 시차를 두고 수출에 영향을 미친다는
"J커브효과"를 감안하면 올 연말께나 내년초부터 엔화강세의 약효가 "엔저
극약"으로 반전돼 수출에 비상이 걸릴거란 얘기다.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또다른 징후는 내수기반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90년이후 연평균 15.6%의 신장세를 보여왔던 내수시장은 올들어
지난7월까지 작년 같은기간에 비해 3.6%나 감소했다.

마이너스성장은 2차오일쇼크로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던 지난80년이후
이번이 두번째다.

내수판매 부진은 상반기중에 신차출고가 늦어졌던데도 원인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마이너스로 돌아설만큼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노관호 현대자동차부사장)는게 업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물론 업계는 우리나라 내수시장이 지난해 대체수요(차교체수요)가
신규수요를 앞서는등 점차 성숙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는 "조짐"은 감지해왔다.

성숙단계란 선진국처럼 판매신장률이 연평균 3~4%수준에 머무는등
"저성장시대"로 진입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성숙단계가 업계의 예상보다 너무 빨리 왔다는 게 문제다.

"내수시장은 98년에나 가야 성숙단계로 접어들것으로 내다봤는데 완전히
빗나갔다.

예상보다 3년이 앞당겨지는 모양이다.

(허근무기아자동차 영업본부장)는 평가다.

내수시장이 성숙단계에 들어왔다면 업체들은 그야말로 큰일이다.

"수출"에서의 부침을 버티게 해주는 안전판(내수)이 없어지기때문이다.

"내수 = 안정판"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얘기만도 아니다.

미.일등 선진국업체들이 자랑하는 경쟁력의 뒷심도 사실은 내수시장의
뒷받침에서 나오고 있다.

예컨대 일본은 지난 89년까지만해도 수출에서는 적자를 면치못했다.

그 "출혈"을 보전해준건 내수시장이었다.

내수기반이 있기에 세계 최대의 자동차생산국으로 발돋움할수 있었다.

아직까지 수출에서 이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업계 현실로 보면
"내수"의 중요성은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내수기반이 흔들리면 수출이 무의미할 뿐만 아니라 생존자체가
위협받는다"(백효휘현대자동차부사장).

업계상황이 이런데도 개별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경영환경은 설상가상이다.

당장 삼성과 쌍용의 승용차진출로 2~3년후면 자동차시장은
"춘추전국시대"에 들어서게 돼있다.

더구나 삼성 쌍용 기아 대우등 4사는 "그룹전"의 양상을 띠기까지 한다.

현대까지 포함하면 10위권에 드는 대기업그룹 가운데 5개 그룹이 자동차에
그룹운명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기존업체들이라도 그동안 돈이나 많이 벌어놨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하다.

자동차업체들이 적자상태에 허덕이고 있는 현실만 봐도 그렇다.

지난 상반기만해도 현대를 제외한 대부분 업체가 적자를 기록했다.

구조자체가 "수익이 매출의 2%를 넘기기어려울 정도로 별로 수지가 안남는
장사다" 국내 자동차산업이 이러한 요인들로 인해 위기에 처해 있다면
탈출구는 과연 있을까.

급한김에 "해외시장"에 더욱 매달리는 이외에는 다른 묘책이 없는 것 같다.

현대 대우 기아등 승용차 3사가 최근 동남아 동유럽 중남미지역 등을
중심으로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고 있는게 그 반증이다.

"2000년까지 국내와 해외에서 각각 1백만대를 생산하는 글로벌체제를
구축한다"(김태구 대우자동차사장)는 대우의 전략이 그 좋은 예다.

하지만 이런 해법이 제대로 효과를 낼수 있을지 장담키는 어렵다.

지금처럼 해외에서 단순 조립생산(KD)형태로 생산능력만 확대한다고해서
"생존"을 보장받기는 쉽지않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이 지역보호주의에서 기술보호주의로 전환하고 있는 상황에서
KD진출전략이 언제까지 주요할지 의문" (송병준산업연구원기계연구실장)
이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위기설"을 "낭설"로 돌릴 열쇠는 업계 스스로에
쥐어져 있다는 것이다.

엔진 디자인등 핵심 부문에서 시급하게 독자기술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최근 일부 업체들이 중형차분야에서까지 독자엔진개발에 성공하는 등
꾸준히 기술력을 쌓아가고 있다는 건 일단 반가운 "진전"이다.

위기라는 "설"을 "설"로 메쳐버릴 희망의 빛이 없지는 않다는 얘기다.

< 이성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