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의 직격탄을 받을 것으로 걱정됐던 금융시장은 2년째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

거액의 비실명예금이 금융권을 이탈,시장전체를 교란할 것이란 예상도
초기의 일시적인 징후로 그쳤다.

다만 사채시장이 한동안 위축되면서 사채쪽의 의존도가 높은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심화시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자금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우선 금리.최근 하루짜리 콜금리가 연10%선에서 머무르고 있듯이 명절
월말자금 수요나 은행권의 지준마감일(7,22일)전후를 제외하곤 대체로
안정권에서 형성되고 있다.

콜금리는 실명제 직전 연13.36%에서 1년뒤인 지난해 8월말 법정한도인
연25%까지 치솟았다.

올연초에도 이같은 콜금리의 법정최고행진은 뒤풀이됐다.

그러나 이는 월말자금과 추석 설연휴등 계절적 요인이 겹쳐 발생한
현상이었지 실명제와는 관련이 멀다는 게 자금시장 전문가의 분석이다.

또 3년만기 회사채 유통수익률도 최근 풍부한 시중자금의 유동성을
반영,연중최저치인 연 13%대로 떨어지는 등 6.27 지방자치제 선거이후
통화긴축 불안감을 떨쳐버리고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93년 8월12일 연13.55%였던 회사채 유통수익률은 그해 8월말 연14.50%까지
올랐으나 그후 하향안정세를 유지했다.

이처럼 시중의 돈이 가뭄인지 풍년인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금리지표가
전반적으로 안정세를 보여온 것은 정부가 실명제 실시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통화공급을 크게 늘리는 등 통화정책을
신축적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또 기업체의 자금가수요가 일시적으로 일기는 했으나 전반적으로 급격한
수요가 장기화하지 않는 등 금융시장 안팎의 요인도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실명제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적응속도도 기대이상으로 빠르게 진행됐다.

실명제 이후 크게 늘어났던 현금 통화도 93년10월이후 감소세로 돌아서
작년 2.4분기 이후에는 예년수준을 되찾았다.

현금통화액(전년동기 대비)을 보면 93년9월말중 무려 4조7천4백억원을
기록했으나 같은해 10월에는 1조7천2백억원으로 줄었다.

이후 평년 또는 그이하의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금리 통화등 금융시장의 거시지표는 안정세를 보이고 있으나 중소기업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예상보다 강하다.

금리자유화가 맞물려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은 대출세일을 하러오는
금융기관 사람들로부터 "행복한 시달림"을 받을 정도다.

반면 중소기업들은 정부에서 수조원의 중소기업자금을 특별지원하겠다는
발표에도 불구,돈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등의 중소기업 부도율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양극화 현상이 "경기"와 "자금시장"에서 뚜렷하게
진행되고 있다.

특히 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내년부터 실시된다.

지금까지 금융기관 이탈이나 금융기관간의 상품이동을 자제해왔던
금융기관 금고안의 돈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 벌써 관심의 촛점이
되고 있다.

금융연구원 LG경제연구원등은 최대 14조원의 자금이 금융기관을
이탈하거나 금융권간에 이동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명제이후 예금주의 이름을 감출 수 있는 무기명 거래란 잇점 때문에
돈이 몰렸던 양도성예금증서(CD)나 할인채등이나 절세상품 쪽으로의
자금이동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정구학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