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모TV 9시뉴스에 박성철 신원그룹회장의 이름이 흘러나왔다.

이형구 전노동부장관 관련사건 공판장에 출석하는 기업인 가운데 그의
이름이 낀 것이다.

물론 오보였다.

이 방송국은 보도 직후 수많은 신원맨들의 항의전화를 받고 뉴스 끝무렵
정정보도를 냈다.

신원에서 금품수수와 향응등 불정행위는 최고의 금기다.

약간 게을러도 좋고 업무처리능력이 떨어져도 괜찮지만 "타락"은 용납이
안된다.

그런 그룹의 회장이 엉뚱하게 "뇌물공여혐의자" 명단에 올랐으니 신원인들
이 들고 일어날 수 밖에.

이 그룹에는 "부정 십계명"이 있다.

본의아니게 부정을 저지르는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그 정의를 규정해 놓고
있다.

이 십계명에 따르면 "명절에 구두표등 선물을 받으면 안된다" "돌반지나
축의금을 고의로 유발시키면 부정이다" "항공권 기차표 교통비를 받는 것은
금액에 관계없이 부정행위다".

그동안 회사를 위하는 일이라고 관행처럼 해왔던 "행사 개최시 금품이나
물품찬조 요구"도 응징대상이다.

협력업체나 대리점등에 돈을 빌려줘서도 안된다.

"거래선과의 개인적인 금전거래는 어떤 경우에도 있을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이다.

친분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한 술자리도 조심해야 한다.

"신분에 어긋난 고급장소에서의 대접은 거래선 폐해로 간주된다"는 계명에
저촉되기 쉽다.

이밖에 "근무시간에 다른 부업을 하는 것" "관련회사를 설립해 회사에
기계임대사업을 하거나 거래를 하는 경우" "업무상 취득한 정보를 누설
하거나 이를 이용한 개인재산증식" "전산실 근무자가 개발프로그램을 파는
것"등이 부정십계명에서 금하고 있는 부정사례들이다.

신원의 부정십계명은 타회사의 "사규"와는 그 성격부터가 다르다.

1천여 협력업체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겠다는 뜻에서 마련한 지침이기 때문
이다.

지난해 2월 협력업체와 함께 발전해 21세기를 맞자는 취지하에 마련한
"BOTH 2000"의 핵심이 바로 이 부정십계명이다.

"앞으로 사내외를 막론하고 불공정행위 특히 사적인 금전수수행위를 일절
근절하겠으니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박회장이 직접 협력업체 사장들에게 보낸 편지내용
이다.

언제라도 부정사실이 생기면 고발하라는 얘기도 했다.

"참빛소리"라는 회장실 직통전화를 개설하고 기획조정실 직원 3명을 감사
요원으로 임명했다.

지난 1년6개월간 이 부정십계명을 어겨 3명이 회사를 떠났다.

징계조치를 당한 사원도 2명 있었다.

그러나 이 회사에 복지불동은 없다.

부정척결운동의 주창자인 박회장 자신이 결코 인간적인 관계까지 죄악시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3일 마포 신원빌등 현관에 가득 쌓여있는 "목포 멸치"세트를 보면 분명
그렇다.

박회장은 매년 추석 때 "고마운 분들"에게 이 고향선물을 돌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권영설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8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