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공단내 대우전자 칼라TV공장의 PCB조립동.

질서정연하게 자리잡은 10개의 라인 가운데 유독 2개 라인에 걸려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정류화 시범라인".

문자 그대로 라인의 흐름을 고르게 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라인마다 서로 다른 PCB(인쇄회로기판)의 조립속도를 일치시키는
것으로 동기화라고도 불린다.

간판 밑에는 다시 그날의 생산계획과 이를 달성하기 위한 컨베이어 속도
등이 적혀 있는 게시판이 세워져 있다.

기자가 방문한 날의 생산계획은 34초당 1개씩 모두 3천3백75개.

이같은 정류화가 필요한 이유는 라인간의 조립속도 차이만큼 부품재고가
쌓이기 때문이다.

가령 A라는 PCB는 10초마다, B PCB는 20초마다 1개씩 생산된다고 하자.

이 경우 A라인에서 아무리 열심히 PCB를 쏟아내도 결국 완제품생산은
B라인의 속도에 맞춰질 수 밖에 없다.

따라서 A라인에는 부품재고가 쌓이고 이는 곧 재고관리비용의 발생으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B라인의 조립속도, 즉 생산성을 A라인만큼 높이자는게
이 공장이 시도하고 있는 정류화 작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우전자는 2개의 시범라인에 대한 제1차 정류화작업
에서 26%의 생산성향상을 이루고 현재 25% 향상을 목표로 2차 정류화를
추진중이다.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라인간의 조립속도를 일치시킬 수 있을까.

대우전자는 정류화의 기초작업으로 우선 공장의 레이 아웃을 완전히 개조
했다.

"조립라인이 쓸데없이 길게 설계된 경우가 많다"(곽경돈 공장혁신팀장)는
판단에서다.

레이 아웃 개조의 첫 단계는 조립라인과 자재창고 사이를 가리고 있던 벽을
헐고 자재들을 라인쪽으로 전진배치하는 일이었다.

이로써 작업시작전에 창고에 가서 자재를 꺼내와야 하는 "리드 타임"이
제로(0)화됐다.

이어 두달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 있던 라인을 직선화하는 대대적인 수술을
가했다.

이 두가지 작업만으로 조립라인의 자재재고가 68%나 감축됐다.

또 공장내 여유공간이 1백70여평 늘어나는 부수적인 성과도 얻었다.

이 여유공간은 휴게실로 활용하고 있다.

이와함께 라인의 흐름을 불규칙하게 만드는 요인이었던 수리 컨베이어도
해체해 버렸다.

수리 컨베이어란 조립과정에서 발견되는 불량부품을 고치기 위해 일단
라인 밖으로 빼내는 컨베이어.

여기서도 뜻밖의 소득이 있었다.

전에는 불량이 발생할 경우 단순히 수리만하는 응급조치로 끝났는데 수리
컨베이어를 없애고 나니 불량의 원인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져 근본적인
해결이 이루어진 것이다.

"0.5%를 넘던 공정불량율이 0.1%대로 떨어졌다"는게 곽팀장의 자랑이다.

레이 아웃개조가 정류화를 위한 하드웨어라면 최근 이 공장이 시험가동에
들어간 "오토 스케쥴링 시스템"은 소프트웨어라 할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생산계획수립을 전산화한 것으로 예컨대 외주부품의 수급차질
같은 돌발사태 발생시에 즉각적으로 생산계획을 변경시킬 수 있다.

전에는 이런 돌발사태의 경우 생산계획을 새로 짜느라 라인의 흐름이
끊기곤 했다.

이처럼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양면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류화의 최종목표
는 "평균화생산"에 있다.

평균화생산이란 시장에서 팔리는 속도만큼 생산해내는 체제.

이를 통해 항상 최적의 재고만을 유지하는 세계 제1의 공장을 만든다는게
대우전자의 야망이다.

<임혁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