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회사가 진정한 "우리 기업"인가. 미국인이 소유했다지만 일본에
나가서 활동하고 있는 IBM저팬이 우리 기업인가. 아니면 지배주주는 일본인
이더라도 미국에 뿌리를 내려 고용과 생산등에서 기여하고 있는 도요타
아메리카가 우리 기업인가"

미노동부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 하버드대교수는 최근의 한 저서에서
이같은 질문을 던지고는 "앞으로 기업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시해야
할 잣대는 국적(owned-by)여부가 아니라 활동 터전(based-in)에 맞춰져야 할
것"이라는 "답"을 제시하고 있다.

오너의 출신 국가가 아닌 기업 자체의 활동무대-.

라이시교수가 제시하는 "사국불이(기업과 국가는 따로 떨어져서 생각될 수
없다는 뜻)론"은 활짝 열린 지자제시대를 맞은 한국의 재계에는 보다 각별한
메시지로 아로새겨진다.

이제까지처럼 기업의 총수(오너)가 어느 특정 지역의 출신이라는 점에서
해당지역으로부터 "향토기업"으로 인식되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얘기다.

그보다는 기업 오너의 출신 지역이 어디건 그 기업이 어느 지역에서 얼마
만큼의 생산활동을 하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한 인식의 포인트가 될게 분명
하다.

뿐만 아니다.

라이시교수의 논법을 빌리면 "어느 지역에 얼만큼의 뿌리를 내려 고용.
생산유발 효과를 내주고, 그에따라 해당 지역에 어느정도의 부가가치를
떨어주느냐"가 중요해질 것이란 얘기다.

한국의 기업,특히 대기업들은 국내 투자의 "지역 포트폴리오(안배)"에 관한
한 이미 어느 정도씩은 지역별 현지화를 이뤘거나 이루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해놓은 상태다.

울산을 주력 생산기지로 삼아온 현대그룹이 전남(율촌) 전북(완주) 충남
(인주)등지에 대규모 공장 건설을 추진하고 있고, 수도권지역을 생산 거점
으로 해온 삼성과 대우가 가전부문 공장을 대거 광주로 이전한 식으로.

이같은 기업들의 생산거점 다변화는 분명 "지역별 현지화"를 위한 중요한
기초작업을 마친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업들이 이곳저곳에 공장을 "나누어" 지어놓는다고 해서 자동적
으로 해당지역의 "향토기업"이 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인력을 최대한 현지출신으로 활용하는 "사람의 현지화", 지역경제의
풀뿌리인 중소기업들과의 협력체제를 잘 구축해 지역산업 기반을 확충해
주는 "경영의 현지화"가 전제되지 않는 단순 생산현지화는 큰 의미를 갖기
힘들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여기에 각 지역별 유망 특화산업이 무엇인가를 파악해 최대한 육성하는
방향의 투자도 "기업활동의 현지화"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 포인트가 될 게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현지기업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토착화된 기업상, 지역사회
에 협조적인 기업상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라는 내용을 담은 어느
대기업그룹의 지자제 대책자료는 짧은 내용속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7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