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은평구에 있는 중소 연쇄점본부인 현대화유통.

시내곳곳의 구멍가게에 주류나 식품 잡화등을 공급해온 이회사는 작년부터
거래점포수를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본사에서 거리가 먼 천호동 면목동 등 서울동부지역의 점포가 주대상
이었다.

이회사가 매출액이 줄어들 것을 각오하면서 가맹점 정리에 나선것은
나날이 늘어나는 물류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러지역에 산재해 있는 소매점에 물건을 공급하다보니 기름값도 뽑지못할
형편이었다.

"본부가 가맹점에게 굽실거리며 거래를 부탁하는 건 옛말입니다. 요즘은
본부가 수익이 날만한 점포만 골라서 거래하는게 철칙입니다"

신용원 현대화유통사장은 "80년대 초반까지는 매출액대비 평균 3%의
수수료만 받아도 손해는 안났으나 86년쯤부터는 교통체증으로 물류비가
급증해 5%의 수수료로도 적자가 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이회사는 현재 거래점포의 60% 가량을 은평구지역으로 묶어낸 끝에 타업체
는 꿈도 못꾸는 1일 3배송을 하고 있다.

현대화유통의 고육지책은 유통업계가 물류비문제에 얼마나 골치를 썩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교통개발연구원에 따르면 상품의 유통과정에서 소비된 유류비용은 연간
4조9천억원 전체물류비는 25조원에 이른다.

특히 할인점으로 대표되는 저마진 경쟁시대에 판매가상승의 주범인 물류비
는 업계가 넘어야할 최대의 벽이 되고 있다.

이처럼 물류비절감이 경쟁력 향상의 키포인트로 떠오르자 업계는 뒤늦게
대규모 물류센터의 건설과 시스템의 정비 등 물류효율화에 나서고 있다.

물류효율화는 물류비부담이 큰 수퍼업계나 편의점등은 물론 최근 다점포화
에 나선 백화점업계까지 가세하고 있다.

선경유통 콜럼버스등 종합도매업체들도 전국 주요도시마다 물류거점을
마련, 이를 하나로 잇는 대단위 물류망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도로 항만 철도등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한데다 유통구조가 제조업체
의 계열대리점 위주로 형성된 국내에선 개별업체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많다는 지적이다.

비슷한 업종의 업체들이 뭉쳐 창고나 차량 나아가 운영노하우까지
공유하는 "물류공동화"가 시급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작년 9월 대한상의를 주축으로 재계가 물류공동화 추진위원회(위원장
우덕창 쌍용그룹부회장)를 구성한 것은 이러한 공감대가 업계 전반으로
확산된 결과였다.

개별업체의 노력도 늘어나고 있다.

한양유통은 오는 97년까지 납품업체나 벤더 등 협력업체와 자사 물류센터
를 공동으로 이용하는 한편 상품별로 난립해온 벤더들을 통폐합, 배송의
효율화를 꾀하는 창구벤더시스템을 완성키로 했다.

훼미리마트 로손등 일부 편의점업체들은 작년말부터 난립한 벤더업체의
통폐합을 시작했다.

중소상인들도 예외는 아니다.

자영 수퍼마켓점주들은 단위조합별로 활발히 공동물류센터의 건립에
나서고 있으며 경기도 용인의 한국물류센터가 이달말 본격가동에 들어가는등
연쇄점본부 수퍼체인같은 도매단계의 공동화사업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인 물류공동화가 이뤄지기에는 아직 난관도 많다.

무엇보다 업체들이 물류공동화를 할 경우 자사의 영업정보가 경쟁사에
노출되지 않을까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는게 큰 문제다.

각사별로 상품구성 구매조건 등이 다르다는 것도 통합작업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역설적으로 물류공동화는 판매장려금이나 무자료등 비정상적인 거래가
없는 페어플레이가 전제되야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콜럼버스의 이영교이사는 "그룹내 계열사의 통합물류도 안되는 상황에서
업계의 물류공동화는 어려움이 많다"며 "우량 도매업체를 육성하는 것이
물류공동화의 또다른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신용원사장은 "대기업이 전국단위의 물류망구축에 지나친 환상을 갖고
있다"며 "작은 단위지역별로 중소기업들이 협동하는 권역별 물류공동화가
현실적인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 이영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