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 유통업체들은 세계를 커버하는 상품조달 네트워크를 구축해 놓고
있습니다. 이들 업체가 각국에서 값싸게 조달하는 상품을 한국시장에
대량으로 공급하기 시작하면 국내유통업체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유통전문 컨설팅업체인 KIRA그룹의 도진영사장은 내년부터의 유통시장
전면개방이 상당한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거미줄 같은 상품조달망과 막강한 바잉파워를 갖춘 다국적 유통자본이
신업태라는 루트를 통해 저가공세를 퍼부을 경우 이에 맞설 국내유통업체들
이 얼마나 되겠느냐는 것이다.

다국적 유통기업들은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할인점등 가격
파괴형 신업태에 특히 눈독을 들이고 있으며 신업태의 역사가 짧은 일본보다
는 구미업체들이 국내시장 선점경쟁에서 한발 앞서 달리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81년부터 유통시장 개방을 단계적으로 추진해온 정부는 지난해 1월
부터 도매업 89개업종중 77개, 소매업 68개 업종중 57개에 외국인투자를
허용했고 내년부터는 80개와 62개로 늘어나도록 돼있다.

체인형태의 사업은 점포수 20개이하, 점포당 매장면적 3천 미만으로 돼
있는 제한이 내년부터 없어지게 돼있어 외국자본이 아무런 제약없이 대형
점포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말 대한상의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통시장개방 스케줄에 맞춰
이미 국내에 진출했거나 상륙을 서두르는 외국업체는 모두 30여개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중 가장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네덜란드의 SHV홀딩스와 프랑스
카푸는 지난93년 국내법인을 설립해 놓은데 이어 올들어 개점준비뿐 아니라
다점포화를 위한 부지확보작업까지도 초스피드로 진행중이다.

장홍선전극동정유사장이 SHV홀딩스와 51대 49의 비율로 합작설립한
한국마크로는 지난달 23일 대전 둔산신시가지의 5천평부지를 토개공으로부터
단독입찰로 사들였다.

한국마크로는 연내에 인천에 창고형할인점을 오픈할 계획이고 용인과 고양
에도 부지를 확보했다.

카푸의 단독출자법인인 한국카푸는 중동에 하이퍼마켓을 건립중이며 분당,
일산등 수도권 신도시및 대전 둔산지역등의 부지를 잇달아 사들이고 있다.

미최대의 디스카운트스토어업체인 월마트는 아직 국내진출 윤곽을
드러내지 않고 있지만 월마트와 손을 잡으려는 국내업체들이 30여개에 달할
만큼 줄을 잇고 있어 시장판도를 좌우할 "태풍의 눈"으로 지목되고 있다.

월마트는 지난3월 롭 월튼회장이 서울을 극비리에 방문, 프라이스클럽
매장을 둘러보고 삼성 대우 롯데그룹의 고위관계자들과 연이어 접촉을 가진
바있어 단독 또는 제휴방식으로 국내시장에 언제 상륙할 것인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월마트의 한국시장진출과 관련, 대기업들은 단독진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있는 반면 도진영KIRA그롭사장은 합작 또는 제휴방식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는등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우라오 쇼고 일본 후나이연구소 경영컨설턴트는 "한국유통시장의 빗장이
풀린다 해도 백화점부문은 투자메리트가 극히 적다"고 지적, 일본업체들의
한국시장에 대한 관심도 신업태에 쏠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유통시장개방에 따른 외국기업들의 상륙및 신업태시장 장악에 대비, 국내
업체들도 의식전환및 자본대형화, 시스템선진화등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할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신업태는 신세계백화점이 기술및 브랜드를 도입해 운영중인 프라이스클럽
이 개점 반년여만에 미본사로부터 해외진출의 성공사례로 꼽혔을 만큼
풍부한 성장잠재력을 인정받고 있다.

민중기 대한상의이사는 "개방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규모의 경제"를
뒷받침할 유통업계 자체의 대형화, 집중화노력과 함께 정부의 지원이
시급하다"고 전제, "대형유통시설 건립에 대한 각종제한 완화를 서둘러야
한다"고 밝혔다.

< 양승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6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