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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시장개방 대기업신규참여 가격파괴확산등 변화를 재촉하는 요인들이
겹치면서 유통시장에 지각변동의 조짐이 일고있는 것이다.

제조업이 유통업보다 우위에 있는 산업자본시대의 일물일가개념이 무너지고
유통경로별로 가격이 다른 일물다가시대가 소비자앞에 펼쳐지고 있다.

이런 변화의 과정에서 표시가격대로 상품을 사면 손해를 본다는 가격불신
을 낳고 있기도 하다.

격변기를 맞은 유통업의 현황과 전망을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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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업계에 밀어닥친 새물결의 핵심은 가격파괴.

좋은 상품을 값싸게 판매한다는 가격파괴바람의 본질적 목표는 보다 많은
고객확보에 있지만 이는 나아가 제조업체의 그늘에 묻혀왔던 유통업계의
화려한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이기도 하다.

신세계백화점의 디스카운트스토어 E마트가 "일물다가"시대의 개막을
알리며 국내소비자들에게 첫선을 보인 지난93년 11월부터 싹튼 가격파괴의
바람은 유통업의 기존판도와 틀을 위협하며 무서운 기세로 영향권을
넓혀가고 있다.

제조업체-도매점-산매점으로 이어진 전통적 상품유통채널의 변화와 함께
소비자들의 가격에 대한 불신풍조라는 진풍경까지 낳고있다.

정상품질의 상품을 기존 가격질서를 무너뜨릴만큼 낮은 수준까지 끌어
내리는 가격파괴식 판매기법의 위력은 유통업계의 일선매장 곳곳에서 쉽게
확인된다.

소비자보호원이 서울시내의 유명백화점과 슈퍼, 할인점등 21개 유통업체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같은 상품의 가격차가 70~80%에 달하는
상품도 있다.

후레쉬오렌지주스1.5리터의 판매가격은 E마트가 1천3백원 애경백화점이
2천4백원으로 84.6%의 가격차를 보이고 있다.

리본표 마요네즈(8백g)의 경우 신세계 프라이스클럽이 1천6백원, 삼양유통
이 2천7백80원으로 73.8%의 차이를 나타냈다.

이에따라 프라이스클럽, 그랜드마트, 농협하나로클럽등 가격파괴식 할인점
의 간판을 내건 매장은 어디건 소비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초고속의
매출신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주차및 계산대기시간으로 1시간이상을 허비하다 보면 짜증도 나지만
그래도 동네슈퍼보다는 20%~30%가 싼맛에 찾게 되지요. 서민들에게는그래도
이런 구매장소가 있는게 다행입니다"(수유동 주부 김모씨)

시장선점을 노린 선,후발업체간의 경쟁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파괴의
바람은 더 맹위를 떨칠 기세를 보이고 있다.

회원제창고형클럽인 프라이스클럽이 가격파괴의 선두주자로 인기를 모으자
곧 영업을 시작할 뉴코아 킴스클럽은 오픈전부터 주요상품을 프라이스클럽
보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고 장담, 프라이스클럽측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프라이스클럽의 판매가격이 시중산매점보다 최저 20%이상 싼데도 고객확보
를 위해서라면 이를 더 낮추겠다는 무한경쟁식의 영업전략인 것이다.

가격파괴바람은 백화점의 노마진행사를 촉발했고 슈퍼도 묶음판매
전략상품및 한정상품판매방식으로 가격을 내리는 판촉행사를 갖기에
이르렀다.

가격파괴업종은 물가안정을 위해 할인점을 적극 육성하고 국산품과
수입상품과의 경쟁을 촉진시키겠다는 정부정책과 맞물려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띨 전망이다.

미국은 월마트가 저가판매의 파워를 앞세워 전미최대의 소매기업으로
자리잡은지 오래며 일본은 최대의 식품메이커인 아지노모토가 지난 3월부터
제품의 출고시 판매가격을 표시하지 않는 오픈가격제를 도입할만큼
가격파괴의 바람이 유통업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국내에도 영향을 미쳐 유통혁명을 가속화시키면서
제조업체와 유통업체간의 역학관계에도 상당한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보인다.

E마트의 탄생을 지휘한 강성득 신세계백화점이사는 "부지, 상품확보의
어려움, 기존유통업체들과의 경쟁등 난관이 적지 않지만 할인점은 유통업
판도변화의 핵으로 떠올랐다"며 "후발업체와 외국기업들의 참여가 잇따를
내년이후부터는가격파괴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 양승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