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에서 개인들의 뭉칫돈이 빠져나가고 있다.

이는 얼핏보면 금리자유화이후 금리민감도가 높아지면서 은행권이외의
고수익상품을 향한 이동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금융소득종합과세를 앞두고 거액
자금들이 비과세용 은신처를 찾기위한 것이란게 은행들의 자체 분석이다.

지난 93년 8월 실명제실시이후 예상되어왔던 "자금의 대이동"이 이제
시작된 것이란 진단이다.

은행들은 이같은 경향이 하반기들어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고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은행자금이탈이 감지되기 시작하는 곳은 그동안 큰손들이 많이 이용했던
가계금전신탁.

최근 3개월간 은행마다 적게는 5백억원 많게는 1천5백억원이상 자금이
빠져나갔다.

신탁영업비중이 높은 하나 보람은행등은 "최근들어 하루에 수십억원씩의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어 은행전체에 비상이 걸린 상태"라며 "다음달부터
독립펀드의 운용을 금지시키면 은행권 전반의 자금이탈 현상은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말한다.

선발시중은행들도 "내년부터 종합과세대상에 포함되는 것으로 우려되서
인지 웬만한 금리를 제시하지 않으면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재예치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최근 재정경제원이 금지시킨 가계금전신탁내의 별도의 고금리 펀드
설정도 이같은 자금이탈을 막기위한 몸부림일 뿐이란 얘기다.

내년부터 금융자산소득(이자)이 4천만원이상인 사람들은 이를 다른
소득과 합해 종합소득세를 내야한다.

부부가 합해 금융자산규모가 4억~5억원이상인 사람들은 여기에 해당된다는
계산이다.

따라서 내년도 이자소득이 발생하는 1년짜리 가계금전신탁에서 돈을
빼내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논리다.

그럼 이 뭉칫돈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금융계에선 우선 이런 자금이 올해안에 만기가 끝나는 단기성 상품들을
투자대상으로 삼으면서 부동화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종합과세에 해당되지 않도록 자금을 짧게 운용하면서 그다음에
대책을 세우겠다는 것이란 해석이다.

그래서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 투금사들이 중개해주고 있는
기업어음(CP)과 양도성예금증서(CD)등이다.

만기가 3개월인 CP는 지난 연말 투금사들의 할인(수신)잔액이 27조3천
8백억원선이었으나 최근에는 34조5천억원선으로 4개월여만에 8조원이상
늘어났다.

역시 만기 3개월짜리가 대부분인 CD에도 최근들어 자금이 집중되는
추세다.

상당한 자금이 이처럼 부동화되는 반면 일부 자금은 이미 비과세영역을
찾아 나서고 있다.

대표적인게 만기 5년이상 채권들이다.

정부는 실명제실시와 함께 장기저축을 유도하기위해 만기 5년이상의
장기채권에 대해서는 종합과세와 분리과세를 선택할수 있도록 했다.

5년이상 10년미만 채권은 30%,10년이상은 25%의 분리과세를 내면
종합과세대상에선 빠져나갈수 있다.

따라서 요즘 만기5년이상 장기채권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장기신용은행이 팔고 있는 5년만기 장기신용채권의 경우 지난 93년의
판매액은 6백60억원에 불과했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두배가 넘는 1천6백10억원을 기록했고 올해는
다섯달도 안돼 벌써 1천5백억원을 넘었다.

기하급수적인 판매실적이다.

"부동화"와 "5년이상 장기채선호"로 나타나는 이같은 자금 이동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란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앞으로 점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다.

은행 투금사등 금융기관창구에 쏟아지는 문의를 보면 이를 충분히
읽을수 있다.

일부 금융기관창구에선 최근 종합과세와 관련된 문의로 정상적인 업무가
차질을 빚고 있을 정도다.

그래서 세무사나 변호사등 세무전문요원을 특별 채용하고 있다.

상업은행이 "직원용"으로 만든 금융소득종합과세에 대한 "포켓세무책자"는
이를 원하는 고객들이 너무 많아 직원용책자를 다시 찍어내기도 했다.

은행들은 이에따라 앞으로 이탈가능성이 큰 자금을 잡기위해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

그중 핵심이 절세형 상품을 개발하거나 현재 만기때 한꺼번에 이자를
주고 있는 정기적금의 이자지급을 매년 분할해 주는 방안등이다.

면세상품인 개인연금신탁이나 장기주택마련저축등에 대한 판매에
드라이브를 거는 동시에 골드뱅킹의 활성화등에도 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아직 교과서적인 대응에 불과하다는 평이다.

종합과세회피를 위해 거액자금이 은행을 빠져나와 대거 부동산이나
채권등으로 몰릴 경우에 대비한 방안은 전무한게 사실이다.

그래서 앞으로 은행들이 어떤 대응을 보일지에 더욱 관심이 모아진다.

< 육동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