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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은 삼성물산이 한국 제1호 종합상사로 지정된지 20주년이 되는 날.

"알래스카의 에스키모들에게 냉장고를 팔고, 사하라의 유목민들에겐
선풍기를 판다"는 상사맨들의 "프로정신"이 오늘의 수출한국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수출 1천억달러시대를 눈앞에 둔 지금도 한국 수출의 절반가량(45%)은
삼성.현대.대우.LG.쌍용.선경.효성.고려무역등 8개 종합상사들이 떠맡고
있다.

그러나 업계에선 요즘이 "종합상사 겨울시대"라고 말한다.

한마디로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제조업체들의 탈상사화 바람이 일기 시작한지는 벌써 오래고, 여기에
일본종합상사들의 한국상륙작전도 본격화되고 있다.

전통적인 수출의존형 사업구조로는 더이상 살아남기 힘들게 됐다는 얘기다.

종합상사들은 요즘 끈질긴 생명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생존공간을 개척
하느라 바쁘다.

"영역파괴"라는 대장정에 신발끈을 고쳐매고 있다.

"성년"을 맞은 한국 종합상사들의 지난 발자취와 변신로정을 시리즈로
엮는다.

>>> 편집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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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초 모대기업그룹 대중진출확대전략회의때의 일이다.

종합상사 관계자가 중국중저가시장 진출전략에 대한 설명을 끝마치기가
무섭게 전자업체 해외영업 담당자가 반박하고 나섰다.

해외시장정보에 관한한 권위를 인정받던 종합상사의 위상이 흔들리는
장면이다.

이런 현상은 종합상사가 계열사 제품을 수출해주고 받는 수수료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현재 계열사제품의 수수료는 수출가액의 0.5~0.7%선.

이는 중소업체나 계열사이외 기업의 수출을 대행해주고 받는 수수료의
절반수준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종합상사가 수수료를 올려달라고 하면 계열 제조업체는 독자수출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에 수수료율은 "0"에 접근하고 있다.
(효성물산 계재근경영정보팀장)

"계열 제조업체들은 도대체 믿을수가 없다.

한두햇동안 종합상사에 수출대행을 의존하다가 상거래 노하우가 쌓였다
싶으면 매정하게 돌아서 버린다"

S사 전자사업부 K부장의 푸념이다.

종합상사를 "애먹이는"존재는 계열사들뿐만 아니다.

"개방화"바람을 타고 밀려 들어오고 있는 일본종합상사와 다국적기업들은
상사들의 존립기반자체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종합상사의 경우 이미 "안방"까지 들어온 상태다.

이미 이토추상사등 일본의 주요 상사들은 한국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수출업무를 개시했다.

해외바이어들도 기업신용도조사가 어려울때는 종합상사 창구를 이용했으나
이젠 생산공장으로 직접 가 구매상담을 벌인다.

해외상품 전시회장에서 한국중소업체 관계자들이 부쩍 출장을 다니고 있는
것도 상사들로선 달갑지 않은 상황변화다.

종합상사에 수수료를 줄 바에야 직접 수출하겠다는 계산이 중소업체들에
까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한국의 종합상사들은 사면초가보다 더한 "오면초가"상태에
몰려 있다.

"종합상사 무용론" "고사 겨울시대" "시련의 계절"등 종합상사와 관련한
비관적인 견해가 난무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정에서다.

물론 "고사 수난"이 한국에서만 나타나는 특이현상은 아니다.

국내 종합상사의 모델격인 일본상사들은 지난 91년 이후 매출액 자체가
줄어드는 수난을 겪고 있다.

그러나 한국상사들은 일본상사들에 비해 "기본 체력"에서 현저하게 열세에
있다.

"종합상사의 3요소는 상품정보자금이다.

한국상사들은 이중 어느것에서도 이렇다할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

서울대 조동성교수의 진단이다.

벼량끝까지 몰려있는 한국종합상사들의 자활 몸부림은 그만큼 처절하다.

아프리카 오지국가를 찾아다니는등 "뱃속 편한"메이커들이 기피하는 일을
떠맡고 있는건 "기본"이다.

미국시장에서 종합상사의 역할이 다하면 멕시코로, 멕시코시장에서 경쟁이
치열해지면 칠레나 브라질로 시장을 넓혀간다.

해외지역전문가를 다투어 양성하고, 주요 외국거점에 금융자회사를 세우고
있기도 하다.

"3요소 재충전"을 겨냥한 몸부림이라고나 할까.

민병관 (주)대우 경영기획담당이사는 "세계화시대는 상사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한마디로 유리한 측면이 많다는게 민이사의 자문자답.

뭐니뭐니해도 종합상사는 세계시장에서 "최적상품"을 발굴할 수 있는
정보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상사의 영역은 무한하다는 논리다.

상사맨들은 최악의 사업여건을 경험하고 나니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사기당할 수는 있어도 제조업체와 달리 "부도"날리가 없다고도 주장한다.

종합상사의 21세기사업터전은 이같은 논리와 주장에서 이루어질게
분명하다.

< 김영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5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