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2월28일 여의도 기아자동차 본사 대강당.기아자동차 51기 주주총회의
분위기는 침통하기만 했다.

"적자 6백96억원".

12년만의 결손을 보고하는 한승준사장은 주주들의 거센 항의에 몸둘 바를
몰라했다.

지난해 국내자동차업계 생산량은 2백30만대.사상 최고의 실적이다.

기아자동차 역시 사상 처음으로 60만대를 넘게 생산했다.

그런데도 7백억원에 가까운 대규모 적자를 낸 것이다.

물론 기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대우자동차와 쌍룡자동차도 마찬가지다.

매출을 크게 늘렸지만 "만년 적자기업"의 오명은 그대로 였다.

"잘 나간다"는 자동차산업에서 매년 적자를 낸다?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측의 설명은 간단하다.

판매관리비가 크게 늘어났다.

아니면 금융비용이 불어났다는 등등.

또 판관비 증가는 인건비 상승 탓으로 돌린다.

금융비용은 대규모 투자 때문이라고 말한다.

올해도 달라질 기미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현대자동차등 일부사가 흑자를 내고 있지만 이렇게 되면 자동차업계
전체로 본 손익은 5년째 적자상태다.

이유가 어쨌건 이래가지곤 한국 자동차산업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미국 빅 쓰리(GM 포드 크라이슬러)의 경영상태가 나쁘다고 하나 순이익
합계는 1백39억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11조원이니 된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경쟁을 할수 있겠나.

"기술의 닛산"이 도요타를 못 따라가는 것은 이익을 내고 못내는 차이
때문이다.

이익을 내는게 얼마나 중요한가는 도요타의 사내교육책자 첫머리를 보면
금방 알수 있다.

"이익이란 무엇인가"로 시작되는 이 책자는 하나의 공식을 적어 놓고 있다.

"이익=시장가격-제조원가".

가격은 시장형편에 달린 것이니 마음대로 할수 없는 것이지만 제조원가는
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줄일수 있다는 것이 교육의 출발점이다.

"1달러=80엔시대"에도 "걱정없다"는 "도요타 은행"비결은 바로 이익이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가 원가에서 갖는 장점은 더이상 없다"(김선홍
기아그룹회장).

우선 재료비가 높다.

국산소형차와 미국산 소형차의 원가를 비교 분석한 산업연구원(KIET)의
자료가 이를 뒷받침하다.

우리나라 소형차 원가(92년 기준)는 5천85달러 이자료에도 나타나 있다.

해외업체중 가장 많이 먹힌다는 혼다 미국공장(4천9백79달러)보다도
1백달러 이상이 많다.

매출에서 차지하는 인건비 비중도 우리가 일본의 두배나 된다.

제조경비 역시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여기에 원화환율도 불안하다.

지난해부터 절상되기 시작한 원화는 현재 7백70원까지 올랐다.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손익분기점 환율이 7백83원(포스코경영연구소)
이라는 분석이고 보면 엔고에 따른 반사이익도 "기대난"인게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선 묘책이란게 없다.

방법이 없다.

원가절감만이 살 길이다.

"마른 수건도 쥐어 짠다"는 도요타를 배워야 한다.

어떻게 마른 수건을 쥐어 짤 것인가.

지난82년 시행된 기아자동차는 "RCD-22"라는 원가절감운동은 이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때 기아는 생산차량 한대당 22만원의 원가를 절감해 연간 1백10억원의
이익을 낸다는 것이었다.

가치공학(VE) 가치분석(VE)등 국내에 첫 소개된 원가절감기법이 활용됐다.

이때 주축이 CCC(Cost Control Center)실이다.

사장실에 올라가는 모든 결재서류가 이곳을 거쳤다.

모든 원가를 분석 검토해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파란도장을
찍지 않고 빨간도장을 찍어 "요재고" 신호를 보냈다.

RCD-22 운동은 그해 20억원 목표 초과달성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빈사상태의 기아에 "봉고신화"를 안겨준 역작이었다.

그런 기아가 다시 경험을 되살리기 시작했다.

기아는 지난해부터 CCI센터(CCC실의 후신)의 책임자로 사장을 임명했다.

올해는 CCI실을 본사에서 대단위 투자가 들어간 아산만공장으로 이전
시켰다.

한사장이 주 이틀 이곳에 근무하며 원가관리를 직접 챙기고 있다.

현대도 올초 조직개편을 통해 CR(Cost Reduction)센터를 신설했다.

회사 최상위 부서이다.

대우는 올해 경영혁신운동인 NAC도전운동 2기에 들어서면서 원가관리를
최대의 목표로 설정했다.

기아도 그렇고, 대우도 마찬가지다.

현대의 수건도 축축하다.

지금 이순간에도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을 정도로 젖어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의 자동차업체의 수건엔 아직 물기가 많다는게 업계자체의 분석이다.

< 김정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