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자동차역사는 1955년8월15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창경원에서는 광복 10주년기념 산업박람회가 열렸다.

대상의 영예는 시발자동차에 돌아갔다.

미군 지프엔진에 철판을 두드려 만든 자동차지만 첫 국산차였음엔
틀림없다.

그로부터 40년이 흘러간 오는5월4일 서울 삼성동에 있는 한국종합전시장
(KOEX)에서는 국제 모터쇼가 열린다.

세계 각국의 첨단자동차와 한국업체의 자동차가 경연을 벌인다.

뽕나무 밭(상전)이 푸른 바다(벽해)로 바뀐다는 것은 이같은 상황을 예견해
만들어진 말일지도 모른다.

자동차의 품질을 차치하고라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그동안 생산대국의
길을 질주해 왔다.

올해 생산량은 2백65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이정도의 양이면 캐나다를 제치고 당당히 "빅 파이브(Big Five)"자리에
올라선다.

김영삼대통령이 좋아하는 표현을 쓰면 "당당하게"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와
어깨를 겨루게 된 것이다.

60년이나 뒤늦게 시작한 한국의 자동차는 불혹의 나이에 21세기를 달려가고
있다고나 할까.

업체별 생산규모로는 아직 세계 10위권은 없다.

현대가 13위, 기아가 18위에 랭크돼 있을 뿐이다.

물론 승용차 3사 모두가 2000년 "글로벌 톱 텐(Global Top 10)"을 향해
전력질주하고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의 자동차산업사는 40년도 안된다.

74년부터라고 봐야 옳다.

포니가 토리노모터쇼에 얼굴을 내민 때다.

"꽁지빠진 닭"모양(차체 뒷부분이 없는듯한 해치백스타일)의 포니로 한국이
세계 16번째, 아시아에서는 두번째 고유모델 보유국이 됐다는 점에서
"자동차산업사"가 시작됐다고 보는 것이다.

20년이 지난 95년3월 스위스에서 열린 제65회 제네바모터쇼.

5년만에야 모터쇼를 찾았다는 현대자동차 정세영회장.

그는 비행기시간이 늦었다고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면서도 정작 부스를
떠나지 못했다.

줄을 잇는 하객이 그를 부스내에 붙들어 맸다.

그는 여유가 있었다.

가끔씩 먼곳을 바라보며 빙긋이 웃는 모습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정회장의 뇌리에는 21년전 토리노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이 어디냐,한국은 남의 차나 조립하는 편이 낫다. 고유모델까지
만들어 승산이 있겠느냐"며 하이윤다이(Hyundai)를 손가락질하는 "끼리"의
21년전 대화도 스쳐갔다.

1974년 토리노와 1995년 제네바는 이렇게 달랐다.

"포니 정"(정회장의 애칭)은 이제 세계 자동차업계의 VIP가 돼 있다.

현대 기자회견은 쏟아지는 질문을 잘라내야할만큼 관심의 대상이다.

유럽각국에서 몰려온 대리점사장들은 엑센트좀 더내달라고 하소연겸
아우성이다.

5천대 팔기도 힘들던 현대가 이제는 1백30만대를 생산하는데도 말이다.

현대 기아 대우 아시아 쌍용 국내5사는 지난해 2백30만대를 생산해 74만대
를 수출했다.

물론 생산도 수출도 미국이나 일본에 비견될수는 없다.

아직 멀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올해는 1백만대도 가능해 보인다.

수출액도 1백억달러를 육박하게 된다.

수출비중은 40%까지 높아진다.

"우물안 개구리"라는 오명도 완전히 씻게 된다.

따지고 보면 수출비중이 40%를 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자동차수출로 1백억달러이상을 벌어들이는 나라도 마찬가지이다.

제품력은 어떤가.

소형차만큼은 일본에 이어 2위라는게 업계의 자부심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자랑하는 르노와 피아트는 미국시장에서는 볼수가
없다.

미국시장은 세계 자동차업계의 결전장이다.

세계 10대 메이커인 이들은 우리와는 반대로 "국내용"이 돼가고 있는
셈이다.

지난달 현대 아반떼 신차발표회에 온 외국인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돌아갔다.

내년 하반기에나 생산될 포드의 신형토러스보다 앞선 디자인 탓이다.

1백% 독자기술의 개발력도 그렇지만 스타일링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반증이다.

아직은 소형차에 국한된 이야기지만 중형급이상도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이 업계의 각오다.

때마침 엔고라는 훈풍이 불고 있다.

조건은 좋아지고 있다.

그러나 세계 10대 자동차업체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10년내 살아남는 업체는 5-6개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서바이벌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먼길이 남아있다.

<김정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