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통상문제가 세계무역기구(WTO)의 분쟁해결대상에 올랐다.

미국이 농산물통관지연을 이유로 WTO분쟁해결절차의 제1단계조치인 양국간
협의를 한국에 요청, 이문제가 WTO에 의해 다뤄지기 시작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시장개방압력의 강도를 높이기 위한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한국은 그동안 농수산물 육류등의 통상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외무장관
통상산업부장관등이 미국을 방문, 협의를 가졌으나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때문에 미국은 수입농산물 통관절차(농약성분 잔류검사)를 문제삼아
WTO의 분쟁해결절차를 통해 한미간의 통상문제를 풀어보려고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한국이 특정품목을 개방한다고 약속해 놓고도 막상
물건을 가지고 들어가면 딴 소리를 한다며 한국을 신뢰하지 않고 있다.

시장을 열어놓고도 통관 검역절차를 까다롭게 하는 "비관세장벽"이 여전
하다는게 미국정부나 업계의 시각이다.

미키 캔터 미무역대표부(USTR)대표가 4일 상원재무위에서 "통관지연으로
플로리다산 오렌지류와 포도가 한국부두에서 썩어가고 있다"고 격한 발언을
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미국은 WTO에 제소를 해서라도 한국의 이런 관행을 고치겠다는 확고한
의지를 보인 셈이다.

미국이 이달말까지의 협상에서 진전이 없으면 WTO에 제소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는 쇠고기 소시지등 육류의 유통기한문제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3개국만이 육류의 유통기한을 생산업체가 아닌 정부가
결정하는 것은 전형적인 "비관세장벽"이라고 미국은 판단하고 있기 때문
이다.

물론 이번 제소가 곧 무역보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양국간 협의를 통해서 원만하게 해결될수도 있고 협의가 결렬되더라도
무역보복을 하는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WTO협정에 따르면 국가간의 무역분쟁은 반드시 "분쟁해결규칙및 절차에
관한 양해 제23조"의 절차를 따르도록 돼 있다.

이 규칙은 특정국가가 상대국에 협의를 요청, 60일 이내에 결렬될 경우
분쟁조정위원회(패널)로 넘기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위원회는 당사국들의 의견을 들어가며 9개월동안의 조사를 진행, 분쟁
해결기구(DSB)에 보고서를 제출한다.

DSB는 합리적기간안에 보고서의 권고사항이 이행되지 않을 경우 당사국에
무역보복을 승인한다.

이같은 절차가 끝나는데는 15~18개월이 걸린다.

이번에 미국이 농산물통관지연문제를 놓고 한국과 협의에 들어갔으나 협의
가 결렬돼 보복으로 이어지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진행중인 실무회의와 오는 26일부터 워싱턴에서 열리는 한미
무역실무회담에서 최선을 다해 이문제가 분쟁위원회로 비화되지 않도록 할
방침이다.

한국의 농산물통관문제가 WTO분쟁해결대상에 올랐으나 그자체만으로 한국
의 이미지가 실추되는 것은 아니다.

미국도 이미 베네수엘라로부터 가솔린청정제주입문제로 제소당했고 브라질
로부터도 똑같은 사안으로 협의요청을 받았다.

어차피 WTO가 출범한후 국가간의 무역분쟁은 공식절차를 따르도록 한 만큼
예전의 양자간 협상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느나라든 제소당할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WTO는 무역보복을 승인할 경우 예전의 관세무역일반협정(GATT)체제
와 달리 분쟁대상품목이 아닌 서비스 지적재산권등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보복할수 있도록 보복조치를 강화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농산물통관문제가 무역보복으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원만한 협상이 요청
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호영.김정욱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