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 LG경제연구소 공동기획 ]]]

<<< 정건수 기자 - 이지평 LG경제연 책임연구원 >>>

소니는 제품명과 회사명을 통일하여 이를 세계적인 상표로 성장시킨 기업
이다.

지난46년 설립때 사용한 동경통신공업이란 회사명을 버리고 58년부터 상품
이름인 "SONY"를 사명으로 사용했다.

"SONY"는 폭넓은 소비자 인지도와 좋은 기업 이미지를 구축한 "글로벌
브랜드"로 평가되고 있다.

"소니는 신기술에 대한 도전과 과감한 시장창조 전략에 주력해 왔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향으로 글로벌전략을 전개해
왔으며 이것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홍보실 시미즈 고노스케과장은 항상 기술을 바탕으로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해 세계각국 소비자의 신뢰를 획득해 나간 것이 원동력이었다고 설명
했다.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품질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SONY라는 회사이름을
제품이름에 써왔고 이것이 세계화에 큰 힘이 됐다.

세계적으로 인정되는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 세계시장 진출의 필수여건
이라고 판단, 제품과 기업 이미지를 소비자에게 동시에 홍보해 왔다.

이 전략에는 또 창조적인 신제품을 타사가 모방해도 소니의 성과가 퇴색
하지 않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

소니의 기술적 우위에 대한 자신감이 잘 배겨있는 것이 "It"s a SONY"란
선전문구이다.

시미즈과장은 이문구가 "우리들의 독특한 제품이다"란 뜻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독자적인 우수성을 강조하기 위해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지난80년께부터 TV모니터에서 사용하기 시작, 지금은 거의 모든 제품에
쓰고 있다.

지난50년 일본 최초로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를 개발한데 이어 55년
트랜지스터 라디오, 60년 트랜지스터 TV, 68년 독자규격의 고선명 컬러TV
브라운관, 79년 헤드폰 스테레오 "워크맨", 82년 CD(컴팩트디스크)
플레이어, 85년 8mm VTR등을 개발해 왔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항상 "일본최초, 세계최초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온
역사가 이같은 프라이드를 만들어낸 것이다.

소니는 신기술과 신제품을 앞세운 세계화를 추진하면서 연구개발(R&D)에도
치중했서 분업체제를 구축했다.

초기에는 기술을 해외에서 도입했지만 꾸준히 연구개발 체제를 정비했다.

일본내에서는 중앙연구소(기초연구) 종합연구소(중.장기 기술개발 및
사업부 지원) 개발본부(각 사업분야의 차세대제품 개발)간의 효율적인
R&D분업체제를 갖췄다.

최근부터 해외R&D에도 주력하고 있다.

미국에는 차세대TV 민수용비디오기기 이동체통신 기록매체생산기술 반도체
를 각각 전문분야로 하는 6개(반도체연구센터는 2개)의 연구개발거점을
갖췄다.

영국에는 방송기기, 벨기에 이동체통신, 독일에 차세대TV연구센터를 개설
했으며 싱가포르에는 2개의 소프트웨어개발센터가 있다.

일본과 해외연구개발센터간의 분업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방송국용 기자재가 대표적인 사례다.

일본에서는 고밀도 정보기록기술 반도체 레이저등의 요소기술, 미국의
기술센터에서는 반도체 설계등의 소프트웨어, 유럽의 기술센터는 디지탈
기술분야에 집중한다.

개발작업은 고객의 요구를 잘 아는 곳이 주도한다는 원칙에 따라 미국
개발센터가 주관한다.

기존에 확보된 기초기술을 기반으로 신제품의 시장을 경쟁사와 함께 개척
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소니는 경쟁사가 자사의 신제품을 모방해도 특허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기술을 독점하는 것보다도 이를 세계적으로 공개해 신제품 시장을
적극적으로 확대하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이다.

소니가 개발한 CD의 경우 바로 이와 같은 전략에 따라 순식간에 전세계에
보급됐다.

이전의 음반시장의 주종제품이었던 LP판을 대체할 수가 있었다.

소니는 설립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세계시장 개척에 나서서 신제품의 보급에
주력했다.

소니의 제품은 "독창적 기술이 뒷받침된 고급제품이기 때문에 초창부터
미국등 선진국시장의 효과적인 개척이 가능"(시미즈과장)했다.

해외마케팅의 포인트를 "고객에 대한 교육"으로 잡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신기술로 만들어낸 신제품시장을 창조해 나가는데는 신제품.신기술을 세계
각국의 소비자들에게 교육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소니의 해외마케팅 활동에 있어서 중요시 되어 왔던 것은 독자적인
판매망의 구축이다.

소니 스스로가 신기술.신제품을 홍보하면서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유통
경로를 구축해야 한다는 기본 입장을 견지해 온 것이다.

예를 들어 카세트 테이프 레코더의 이점을 알리기 위해 각국의 교육기관을
공략하여 교육용 시청각 전자기기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기도 했다.

61년에 개발한 소형 업무용 VTR의 경우에는 항공기내 영화서비스 기자재
로서 미국의 항공회사를 집중 공략해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독자적인 마케팅 체제를 갖춤으로써 고객과의 대화도 활성화되고
제품을 끊임없이 개선할 수가 있었다.

소니는 72년 미국 샌디에고 공장 가동, 74년 영국 블리지엔드 공장 가동에
이어 독일 프랑스등에 잇따라 생산거점을 확보해 나갔다.

특히 샌디에고 공장에서는 74년에 컬러 브라운관의 생산을 시작, 일본기업
중에서는 최초로 컬러TV의 해외일괄 생산체제를 구축하였다.

샌디에고 공장은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미국의 시장규모가 워낙 커
착실히 성장해 왔다고 한다.

경쟁사에 비해 일찍 현지화한 것이 커다란 성공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경쟁사가 통상마찰 대응이라는 수동적이고 불리한 여건하에서 미국에
진출해 올 때 소니는 이미 기반을 구축"(시미즈과장)했기 때문에 안정적
성장기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미국정부는 외국업체에게 현지 부품조달률을 높이도록 규제하고 있어
핵심부품인 브라운관을 현지생산하고 있는 소니는 다른 경쟁사에 비해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소니의 해외증시상장은 세계화와 맞물려 비교적 일찍 시작됐다.

70년 9월 미국 뉴욕, 10월 영국 런던증시에 처음 상장한후 77년까지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오스트리아 캐나다 스위스등 모두 8개국 14개증시에
상장했다.

세계화에 필요한 자금을 여기에서 조달, 기업이미지제고와 함께 세계화의
큰 보탬이 됐다는 평이다.

소니는 "오락과 전자의 결합"을 새로운 전략분야로 선정했다.

오락(엔터테인먼트)과 전자기술을 연계시킨 멀티미디어사업에서도 신기술로
신제품을 먼저 만들어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레코드및 영화사업에 진출하고 필립스와 전략적 제휴를 맺고
터전을 닦았다.

앞으로 더욱 거세지는 국제적인 제휴기업군간의 "대전"을 치러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지위를 지켜나가겠다는 전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4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