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복덕방이나 구멍가게 세탁소등도 주식회사로 등기한다.

주식회사라는 간판을 달아야 기업이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몇몇 중견기업들은 끝까지 개인기업을 고수한다.

결코 법인으로 전환하지 않을 태세다.

왜 개인기업을 고집할까.

이들 기업의 경영방식에 업계의 시선이 모이고 있다.

구미시 공단동에 있는 영신사는 브라운관 정밀부품을 만드는 첨단기술회사
이지만 기업형태는 여전히 개인이다.

79년에 설립돼 부산과 구미에 공장을 두고 컴퓨터모니터 이너실드를
국산화한 중견기업이 개인형태를 지키는 까닭은 무엇인가.

이는 이 회사의 원태영사장의 옹고집(?)때문이라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그러나 원사장의 답변은 예상외로 합리적인 근거를 두고 있다.

그는 앞으로도 절대 법인전환을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는다.

원사장은 "중소기업에 있어 실제 경영을 하는데 주식회사든 개인기업이든
큰차이는 없다"고 밝힌다.

형식적일 뿐이라는 것.

그러나 주식회사의 경영자들이 "자본과경영의 분리"라는 명목조건 때문에
노사분규 판매부진 부도등 꼭책임을 져야할자리에서 발뺌을 하는 것은
마땅치 않다는 얘기다.

"이에 비해 개인기업은 최후의 순간까지 책임질 사람이 있어 오히려
경영효율화를 기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원들이 안심하고 일한다는 지적이다.

종업원 80명인 영신사가 최근 일본에서만 개발된 접점간격 0.02mm의
이너실드를 개발한 것도 LG전자의 납품업체로서 3번이나 최우수협력업체
로 선정된 것도 바로 이같은 최고경영자의 책임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서울 성수동에 있는 동성포장기계는 더 심하게 개인기업을 고집한다.

국내 포장기계업계에서 원조로 알려진 이 회사는 25년간 개인으로 유지하고
있다.

이 회사도 최고경영자인 정완용회장의 결단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동성처럼 매출이 1백억원을 넘어서는 회사는 세액면에서 상당히
손해를 볼 수 있다.

약 50억원선을 지나면서부터 종합소득세율이 법인세율을 앞서서다.

정회장은 세금을 더 내더라도 개인기업을 지키겠다는 입장이다.

주안 중진공아파트형공장에 있는 산업디자인 전문업체인 인다의 이인술
사장도 결코 법인전환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인이다.

이사장의 견해는 꽤 관념적이다.

"중소기업의 선장은 배가 가라 앉으면 함께 빠져죽어야 할 운명"이란
뜻에서 개인기업을 고집한고 밝힌다.

유리제품업체인 원일유리공업사 경신유리공업사, 플라스틱업체인 진진
산업사 세지화학공업사 대일산업사 덕신산업사등도 개인기업을 유지한다.

자동차정비업체인 삼호공업사 신진공업사 화영공업사, 인쇄업체인 성문
인쇄사 형제인쇄사등 중견기업들도 개인기업으로 남아있다.

이들기업의 사장들은 한결같이 개인기업이라고 해서 비효율적이라는 견해는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린다.

기업인의 주인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기관의 기업체평점기준에서까지
개인기업에는 불리하도록 한 것은 고쳐져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나라 중소제조업체중 개인기업은 아직 전체의 64%인 5만3천개사.

그러나 종업원 1백인이상기업의 개인기업비율은 1%미만이다.

중견개인기업이 이처럼 극소수이긴 하지만 이들에 대해 획일적으로 불리한
규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