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기 과열이 진정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14일 뉴욕과 유럽
대부분의 증시에서 주가가 일제히 올랐다.

중남미에서도 주가가 반등했다.

그러나 떨어지기만하던 각국의 주가가 상승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하기엔
너무 이르다.

또 그동안의 낙폭에 비하면 이날의 반등은 별게 아니다.

올들어 뉴욕을 제외한 세계 대부분의 증시에서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특히 중남미와 동남아 신흥시장의 주가하락이 두드러졌다.

달러 폭락의 진원지인 멕시코에서는 3월14일 현재 주가가 33.0% 떨어졌으며
브라질 상파울루 증시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증시에서는 각각
30.7%와 24.1%의 주가하락율을 기록했다.

마닐라(24.1%) 방콕(17.6%) 봄베이(15.0%)에서도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지난해부터 뚜렷한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유럽에서도 주가는 예외없이
떨어졌다.

파리증시에서 올들어 주가가 6.0% 떨어진 것을 비롯해 유럽 대부분의 증시
에서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최근의 세계 증시 동반침체는 경제상황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다.

세계경제는 지난해를 기점으로 90년대초의 불황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보였다.

기업의 경영실적도 대체로 호전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경기과열이 우려되면서 금리가 오르기 시작했지만 다른 지역
에선 금리가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안정되어 있었다.

주가가 상승할 여건은 충분한 편이었다.

그런데도 주가가 대폭 떨어진 것은 한마디로 외환시장의 극심한 혼란
때문이었다.

지난해 12월20일 멕시코의 페소화 평가절하를 계기로 국제외환시장이 동요
하면서 신흥시장에서는 외국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동남아와 유럽의 약세통화국들은 자국통화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

이런 악재가 겹치면서 경제상황이 양호한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곤두박질
했다.

경제여건이 무시된 각국 주가의 동반하락, 특히 개도국 주가의 급락은
전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경기회복세에 악영향을 미칠 뿐만아니라 자본
배분의 효율성을 현저히 떨어뜨린다는데 문제가 있다.

멕시코 아르헨티나 브라질등 중남미에서는 외국투자자금이 빠져나가면서
통화가치와 주가가 폭락하고 금리는 50%선을 넘어섰다.

기업들은 "지금과 같은 고금리가 지속되면 사업을 계속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치고 있다.

부득이 투자를 하려 해도 돈을 구할 수가 없다.

주가가 폭락하는 바람에 증시를 통한 직접 조달은 매우 어려워졌다.

중남미경제는 이제 급속히 침체될 위기에 처했다.

마르크 강세에 맞서 금리를 올린 유럽국가들은 소비.투자 위축으로 경기
회복이 지연될까 우려하고 있다.

외자가 급속히 이탈한 동남아에서도 경기둔화가 불가피해졌다.

그러나 개도국 정부와 기업들은 경기둔화보다 더 큰 문제에 봉착했다.

선진국들의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고 주가가 떨어짐에 따라 자금조달이
어려워진 것이다.

중국 기업들의 경우 그동안 홍콩증시등에 주식을 상장함으로써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수 있었다.

그러나 멕시코 금융위기이후 신흥시장에 대한 투자기피가 확산돼 증시를
통한 자금조달 방도가 막혔다.

아르헨티나는 민간여신이 위축되자 금융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국제통화기금
(IMF) 세계은행(IBRD) 미주은행(ADB)과 각국 중앙은행들로부터 1백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끌어들이기로 했다.

외채위기를 벗어난지 10여년만에 다시 외채를 대폭 늘리지 않을수 없게된
것이다.

세계증시 침체속에서도 미국증시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주가가 사상최고치를 경신했으며 채권도 오름세를 지속, 시세와 반대로
움직이는 수익률이 9개월만의 최저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따라 미국 정부와 국민들은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면서도 외국돈을 끌어들여 넉넉한 생활을 유지할수 있게 됐다.

경제와 정국이 불안한 개도국들이 비싼 돈값을 치루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최근의 신흥시장 주가하락은 미국의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개도국들이 지나치게 비싼 대가를 치룰수 있음을 보여줬다.

< 김광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