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 코리아( Look Korea )".세계 반도체 업계에 최근 이런 말이
생겨났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정을 모범답안으로 삼자는 뜻이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총리가 한국과 일본을 모델로 "비전 2020"을
설계할때 "룩 이스트( Look East )"라고 외쳤던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튼 세계 반도체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것은 "한국형 모델"이다.

그 역동성의 원천을 찾자는 것이다.

답의 하나는 "과감한 투자"다.

"외국업계에 비친 한국의 반도체산업투자는 "도대체 주저함이 없다"일
겁니다" 세계시장의 주력상품이 4메가D램인데도 두세대나 앞선 64메가D램
공장의 올연말 완공을 앞두고 있으니 그럴만도 할게다.

그렇다면 국내업계는 뭘믿고 회사마다 1조원이상 들여 이같은 공장을
짖는가.

"반도체는 초기 시장가격이 가장 좋습니다.

제품이 시장에 나와 6개월만 지나면 가격이 20%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지금 국제시장에서 47~48달러에 거래되는 16메가D램은은 지난 91년초
세계시장에 처음 선보였을때만 해도 개당 가격이 3백달러를 넘었었죠"
(삼성전자 최생림반도체기획부장)그래서 반도체 업계에는 "조조익선"이
투자효율성을 극대화해주는 하나의 공식처럼 돼있다.

삼성등 국내업체는 바로 이런 점에 착안했던 것이다.

실제로 초장부터 라인자체를 양산체제에 맞게 만들었다.

16메가D램의 경우 삼성은 이미 투자액(공장하나당 8천억원정도)을
다 뽑았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값이 비쌀 때 시장을 선점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이같은 투자의 고효율성(금상)에다 뛰어난
시장적응력(첨화)을 갖고있다.

여기 좋은 일화가 있다.

지난 90년 4메가D램 생산에 얽힌 예다.

일본 업체들은 그당시 "잘 나가던"1메가D램 생산을 돌연 중단했다.

대신 4메가D램 생산에 경쟁적으로 나섰다.

반도체 시장을 4메가D램으로 전환시켜 세계시장을 독식하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성공하지 못했다.

한국기업들의 저력을 간과한 탓이다.

1메가D램과 4메가D램을 동시 생산할수 있는 라인을 갖춘 국내업체들이
즉각 4메가D램 양산으로 응수했기 때문이다.

1메가D램 생산설비를 갖출때 4메가D램 생산까지 계산했던 선투자의
효과였다.

반도체투자,반도체시장 적응력에서 우리가 눈여겨 볼 점은 바로
이 "한국형"에 있다.

무엇이 한국형을 만들고 있다는 말인가.

전문가들은 그 답의 상당부분을 "한국형 오너경영체제"에서 찾는다.

정답까지는 몰라도 "정설"인 것만은 분명하다.

반도체 산업,특히 D램산업은 일반적으로 신규투자에 적용되는 비용편익
분석(BC)이 그리 중요치 않다.

사실 메모리 반도체 투자는 합리적인 계산으로 선뜻 수지타산을
맞출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실한 비전을 갖고 단기적 손익에 연연치 않고 밀어붙이는 "오너
경영스타일"을 요구하는 "대도박사업"이다.

때문에 오너가 아니면 투자규모와 방향을 정할수 없다.

전문경영인은 자신의 책임하에 대규모 투자자금을 끌어들이기도
힘들고,그 돈의 쓰임새와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수도 없다.

한국 오너들의 과감성을 보여주는 사례는 많다.

대표적인게 LG반도체 구자학회장의 "꼴찌론"이다.

"반도체 경기가 나빠져 회사가 망하는 경우가 생긴다면 미국업체가
제일 먼저다.

일본이 그 다음이고 한국은 훨씬 뒤다" 투자를 늦게 시작한 한국은
망해도 미국이나 일본 업체보다 나중에 망한다는 얘기다.

그만큼 많은 기회를 갖고 있는 셈이고 그래서 주저할것이 없다는
게 그의 "꼴찌론"이다.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배짱이다.

한국업체들이 이런 산업특성에 가장 부합되는 경영체제를 갖추고
있다(김균섭 통산부국장).실제로 일본 반도체업계가 한국에 추월을
허용하고 있는것은 이런 측면에서의 한일간 차이때문이라고 한다.

일본의 기업들은 최고경영자가 대부분 전문경영인들이다.

이들은 사업을 확대하더라도 신규투자보다는 기존 사업을 확대하려는
안정 지향적 경향이 강하다.

주주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캐피탈리스트 캐피탈리즘( Capitalist
Capitalism )에 젖어있는 미국업계는 더 말할것도 없다.

미국기업들엔 체질상으로도 맞지 않는다.

외국 반도체업계와 한국업계는 이렇게 다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업체들은 지금 쫓기는 위치에 있다.

여태까지 일본기업들을 쫓던것과는 반대다.

추월이 아닌 수성,시장적응이 아닌 시장주도의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중대한 환경변화를 맞고 있으며 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한국형 모델"의 완성된 모습을 결정할 것이란 얘기다.

< 조주현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