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일 조선업계간 "선박 수주전"이 불꽃을 튀길 전망이다.

지난 93년과 94년 세계 조선수주량 1위를 번갈아 차지했던 한국과 일본이
금년에도 양보할 수 없는 "한판 승부"를 벌일 기세다.

특히 내년 1월부터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조선협정 발효로 반덤핑
부과금 신설등 게임의 룰이 강화됨에 따라 막판 고지점령에 열을 올리고
있다.

"선전포고"는 이미 끝났다.

양국 조선업체들이 최근 발표한 금년 선박수주 목표는 세계 조선시장에
전운을 감돌게 하기에 충분하다.

두나라 모두 1천만GT에 달하는 대규모 수주를 목표치로 제시하고 있어서다.

우선 한국은 수주목표를 작년보다 50%이상 높게 잡고 있다.

현대 대우 삼성 한라중공업등 국내 조선업계의 올 선박수주 목표치는 총
9백40만GT.

전년대비 51.5%나 늘어난 것이다.

업체별로는 <>현대가 61.3% 늘린 4백만GT <>대우가 1백60% 증가한 2백
20만GT에 달한다.

삼성(1백50만GT)과 한라(1백30만GT)도 전년보다 각각 3.3%와 50.5% 올린
목표를 설정했다.

도크증설이 거의 마무리됨에 따라 국내 업계가 그 어느때보다 의욕적인
수주목표를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일본 업계도 공격적이긴 마찬가지다.

일본의 금년 총 수주목표는 8백만-1천만GT(일조선업계 임직원 설문조사
결과)에 이른다.

사상최대치 였던 지난해 수주규모(1천1백30만GT)에 거의 육박하는 수준
이다.

금액으로 보면 공세의 정도를 더욱 실감할 수 있다.

미쓰비시중공업 히타치조선등 일본 조선6사의 수주 목표액은 작년보다
7.9% 신장한 7천4백70억엔.

이중 신조선 건조만은 10.3% 증가한 5천8백90억엔에 달한다.

덩치를 감안하면 엄청난 증가목표인 셈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 업계의 필사적인 시장쟁탈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세계 조선 수주량이야 어차피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두나라는 현재 세계 조선시장의 3분의 2를 점유하고 있는 양대 메이져이다.

이미 양측은 뜨거운 경쟁의 경험을 갖고 있다.

지난 93년 한국은 총9백50만3천GT의 선박을 수주,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오름으로써 "조선 대국" 일본의 자존심을 꺽어 놓았었다.

이내 일본이 반격, 작년엔 선두 자리를 재탈환 했고 이때 한국은 도크
증설을 추진하며 전열을 가다듬었었다.

이렇게 한차례씩 공방을 벌였던 한국과 일본 조선업계가 드디어 올해는
대격돌을 눈앞에 두고 있는 양상이다.

또 한국과 일본의 수주경쟁은 필연적이기도 하다.

그동안 맹렬히 일본을 추격했던 한국은 "이제 노동집약도가 높은 조선산업
은 한국에 넘겨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일본은 "조선마저 한국에
빼길순 없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어서다.

대우중공업의 한관계자는 "일본이 과거 미국등으로부터 조선산업을 인계
받았듯이 이제는 일본이 한국에 양보를 해야 한다"며 "어차피 일본은
인건비나 엔고 추세로 볼때 가격경쟁력에서 한국을 따라올수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일본 조선업체의 지난해 생산직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43만1천엔
(3백41만원)으로 한국(1백50만원)보다 2배이상 많다.

게다가 한국 조선업계의 생산성은 현재 일본의 70-80%수준이어서 자동화
합리화등으로 비용절감을 할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게 국내 업계의 시각이다.

한일간 경쟁력 차이는 더욱 벌이질 거라는 얘기다.

따라서 일본이 한국과 무리한 경쟁을 벌인다면 출혈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본 조선7사의 경상이익률이 지난91년 4.0%에서 92년 3.4%, 93년 2.6%로
떨어지고 있는게 이를 반증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쉽게 포기할 자세가 아니다.

오히려 한국의 무분별한 도크증설이 세계조선시장의 침체를 초래할
것이라며 한국업계의 "자제"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OECD조선협상에서 일본이 줄기차게 주장했던 것도 바로 이대목이다.

국내업계의 한관계자는 "일본업계 사람들은 일본 조선산업이 한국과 더
이상 경쟁이 안된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조선마저 한국에 빼끼고 나면
일본은 어떤 업종으로 한국을 이길수 있느냐"고 고백할 정도로 조선에
집착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일본이 지난해 출혈을 자초하면서까지 저가수주등 덤핑공세를 벌였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는게 국내업계의 분석이다.

어쨌든 싸움은 시작됐다.

그것도 OECD조선협정이란 엄격한 규칙적용을 앞두고 마지막 니전투구가
벌어질 것이다.

누군가는 승자가 될 것이고 다른 한쪽은 패배의 쓴잔을 마셔야 한다.

물론 한편에선 한국과 일본 모두가 승자가 될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정된 파이를 놓고 서로 치고 받기만 할게 아니라 동남아 시장등에 두
나라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하는등 "전략적 제휴"를 강구해 볼만 하다는
얘기다.

경쟁과 협력의 조화점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인 셈이다.

올해 한일간 조선수주전에선 누가 승자가 될지도 그렇지만 두나라가 서로
공존의 지혜를 살릴 수 있을지 여부도 관심거리다.

<차병석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