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부품 업체인 S사의 C사장은 요즘 심각한 고민에 빠져있다.

지난해연말 거래처로부터 새해부터는 납품단가 인하를 통고받았기때문이다.

경기도 호황이고해서 지난 5년간 동결해온 납품가격를 올해엔 올려
줄것이라고 믿고있던 참이라 충격은 더욱 컸다.

구로구 독산동에 있는 이회사는 초경경구를 생산하고있는 중견업체이다.

종업원이 1백명정도로 금형분야에선 기술력을 인정받고있다.

"초경경구의 주요 원자재인 텅스텐 코발트값이 지난해이후 30%이상
올랐습니다."

임금인상등 제반 다른 경비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납품단가가 최소한 30%는
올라야만이 기업경영이 가능하다고 C사장은 설명했다.

그런데 거래기업처에선 오히려 단가를 10%내렸다.

가격파괴로 완성제품 값을 15%를 내렸기 때문이라는 설명과 함께.

C사장은 원자재가 인상에따른 가격인상의 불가피성을호소했으나 무위로
끊났다.

거래선을 바꾸겠다는 엄포도 들어야만했다.

올들어 대부분의 중소제조업체들은 거래하는 대기업들로부터 가격인하
요구를 받고 인하된 가격으로 납품을 하고있다.

자동차 전기전자 컴퓨터등 거의 모든제조업관련,중소업체들이 가격인하의
타격을 받고있는 실정이다.

중소기업들의 경영난을 심화시키고있는 가격인하의 진원지는 최근 국내에
유행처럼 번지고있는 "가격파괴"바람이다.

지난해 대형 유통업체들이 유통마진을 줄여 저가로 제품을 판매하면서
시작된 가격인하전의 결과다.

유통업체들간의 가격인하경쟁은 급기야 제조업체들로 불똥이 튀었고 대형
완제품 메이커들은 중소업체들에 가격인하를 요구했다.

결국 가격파괴가 중소기업들만 멍들게 하고있는셈이다.

중소업계는 완제품업체들이 물류비용,인원등을 줄이는등 경영합리화를 통해
코스트 다운을 꾀하지않고 가격파괴분을 하청업체인 중소기업에 전가하는
것은 기업윤리를 저버린 처사라고 지적했다.

"소비자에게 판매가격을 인하하는 생색은 대기업이 내고 비용부담은
중소기업이 떠맡았다"고 말하기도했다.

중소업체중 가장 심하게 가격파괴의 타격을 받고있는 데는
자동차부품업계이다.

완성차메이커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부품공급업체들에 공문을 발송,
95년부터 인하된 가격을 적용한다고 통보했다.

"작년말 완성차업체들이 평균 5-15%정도의 단가인하를 통고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중소업체들은 대기업들의 가격인하를 공개조차 못하고 있습니다"

기협중앙회에서 하도급업무를 담당하고있는 최하범차장은 중소업체들이
원가상승과 인건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나 대기업들의 일방적인
통고에도 불구,구조적 취약성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볼트업체,스프링업체등 각종 자동차부품업체들도 예외없이 가격인하로
경영난이 가중되고있다.

성수동에 위치한 중견스프링 생산업체인 S업체는 지난 연말 단가 5% 인하를
통고받고 올들어 비용절감 운동을 펼치고있지만 결과는 시원치가 않다.

인건비가 많이 드는 볼트생산업체들 사이에는 길어봐야 3-4년이상 회사를
유지하기 어렵지 않느냐는 탄식도 터져 나오고있다.

최근 신제품 경쟁이 치열해지고있는 컴퓨터및 주변기기관련 업체들이나
전기및 전자업체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대형 가전사들이 잇따라 저가신제품을 내놓으면서 부품의 단가인하를 요구,
중소기업들의 목을 죄고있다.

무선전화기의 핵심부품인 코어를 생산하고있는 J전자는 완성품 메이커로
부터 연초 무려 20%나 가격을 인하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지난해 하반기이후 심각한 자금난을 겪어와 결국 회사를 포기키로 하고 끝내
다른 업체에 넘기고 말았다.

컴퓨터 TV 오디오등과 관련된 전기 전자제품 업체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전자공업협동조합은 이와관련,부품가격 인하요구는 모든 회원사들이 겪고
있으나 완성품 메이커들로부터 그나마 물량이 끊길것이 두려워 인하사실을
밝히는 것조차 쉬쉬하고 있는것이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최인한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