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방북행렬이 이달들어 갑자기 주춤거리고 있다.

동양그룹은 지난달말 대표단을 북한에 파견하겠다고 발표했지만
10여일이 지난 현재까지 "깜깜무소식"상태이다.

오는 15일로 예정된 쌍용그룹의 2차 방북도 현재로선 상당기간 늦춰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부터 방북허가를 받은 현대그룹과 LG그룹도 이달들어서면서
방북 문제와 관련,아무런 반응도 없는 상황이다.

기업들의 방북열기가 며칠사이에 이처럼 식어지게 된 배경에 대해
여러가지추측이 나돌고 있다.

가장 유력한 이유로는 정부가 비공식적으로 기업들의 방북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몇개 그룹이 방북과정에서 과당경쟁과 뒷돈거래를 하는가 하면 이뤄질수도
없는 사업을 공약하는등 돌출행동을 한데 대해 불쾌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이유로 정부가 방북허가사항을 사전에 꼼꼼히 챙기고 있기 때문에
기업들의 방북이 늦어지고 있는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이러한 징후는 여러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예컨대 국내 모든 그룹들의 관심거리인 쌍용그룹의 2차 방북을 앞둔
중요한 시점에 김석원회장이 지난3일 돌연 미국에 간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간다는 분위기이다.

이에 대해 쌍용그룹관계자는 "김회장은 9일 귀국해 방북문제를 최정
결정할것이기 때문에 현재로선 방북일정에 전혀 차질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통일원측에 확인한 바로는 쌍용그룹이 2차방북신청을 한적이
없다는 것이다.

그룹들중 가장 먼저 북한땅을 밟은 쌍용측이 사업결실을 거두기위한
2차신청을 하지않았다는 것은 정부와 기업들간에 이상기류가 흐르고있는
사실을 반증하고있는 셈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들 스스로가 "방북문제"와 관련,과열상태에서
이제는자제하는 분위기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기업들이 그동안 방북과정에서 다소 호들갑을 떨었던 것에 대한
반성과 함께 본격적인 남북경협이 아직까지는 시기상조라는 판단이
섰다는 얘기다.

나진 선봉지구개발이나 시멘트공장건설등의 사업이 이뤄지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우선적으로 북한에 발전소를 비롯해 도로 항만등 인프라시설이 갖춰져야
한다.

기업들이 이런 사회간접자본시설들을 건설하면서 동시에 관심사업을
벌이기에는 자본투자비가 너무 높고 위험성도 수반된다는 것이다.

남북시멘트 합작사업은 그동안 가장 유망한 업종으로 평가돼왔다.

발전소를 짓건 도로 항만을 건설하건간에 시멘트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멘트업계에서는 요즘 북한에 시멘트공장을 건설하는 일은
무리라는분석이 나오고 있다.

공장과 인프라시설을 동시에 건설하는 사업을 하기보다는차라리 북한의
노후한 시멘트공장을 개보수하는게 낫다는 주장이다.

시멘트공장의 가장 중요한 시설인 킬른을 현대식 설비로 교체하는데만도
1억달러나 소요된다는게 시멘트업계의 분석이다.

북한에 컨벤션센터를 포함한 복합건물과 시멘트공장을 세우겠다고
밝혔던 쌍용그룹측이 2차방북에 망설이고있는 또다른 요인도 이
때문이다.

"쵸코파이"와 시멘트합작사업을 앞세운 동양그룹의 방북이 늦어지는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쵸코파이 시제품을 보냈던 동양그룹측은 아직까지 북한으로부터 별다른
회답을 받지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여러 정황으로 볼때 기업들의 방북은 상당기간 늦춰질 전망이다.

방북이 재개되더라도 지난번의 경우처럼 과당경쟁이나 공약을 남발하는
사례는 사라지고 소규모 프로젝트 위주의 현실적인 사업들이 추진될것으로
보는 시각들이 지배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2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