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원짜리 동전과 1억원의 정기적금"

이 둘 사이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금액이 워낙 차이나는 만큼 얼핏봐선 별다른 관계를 찾기 힘들다.

그러나 최근들어 이 둘의 관계가 밀접해졌다.

10원짜리 동전이 품귀현상을 빚으면서 은행에서 10원짜리 동전을 안정적
으로 공급받으려면 적어도 1억원정도의 정기적금에는 들게끔 된 탓이다.

10원짜리 동전을 써야할 필요성이 크게 늘어난 것은 지난해부터였다.

24시간 편의점이나 수퍼마킷형태의 할인판매장등 "단위가 작은 현금"의
매출비중이 큰 중소형 유통업체가 대거 탄생, 거스름돈용으로 사용할
10원짜리 동전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졌다.

이들 업체들은 과거에 10원짜리 동전을 주로 버스회사등 운송업체에서
바꿔 왔다.

그러나 시내버스요금이 2백90원(현금으로 낼때는 3백원)으로 오르면서
버스를 탈때도 10원짜리 동전이 큰 필요가 없게 됐다.

운송업체들도 더이상 10원짜리 동전의 공급원 역할을 할수 없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자 10원짜리 동전을 공급할수 있는 곳은 은행창구나 동전사용이
많은 공중전화업무를 맡고 있는 우체국으로 한정되었다.

웬만한 규모의 수퍼마킷에서는 1주일에 적어도 10만원어치의 10원짜리가
필요한데 실제 공급은 5만원어치 밑으로 떨어졌다.

결국 은행과 우체국에서 10원짜리 동전을 구하기 위한 업체간의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서 일부 은행들은 "억"단위의 정기적금에
들어야 동전을 공급해 주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10원짜리가 많은 우체국의 위상도 그래서 크게 높아졌다.

우선 우체국에서 10원짜리를 구하려면 최소한 10일 전에는 신청해야 한다.

물론 일찍 신청했다고 원하는 만큼 동전을 구할수 있는건 아니다.

일부 우체국에서는 10원짜리 동전을 바꿔주면서 보관하기 힘든 1백원짜리나
50원짜리 동전을 끼워서 바꿔준다.

업체들은 10원짜리 2천5백개(2만5천원)가 들어있는 동전자루를 하나
바꾸기 위해 1백원짜리 자루(25만원) 두개 정도를 함께 바꿔야 하는 식이다.

공중전화카드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일부 수퍼마킷에서는 전화카드판매를
강제로 할당받아 가면서 겨우 10원짜리 동전을 구하곤 한다.

상황이 이정도니 은행과 우체국에서 10원짜리를 필요한 만큼 확보하기 위한
부대비용도 많이 든다.

한두명의 직원이 매일 여러개의 인근 은행점포와 우체국을 돌아야 하는
만큼 우선 인건비가 만만치 않다.

은행에 적금을 드는 것은 물론 "때"가 되면 우체국에도 선물을 돌려야
한다.

한 유통업체 관계자는 "이것저것 비용을 다 따지면 10원짜리 동전하나를
구하는데 20-30원가량 걸릴 정도"라고 말한다.

한국은행에서 10원짜리 동전을 발행할때 드는 비용(28원)을 거의 다 주는
셈이다.

우리나라에 흩어져 있는 10원짜리 동전은 결코 적은 양이 아니다.

지난 14일 현재로만 따져도 3백33억원7천2백만원어치가 발행되어 있는
상태다.

그런데도 동전을 구하기 힘든 것은 이중 상당량이 어린이들의 저금통등에
사장되어 있기 때문이란게 한국은행의 분석이다.

한국은행과 일반은행들은 그래서 어린이 저금통에 사장되어 있는 10원짜리
를 끌어내기 위해 각종 "동전모으기" 켐페인을 거의 연중으로 벌이고 있다.

불우이웃돕기등 켐페인의 형식은 다르지만 결국은 모두 10원짜리 동전을
저금통에서 끌어내 유통시키겠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은 신용카드의 사용이 많은 백화점에서 동전의 필요성이 거의 없는
것처럼 신용카드사용이 생활화되거나 선불카드등이 활성화되면 10원짜리
동전의 필요성이 점점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 유통업체들의 10원짜리 품귀현상은 국민소득이 높아지면서
하찮은 것처럼 여겨지던 10원짜리의 마지막 반란일까.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