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부터 금호그룹내에서는 "사장도 60대가 되면 마음을 못놓는다"는
말들이 무성하다.

지난해말 있었던 인사에서 샐러리맨들의 최대 꿈인 사장들이 무더기로
그룹고문 또는 대표이사 아닌 부회장등으로 임명되면서 사실상 경영일선에서
물러났기 때문이다.

최규원사장(62.금호쉘화학) 김광웅사장(61.회장부속실) 이승하사장(60.
금호건설)등 3명은 부회장으로, 최기덕사장(65.한국복합화물터미널) 김재현
사장(63.회장부속실)등 2명은 그룹고문으로 각각 자리를 옮기면서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들은 모두 60대여서 경영일선에 다시 복귀하기는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비슷한 일들은 현대나 LG등 더큰 그룹들에서도 있었다.

현대정공 유기철사장(60)은 지난해12월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유사장은 지난87년부터 무려 8년간이나 정상의 자리에 머물러 왔던데다
그룹인사에 앞서 갑자기 교체가 이뤄져 회사내에서는 물론 경쟁업체들도
인사배경에 적지않은 관심을 나타냈었다.

LG그룹에서도 하태봉사장(63.LG유통) 김이환사장(61.희성관광개발) 홍종선
사장(60.LG전선)등 60대사장 3명이 고문으로 위촉되면서 사실상 경영일선
에서 물러났다.

효성그룹 배도사장(61.동양폴리에스터)도 지난해를 끝으로 후선으로 밀려
났다.

60대 사장들을 물갈이한 것 자체는 결코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장강의 앞물결도 뒷물결에 밀려간다"는 말대로 세대교체는 오히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유난히 승진인사가 많았던 올해 인사에서 나타난 세대교체는 젊게
변신하려는 재계 스스로의 경영혁신의지에 의해 이뤄졌다는 것이 예년과
다른 변화다.

"달라지지 않으면 살아남을수 없다"는 재계의 위기의식이 60대사장들을
밀어내고 있는 셈이다.

50대인사가 다른 그룹의 사장으로 승진, 자리를 옮긴것도 이같은 변화의
흐룸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그룹 공채6기출신으로 국제통으로 평가받는 채오병제일모직고문(55)과
이명환삼성데이타시스템 대표이사(부사장.51)가 해당그룹내 인사들을
제치고 각각 동양그룹의 무역회사인 동양글로벌과 효성그룹의 동양
폴리에스터사장으로 전격발탁돼 이동한 것은 젊어지기 위한 재계의 노력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세계화가 강조되면서 임원진의 변신을 요구하는 압력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만한 일이다.

금호그룹에서는 54명을 이사대우이상으로 무더기 승진시킨 가운데서도
부사장이하 임원 15명(부사장 1명 전무 4명 상무 1명 이사 4명)을 자문역
으로 밀어냈다.

대한항공은 고령을 이유로 K이사(58)를 여지없이 고문으로 전격 발령냈다.

(주)선경에서 중국실장을 2년간 지낸 K전무(53)는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회사의 경영방침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전격적으로 자리에서 물러나
다른그룹으로 이동해야 했다.

지난해 좋은 영업실적을 올렸던 자동차업계와 전자업계도 예외일수 없다.

한때 기획실장까지 지냈던 현대자동차의 K전무(51)는 해외영업을 하는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아 회사를 떠나 다른그룹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난해 1조원가까운 이익을 낸 삼성전자의 이사 2명은 부회장보좌역으로
전격 발령돼 보직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LG전자(금성사)의 K상무 2명도 승진풍년에도 불구, 업무능력이 달린다는
이유로 회사를 떠나야 했다.

기업들은 이제 임원들은 물론 사장들에게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실력은
물론 젊은 패기와 국제화감각까지 갖추기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는 일류기술로 세계시장에서 선진업체들과 과감하게 경쟁하지
않고는 살아남을수 없다는 현실인식에서 출발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문희수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월 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