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든 탑이 무너졌다"

지난달 21일 상공자원부의 고위간부 C씨는 이렇게 탄식을 늘어놓았다.
성수대교의 "돌연한" 붕괴소식이 날아든 직후였다.

몇년째 추진해 온 "품질 한국(Korea for Quality)"이란 국가이미지
구축작업이 거품이 될 판이기 때문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외신은 성수대교가 아닌 "한국 이미지의 붕괴"를
숨가쁘게 전세계에 타진하기 시작했다.

로이터통신은 작년 신행주대교 붕괴건 까지를 곁들여 보도하면서
"한강의 기적이 30여년만에 강바닥으로 곤두박질쳐 버릴 위기에
몰렸다"고 비아냥댔을 정도다.

중진국 선두주자로 일어서기까지 오늘의 공든 탑을 쌓아올린 주역은
기업인과 함께 경제관료들이었다.

그건 누구도 부인못할 일이다. 그러나 그 탑의 실체는 무엇이었던가.
사상누각과 같은 모래성은 아니었을까.

"압축성장"이란 허울 속에 기초나 기반같은 것은 아예 무시한 건축물
말이다. 과정을 무시한 성과지향주의는 필연적으로 불실을 초래한다.

지금 한국경제가 맞고있는 "총체적 위기국면"은 분명 한강의 기적이
"모래위의 것"이었음을 웅변해주고 있다.

모래성쌓기의 책임은 기업에도 있는 게 분명하다. 하지만 더 큰 책임은
관료들 자신이 져야 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무능-부패-무사안일의 타성에서 헤어나지 못한채 "94부터 부실공사
철저추방" "94년은 한국방문의 해"같은 구호나 책상위에서 짜내 전시성
캠페인이나 벌이고는 "할 일 다했다"고 안주해 온 게 우리 경제관료들
이기 때문이다.

실상 도급제같은 부실공사의 근본요인은 방치해두고, 외국인들이 길하나
제대로 찾기 힘들게 돼있는 한글.한문위주 도로표지판을 손질할 생각은
하지도 않은채로 말이다.

언필칭 나라경제의 파숫군임을 자임하는 경제관료들이 기업들로 하여금
정도를 걷게끔 채찍질하기는 커녕, 부실과 편법에만 익숙해지도록 조장
해왔다는 얘기다.

당장 건설업만 들여다 봐도 그렇다.

동강난 성수대교를 시공한 동아건설은 결과적으로 부실공사라는 "오명"
을 벗기 힘들게 됐다.

검찰의 수사초점은 부실관리에서 부실시공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동아그룹회장은 서둘러 기자회견을 자청하고는 1천5백억원이 넘는 돈을
들여 새 성수대교를 지어 헌납하겠다고 밝혔다.

관은 민의 헌납발표에 침묵을 지킴으로써 이를 받아들였다. 조사결과가
끝나기도 전에 멍에는 민이 걸머지고 관은 가슴을 쓸어내리는 양상이
돼가고 있다.

"기업의 정치자금을 일제받지 않겠다"고 대통령이 공언한게 불과
1년여전이다.

관은 결과적으로 민의 돈으로 사태를 미봉하는 악수를 두고있다. 하지만
진짜 민이 책임을 져야 할 일인가.

동아건설은 "사하라 사막의 기적"이라 불리는 리비아 대수로공사를
"누수율 제로(0%)"로 시공해 내 일약 세계 유력건설업체로 주목받고
있는 기업이었다.

동아건설 뿐만이 아니다.

국내에서는 곳곳의 건설-토목구조물이 부실의 후유증을 앓고있지만
해외공사현장에서는 한국건설업체들이 우량기업으로 정평을 받는
아이러니가 연출되고 있는게 우리 현실이다.

이런 한국의 건설업체들이 정작 본국에서는 "부실공사"의 멍에를
자초하고 있다면 그건 우리의 시스템에서 문제를 찾을 수 밖에 없다.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건 말할 것도 없이 한국의 관료들이다. 단적인
게 기형적 감리제도다.

믿기지않는 일이지만 한국에는 천안 독립기념관 화재사고가 일어난
90년 이전까지만 해도 "감리제도"라는 말 자체가 없었다.

설계-시공에 대해 제대로 된 감리조차 없이 대형 토목.건축공사를
해왔다는 얘기다.

경제계에서는 진작부터 감리시장을 대외개방해서라도 "내실"을 다져야
한다고 지적해왔다. 그런데도 건설관료들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이유는
엉뚱했다.

"취약한 국내감리업계를 보호 육성하기 위해 개방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관료들이 걸핏하면 내세우는 "국내업체 육성""국익"이란 게 국민전체의
목숨까지도 담보로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그 뿐만도 아니다.

우리 경제관료들은 감리나 유지.관리같은 "소프트웨어"는 일로 치지도
않는다(경제기획원 K과장)는게 스스로의 진단이다.

무슨무슨 프로젝트나 계획같은 허울좋은 "하드웨어"에만 온통 정신이
팔려있다는 얘기다. 나중의 결과야 어찌됐든 일단 포장만 그럴듯 하면
된다는 식이다.

건설부가 최근 경제기획원과의 "예산투쟁"에서 보인 행태가 이를
반증한다.

기획원측으로부터 "예산요구액의 일정부분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을
받자 "그렇다면 유지.보수예산부터 삭감하겠다.

신규프로젝트 예산은 절대로 깎을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게
예산실관계자의 전언이다.

시쳇말로 "때깔나는" 하드웨어예산만 지키면 유지.보수같은 소프트웨어야
어찌됐든 알 바 아니라는 식이라고 할 수 밖에. 중앙부처가 이러니
지방자치단체는 말할 것도 없다.

김영태토지개발공사 사장은 "가스관리시설.공단.공유수면매립등 굵직한
개발토지를 조성하고 나서 지방자치단체에 넘겨주려 해도 넘겨줄 수가
없다.

유지관리를 맡을 전문인력이 없기 때문이다"고 말한다.

한마디로 중앙.지방을 가릴 것없이 경제관료들이 "누각"을 짓는 일에만
관심이 있지 그 밑의 "모래"를 "암반"으로 바꾸는 일에는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그러니 나라전체의 불실은 보지않아도 뻔한 일일 수 밖에 없게 돼있다.

한국의 경제관료는 분명 환골탈태해야 할 위기의 전환점에 서있다. 그
전환점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의 변천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