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과 노하우"냐, 아니면 "실력과 명분"이냐.

영종도신공항의 은행점포입주를 둘러싼 조흥 외환 신한은행등 수성파와
한일 서울신탁 상업 제일은행등 공략파간의 물밑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조흥 외환 신한은행등 3개은행은 김포공항에 이미 점포를 갖고 있는
은행. 이들은 김포공항에 이어 영종도신공항의 영업권도 당연히 자신들의
몫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한일 서울신탁 상업 제일은행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냐며
도전장을 들이 밀고 있다.

신공항은 오는 2천년에야 문을 연다. 하지만 공항점포가 "금밭"이나
마찬가지여서 은행들의 접전은 벌써부터 그 열기를 더해가는 느낌이다.

물밑경쟁이 본격화된 것은 지난 9월1일 수도권신공항건설공단(이사장
강동석)이 생기면서부터. 공단발족식에 축하화환을 보낸 것은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할 기초작업에 불과했다.

작전개시를 제일 먼저 서두른 사람은 조흥은행의 이종연행장. 그는
일찌감치 강동석이사장을 직접 만나 기득권을 기정사실화 하려했다.

외환은행의장명선행장은 강이사장과의 전주고교 동문임을 내세워 공략할
것으로 알려졌다.

신한은행도 이것 저것 보이지 않는 수단을 동원,한자리굳히기 작업에
여념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오래전부터 김포공항에 지점을 설치해 장사를 해온 만큼 영종도신공항
입주은행을 선정할때 당연히 기득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공항영업에서 쌓은 노하우도 무시못하는 만큼 자신들은 누가 뭐래도
입주 0순위라는 것. 기득권의 아성을 깨뜨리겠다는 한일 서울신탁
상업및 제일은행의 반격도 볼만하다.

한일은행은 이미 영종도신공항점포신설추진전담반을 구성해놓고
있다.

서울신탁은행도 고객업무부의 점포개발실을 중심으로 입주티켓을 따내기
위한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상업은행도 강동석관리공단이시장과 두터운 친분을 갖고 있는 임원을
동원, 강이사장과의 꾸준한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여차하면 정지태
행장이 직접 나설 태세다.

제일은행도 뒤질세라 이런 저런 연을 찾아 뛰기는 마찬가지다.

후발주자격인 이들 4개은행이 주장하는 입주 근거는 실력과 명분.

한일은행은 수출입외환실적이 다른 어는 은행보다 앞서고 있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외환부문의 선두급이 제외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영종도입성을 위한
문이 모두에게 공평하게 개방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신탁은행은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회후원은행이라는 점을 부각
시키고 있다. 제일은행은 은행권전체로 순익1,2위를 다투는 간판
은행임을 앞세우고 있다.

영종도신공항입주경쟁이 치열한 것은 공항점포야말로 짭잘한 환전수수료
를 챙길수있는 알토란같은 자리이기 때문. 외국인이나 내국인해외여행객
들이 공항에서 환전하면서 떨어뜨리는 동전이 은행엔 "엄청난"
수익원이다.

현재 은행의 환전수입은 달러당 7-8원,많게는 10원을 넘을 때도 있다.

달러의 현찰매입가격과 매도가격차이가 23원98전이지만 보험 운송
보관료등 비용을 제외하면 달러당 7-8원이 고스란히 떨어진다.

더군다나 환전은 일반대출과 달리 자금이 묶이지도않고 위험이 전혀
없다. 업무자체도 단순하기 이를데 없는 그야말로 실속있는 장사거리다.

김포공항에 들어가 있는 조흥 외환 신한은행은 환전실적을 노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점포당 월평균 5천만달러정도의 거래가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공항환전실적에 힘입어 이들 3개은행의 환전실적및 수수료 수입이 다른
은행들을 훨씬 앞지른다.

올들어 9월까지 은행별 환전실적을 보면 조흥은행이12억2천6백만달러로
한일 상업 제일및 서울신탁은행보다 3-4배나 많다. 공항점포는 단순히
환전으로 돈을 버는 곳만은 아니다.

한국에 첫발을 디디는 사람들을 처음 맞는 장소여서 은행이미지의
국제화에 한몫을 톡톡히 할수있다.

외국인에게 은행이름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무형의 소득라는 얘기다.

2000년을 내다보며 은행들이 온갖 연과 명분을 동원,영종도신공항입주에
혈안이 돼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영업을 시작하는 것은 6년후의 일이지만 입주은행은 그 전에
경쟁입찰방식으로 결정될 공산이 크다.

그 시기가 다가올수록 "가두리어장"을 확보하려는 은행들의 공방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고광철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