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현지시간) GATT본부의 안드레이 제페시 총회의장(헝가리대사)은
한국 멕시코 이탈리아등 3개국 주재대사를 비밀리에 불렀다.

제네바에 대표부를 두고있는 90여개국을 대상으로 비공식 파악한 WTO(세계
무역기구) 초대 사무총장 후보국 지지내역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귀3국이 3분의 1씩 표를 나눠갖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판세가 워낙
팽팽해 목표로 하고 있는 12월초까지의 총장선출이 어려워질지도 모르겠다"
는 얘기가 전달됐다.

김철수상공자원부 장관을 후보로 내고 있는 한국정부는 요즘 내심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1차 고지를 넘어서 2차고지 까지도 예상보다 수월하게 도달했다"는 안도감
때문이다.

아시아지역의 지지를 확보하는게 1차고지였고, 2차고지란 중동.아프리카
지역 주요 국가들의 지원을 등에 업는다는 것이었는데 해당국들의 호응이
기대이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

그러나 최종종착지(3차고지)인 미주.유럽공략은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

정부관계자들은 그래서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WTO총장 선거운동판을 벌리고 있는 상공자원부 통상정책국에 요즘들어
"대외비"가 부쩍 많아졌다.

김장관의 지지확보 상황에 관한 내용이 특히 그렇다.

상대후보진영인 미국(멕시코의 대리인)과 EU(유럽연합.이탈리아 대리인)의
"역공작"을 견제하기 위해서다.

단적인게 인도정부의 "한국지지 공식표명"사실을 한달가까이 보안유지해
온 점이다.

인도는 김장관이 공식방문했던 직후인 지난9월중순 한국을 지지키로 했다는
결정을 통보했었다.

그러나 우리정부는 계속 "인도는 아직 지지후보국을 결정하지 않았다"고
연막을 피우다가 22일에야 사실을 밝혔다.

"제3세계 비동맹권"의 맹주국가인 인도를 공략하기 위해 멕시코와
이탈리아가 이달중 나란히 특사를 파견한 점을 감안, 인도정부의 입장이
난처해지지 않도록 배려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지난6일 일본 무라야마총리의 한국지지 공식 발표로 미국과 EU
진영에 타격을 안겨준 데 이어 또 한차례 "중요 회전"에서 승리를 낚아챈
셈이다.

여기에 비동맹의 또다른 맹주국가인 이집트로부터도 지지의사를 전달받은
상태다.

이로써 한국은 호주 파키스탄 홍콩 자이르등 아시아.중동.아프리카의
주요국들로부터 탄탄한 지지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아시아의 간판주자"라는 지역대표성을 넘어서 다른 대륙으로까지 세를
불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나 유럽쪽에서는 이런 한국의 "선전"에 대해 의외의 허를
찔렸다는 반응이다.

지난 8월까지만 해도 "한국이 WTO총장국이 되겠다는 야심은 2000년까지
자동차시장 외국차점유율을 5%선(현재는 0.2%)으로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한국정부의 장담만큼이나 황당한 얘기"(뉴스위크지) "보호주의 우산을
내리지 않고 있는 한국이 자유무역주의 기구의 총장이 되겠다는 것은 무리한
욕심"(파이낸셜 타임즈지.영국)등 냉소적 반응 일변도였다.

그러던 것이 일본의 지지를 확보한 이달들어서는 "일본정부가 한국지지를
공식 표명한 것은 충격적인 것이다. 이제 총장선거 판세는 팽팽한 대치국면
에 들어서게 됐다"(월 스트리트 저널지) "WTO 총장에 누가 당선될지는
오리무중이 됐다. 한국이 약진하고 있다"(더 선지.스위스)는 쪽으로 확연히
바뀌고 있다.

김철수장관은 지금까지 45개 외국언론매체와 인터뷰를 갖는등 후보 개인의
이미지 제고에 주력하고 있는데 "개인의 자격으로 치면 직업정치인인
멕시코의 살리나스대통령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줄 수 있다"는게 유럽쪽의
반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총장선거는 완전한 지역대결 구도로 들어서고 있다.

유럽쪽에서 체코가 멕시코지지를 선언한 "반란" 한 건을 제외하고는 현재
까지 지지후보국을 공개한 나라들이 유럽은 이탈리아, 미주는 멕시코,
아시아는 한국지지 일색이다.

결국 남은 것은 중동.아프리카지역인데 일단 한국이 주요국가들의 지지를
얻어내는데 성공해 적어도 "표대결"로만 치면 불리할게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WTO총장선출은 투표방식이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주요국들간의
거중조정방식으로 이뤄지게 돼있다.

아무래도 선진국블록인 미주나 EU쪽이 유리한 입장이다.

정부는 그러나 선진국모임인 "쿼드"(미국 캐나다 EU 일본)중에서 일본의
지지를 얻었고 개도국블록에서 "언제까지 국제기구 대표를 선진국이 나눠
먹어야 하느냐"며 반발하는 무드가 적지 않다는 점에 힘을 얻고 있는
양상이다.

<>.결국 뚜껑은 12월 6-8일에 열리는 GATT총회에서 열리게 돼있지만 워낙
판세가 팽팽해 결과를 장담키 어렵게 돼있다.

일각에서는 세후보가 끝까지 각축을 벌일 경우 "입후보 대기"상태에 있는
뉴질랜드의 버든무역장관이나 스웨덴의 칼 빌트전총리가 어부지리를 업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성급히 점치고 있을 정도다.

정부는 남은 선거운동은 미주 유럽등 "적진"에 뛰어들어 "귀지역 후보가
어려울 경우 최소한 한국후보를 반대는 말아줄 것"을 중점 공략한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

김철수장관은 11월초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APEC(아.태경제협력체)통상
장관회의때 미국 캐나다등에 이런 공략을 펴는데 이어 곧 "모지역"을
방문한다는 계획도 잡고 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대상국가는 선거보안유지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학영기자>

(한국경제신문 1994년 10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