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새롭게 바뀝시다. 나는 회사의 위상을 회복시키기 위해 온사람이니
나를 믿고 따라주세요"

지난7월1일 을지로 두산빌딩내 동양맥주본사.

신임 김준경사장 취임식이 열리고 있는 16층 대회의실의 분위기는 무겁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맥주업계의 변화와중에서 위기에 처한 동양맥주가 드디어는 변신을 위한
몸부림으로 사장단인사라는 배수진을 치면서 맹장으로 알려진 김사장이
왔기 때문이다.

김사장은 동양맥주가 마지막 직장으로 생각하고 일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김사장은 지금의 두산전자인 한국오크 등 두산그룹내에서 어려운 계열사들
을 골고루 거치면서 초석위에 올려놓은 인물이다.

두산상사에서 동양맥주로 옮겨온 김사장은 박용성 회장과는 서울대상과
대학동기로 64년 동양맥주에 입사한 공채4기이다.

김사장은 부하직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되 실무자의 설명을 듣고는 본인이
결정하는 스타일이다.

빨리빨리 일이 처리되는 것을 좋아한다.

"이게 맞다"고 생각하면 뱃심좋게 밀어부친다.

원리원칙에 충실하고 공사가 분명하다.

대표이사부회장으로서 실무를 놓고 주류4사를 총괄하게된 고종진 전사장
(공채1기)과는 다른 스타일이다.

고부회장은 보스기질있고 선이 굵은 타입으로 웬만한 일들은 부하직원들에
맡겨왔다.

일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타박하지 않고 실무담당자들이 알아서 하도록
두는 타입이다.

부하직원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나 형님같다고들 한다.

고부회장의 스타일이 두산그룹의 컬러를 대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91년 두산전자의 페놀사건으로 동양맥주가 고전하던 어려운 고비를
인화를 중시하는 고부회장이 맡아서 무난히 넘겼다면 이번과 같은 업계
내부의 격전을 치러내는데는 김준경사장과 같은 발빠른 스타일이 제격이라는
판단이 섰던 것으로 분석된다.

고부회장자신도 조선맥주의 하이트에 대한 대응이 늦었다면서 이를 만회
하기 위해 다른 사람이 필요하다고 제청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김사장의 취임과 함께 동양맥주의 경영컬러도 공격적으로 변화고 있다.

조선맥주와 진로쿠어스맥주 등에 맞서기 위해 중역진도 보강됐다.

요컨대 그룹내 각계열사에 포진해 있던 동양맥주출신들이 시댁으로 복귀
했다.

경월그린소주를 일약 유명소주로 자리잡는데 큰 몫을 한 김대중전무,
OB씨그램에서 양주마케팅을 담당하던 최상진이사, 새로 영업을 맡게된
윤영준이사 등이 그들이다.

김사장자신이 동양맥주영업부장출신이며 김전무도 영업부장 대구출장소장
등을 거쳤다.

종래 동양맥주가 대기업들이 그렇듯이 경리 기획 등 관리쪽에 중점을
두던 것과 비교하면 영업쪽에 두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조직도 영업위주로 바뀌었다.

김사장은 맥주싸움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감안, 지역본부장제를 도입
하여 "올코트프레싱"으로 나섰다.

관리쪽에 있던 직원 70명을 영업쪽으로 전진배치했다.

영업부문에서 일단 공격적인 전투태세를 갖춘 셈이다.

중역들의 나이도 많이 젊어졌다.

종전에 50세 근처였던 평균연령이 46-48세 정도로 낮아졌다.

그들은 요즘 아침 7시30분이면 회사에 도착한다.

퇴근은 오후8-9시가 될 때가 허다하다.

토요일에도 오후 늦게까지 회의를 하는때가 많아졌다.

김사장부터 아침에 일찍 나오고 저녁늦게까지 일하므로 다들 따라오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김준경사장은 직원들의 의식변화에 가장 마음을 쓰는 편이다.

조직변화등으로 겉모양이 바뀌어도 종전의 낙관적이고 안일한 자세가
유지되는한 공염불이라는 판단이다.

"바깥모양보다도 직원들의 자세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쪽에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취임후 거래처 인사도 나중으로 미뤘지요.
웬지 미흡해 보였어요. 소극적이고 자만에 빠져 조선맥주의 하이트가
나왔을 때도 그게 잘될까하고 과소평가했던 겁니다"

의식을 바꾸자는 의도가 신제품개발을 위한 "맥주맛찾기 캠페인"에서
드러난다.

이른바 프로슈머개념을 도입, 소비자의 의견을 제품개발때 적극적으로
반영한다는 이 캠페인에 무려 10만여명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차제에 소비자들을 대하는 직원들의 자세도 가다듬자는 뜻이었다고 한다.

주요임원들을 꼽아보면 영업을 총괄하는 김대중전무는 불도저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대범하고 추진력이 강하며 말술을 사양하지 않는 인물이다.

무알콜맥주(NAB)를 중동시장에 수출, OB맥주수출의 초석을 다졌다.

백화인수후 냉청주 청하를 내놓음으로써 청주시장의 위축을 타개, 성가를
높였다.

경월을 인수하고 나서는 경월그린소주로 진로의 아성인 서울시장을 집중
공략, "소주"하면 진로라는 등식을 무너뜨렸다.

윤인우전무는 생산을 총괄한다.

이천공장 본사생산관리담당 등을 거친 양조전문가다.

OB아이스맥주를 개발해내는 등 우리나라양조기술개발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소비자가 원하는 맥주를 언제든 만들어낼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장담
한다.

엔지니어답게 세심하고 치밀하며 신입사원에게도 존대말을 쓴다.

맥주제조의 수장답게 맥주는 밤새 마셔도 취하지 않아 OB의 주당으로
통한다.

김천수상무는 동양최대의 맥주공장인 이천공장공장장.원가절감운동과
생산성향상운동을 지속적으로 펼쳐왔다.

생산부장 건설본부장 등을 두루 거쳤다.

이천공장을 7년연속 환경모범공장으로 이끌었다.

"소비자가 기꺼이 방문하는 공장" "언제나 환경을 생각하는 OB"가 그의
모토다.

오너인 박용성대표이사회장은 뛰어난 경영수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소문나 있으나 거의 경영에 관여하지 않고 있다.

경영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김사장에게 부담을 줄까 염려한다는
소문.

김사장 자신도 기대는 것 같아 물어보지 않는다고 한다.

조선맥주의 하이트공세, 진로쿠어스맥주의 카스 등을 맞아 공격적 변신을
꾀하고 있는 동양맥주의 시도가 맥주시장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관심
거리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