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변으로 인하여 생긴 손해를 타인과 함께
분담하기 위하여 행하는 선후책."

1907년 유원종이 지은 상업대요는 보험을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근대적인 보험제도가 우리땅에 상륙한 것은 1876년 강화도조약이후.

개항과 함께 일본 미국 영국 독일등과의 대외거래가 이루어지면서
해상운송이 빈번해졌고 자연히 해상보험이 들어올수 밖에.

대외거래에 해상보험을 적용한 것은 1880년 동경해상이 처음. 이회사는
질좋은 한국산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면서 선박과 쌀을 "보호"한
것이다.

국내에 보험회사 설립1호는 1897년 대조선보험회사.

1900년 무본보험회사 1906년 가옥전답보험회사가 뒤를 이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08년 인천에 거주하던 일본인이 동양화재보험주식회사 설립을 위한
발기인대회를 갖는다. 신문에 주주모집광고까지 냈으나 정식출범까지는
가지 못한다. 주주공모에 응한 사람이 없었던 때문이다.

대조선보험회사와 무본보험회사도 회사설립이후 경영이 여의치않아
중도하자한다. 이들 보험회사의 취급대상보험물은 가축과 가옥이
전부였다.

예컨데 대조선보험회사의 경우 구한말인 1897년6월 소(우)를 보험가입
대상으로 했다. 증권(가로 24 세로 19 )이 우리나라 최초의 증권이다.

이증권은 지난77년 경북 봉화에 살던 정모씨가 집정리중 우연히 발견한
것. 손해보험협회에 이사실을 알렸고 협회는 조수웅상무를 현지에 보내
사본을 만들어 왔다.

현재 협회에서 보관돼 있는 증권이 비로 그사본. 소를 대상으로한
보험영업활동이 어느정도였는지는 무본보험회사가 황성신문(1900년
4월14일자)에 소보험영업광고를 낸 것만 봐도 알수 있다.

당시의 보험은 그러니까 농업이 주였던 시대를 반영한 셈이다.

생명보험 역시 개항과 무관치않았다.

부산 인천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일본인 거주지역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일본생보사들이 영업을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생명보험 대리점 1호는 일본의 제국생명이 1891년에 설립한
부산대리점.이어 공제생명 진종신도생명등이 잇달아 부산에 대리점을
낸다.

서울에선 역시 일본의 동양생명이 1898년에 대리점을 개설한다.

영국계 생보사도 자국계통의 거류민을 대상으로 영업을 시작한다.

1904년 차이나뮤추얼라이프 로얄라이프등 6개사가 부산에 홈 링거
앤드사를 공동대리점으로 세웠다.

또 1921년 캐나다의 매뉴팩춰라이프가 서울에서,미국의 뉴욕라이프는
진남포에서 각각 영업을 시작했으나 태평양전쟁 발발과 함께 본국으로
철수했다.

이두회사는 영풍그룹(91년)과 고합그룹(93년)과 합작으로 우리나라에
다시 진출,보험영업을 하고 있다.

근대적 형태의 우리나라 첫 보험사는 1921년 당시한성은행(조흥은행
전신)전무였던 한상용씨가 주축이 돼 세운 조선생명.이듬해인 1922년
조선화재가 조선은행과 식산은행이 주축이돼 설립된다.

조선화재는 해방이후 동양화재로 이름을 바꿔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조선생명은 43년 강제보험인 전쟁보험을 전담하는 조선징병보험으로
변경된 다음 해방과 함께 업무를 중지했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