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은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41개국 중
에서 24위, 개도국중에서는 지난 91년에 3위였던 것이 7위로 밀려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의 가장 큰 원인이 정부의 행정규제에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이 조사 자체가 얼마나 신뢰성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많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가 국가경쟁력 추구를 최상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에서 볼 때 우리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인 지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에는 지방공무원들의 대규모 세금횡령비리가 적발돼 관료사회는 물론
나라 전체에 경악과 깊은 시름의 파문을 던져주고 있다.

우리 사회의 해묵은 병폐로 지적돼온 공직자들의 부정부패가 또다시
불거져 나온 것이다.

있을 수 있는 일의 하나로 적당히 소란을 피우다 덮어둘 일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폴 케네디는 그의 저서 "강대국의 흥망"에서 한 시대를 풍미한 초강대국
들이 어느날 무너져 버리는데는 크게 다섯가지 요인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그 첫째가 관료사회의 부패이고 다음으로 지성인의 타락,중산층의 몰락,
기업인의 타락, 사회기강의 와해라고 꼽았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볼 때 우리 공직자들 중에서도 경제관료들의 역할과
위상 재정립이 얼마나 시급한가를 엿보게 한다.

얼마전 어느 주요경제부처의 과장과 깊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그는 관료사회에 들어온지 근 30년이 되었지만 요즘처럼 공무원생활에서
의욕을 잃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결코 경제적인 이유때문만은 아니다.

그는 기술직 공무원으로 들어와 정부예산으로 5년간 해외유학까지 했던
엘리트관료다.

그러나 한 번도 자신의 전공분야에서 일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당연히 지금의 자리에서는 업무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도무지 업무자체에 흥미가 없다는 것이다.

몇달전 인사이동 때 자기도 모르게 이 자리에 오게됐고, 몇달후면 새로운
인사바람에 또다시 새로운 자리로 밀려갈 것이 틀림없다는 얘기였다.

지금 우리 경제사회는 미래창출 능력과 국가번영을 위한 경제관료들의
기상이 그 어느때보다도 흔들리고 있다.

복지부동 무사안일주의 매너리즘등 우리 주변에 유행어가 되고있는 말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낡은 관료사회 병폐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에서부터 깊은 성찰이
필요하다.

물론 상대적으로 뒤져있는 공무원에 대한 처우와 인사적체현상등 당면한
문제들이 관료사회의 사기를 크게 저하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큰 원인은 지난날 경제관료사회를 이끌어 온 정치풍토가
국민의 신뢰성을 이탈하여 올바른 정치이념으로서의 제 구실을 다하지
못했다는데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낡은사고 벗어라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을 다스리는 상부구조의
정치가 국민의 신뢰성 위에서 자리를 굳히고 공무원으로 하여금 국가적
사명감에서 활기차게 매진할 수 있도록 자부심과 긍지를 심어주는 일이며,
그러한 관료사회의 풍토를 국가적으로 조성하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오늘의 경제행정으로 볼 때 국가에 봉사하는 정책관료들의 의식
구조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모든 관료들이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부처간 이기주의, 규제
중심의 편의적 행정, 한건주의 등 아직도 변화를 외면하고 낡은 도그마에
파묻힌 채 새 한국을 이끌어가는 국가적 책무와 사명감을 망각하고 있는
관료들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들은 다가오는 무한경쟁시대에 우리경제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체질과 규범을 새롭게 다져나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경주하지 않으면
안된다.

또한 새로운 경제환경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스스로 지식과 행정
기량을 크게 향상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제2도약 분수령 돌이켜보면 지난 30년간 우리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데는 경제관료 조직의 우수성과 헌신적인 개척정신이 자리잡고 있었다.

경제관료들은 어려운 생활속에서도 미래를 기약하고 국민을 계도하면서
경제성장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해왔다.

젊은 관료들은 밤을 새워 가며 구석구석을 찾아 기업의 수출활동을 지원
했었다.

이러한 현상을 통틀어 관료주의의 열정이라고 부른다.

이런 열정이 끊기고 국가에 봉사하는 관료들의 "성취 희열"이 무너질때
번영을 향한 역사의 바람은 소멸되고 만다.

지금 세계경제는 폭풍전야에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밀려오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경제민족주의,기술패권주의등 실로 예상할 수 없었던
새로운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

이러한 변혁기의 한가운데에 서서 우리 경제관료들은 무엇을 생각해야
할 것인가.

기둥역할 충실히 민족의 역사적 소명으로서 재도약을 다짐하고 내일의
풍요한 경제사회를 열어가는 올바른 경제사상의 재정립이 절실한 시점에
서 있다.

이제 우리경제는 역사적 도전에 앞서 새 규범,새 경제질서를 터득하는
산고를 치러야 한다.

튼튼하고 강인한 국가경제의 새 율동,즉 "믿음직스러운 국가기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는 우리 경제관료들이 당면한 최우선의 과제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