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랜드그룹(대표 박성수)의 사원들은 지난 여름을 유난히 뜨겁게 보냈다.

누구라도 올 여름의 폭염은 처음 겪는 것이었지만 이들은 그 더위를 피하지
않았다.

7~8월에 이랜드를 찾은 사람들도 크게 곤욕을 치러야했다.

이랜드사옥에는 에어컨이 한대도 없었기 때문이다.

"중저가의류판매사가 에어컨을 틀며 근무할 수 없다"는 것이 이랜드가 올
여름의 더위를 온몸으로 받아 이겨낸 이유다.

80년 이대앞에서 3평이 채 못되는 옷가게 잉글랜드로 시작, 지난해 의류
업체 최초로 매출 5천억원을 돌파한 고성장의 밑바탕에는 이렇게 무모하다
싶을 정도의 패기가 깔려있다.

이랜드의 신화는 71년 연세대 식품공학과 동기생으로 입학한 박성수사장
박성남부사장 이응복기조실장 등 세친구가 만들어냈다.

박사장은 72년 서울대건축공학과에 재입학해 졸업했다.

이들은 생산과 판매의 2원화라는 경영스타일로 이랜드를 키워왔다.

이랜드에 "공장없는 회사"라는 말이 항상 따라다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랜드는 외형으로 보면 하나의 기업군이다.

브랜드별로 별도법인을 세워 현재 21개 법인이 있고 앞으로 법인으로
키울 사업부도 19개에 이른다.

그러나 이 "그룹"에서 사장은 박사장 단 한사람 밖에 없다.

각 법인은 과장에서 부장에 이르는 직급의 사원들이 본부장이라는 이름으로
경영을 책임지고 있다.

브랜드별로 별도법인을 세운 것은 한 브랜드가 실패하더라도 전체 회사의
운영에는 전혀 영향이 없도록 배려한 것이다.

각 법인은 철저히 독립채산제를 실시하고 있다.

88년 4백65억원이던 그룹매출이 89년엔 1천억원을 돌파했고 매년 1천억원
이상 성장해 지난해에는 5천4백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사원수도 88년 3백80명에서 지난해에는 1천9백86명 올해는 2천6백명선에
이를 전망이다.

대리점수도 사원수와 비례해 늘어나고 있다.

올해는 2천7백90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랜드의 이러한 고성장 비결은 중저가(이랜드측은 소득가격,국민가격이란
이름을 붙이고 있다)의류라는 틈새시장을 적절히 공략한데 있다.

80년대 말 이후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부상하기 시작한 청소년들의 기호를
찾아내고 만족시켜 주었다.

그 결과 이랜드는 창업 15년 만에 패션산업외에 건설 유통 광고 여행
식품사업 사회사업 문화사업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히고 해외에도 현지법인을
4개 갖고 있는 중견그룹으로 성장하게 됐다.

이랜드 만큼 국민 각계각층에 그 브랜드의 이름을 빠르게 인식시킨 의류
업체도 보기 드물다.

그러나 이랜드 브렌따노 언더우드 헌트 제롤라모 쉐인 스코필드 로엠 등
브랜드이름은 널리 알려진 반면 회사자체는 별로 아는 사람이 없다.

홍보마인드 보다는 제품 판매를 위한 광고마인드가 강하고 외부적 평가
보다는 내부적 단합력을 더 소중히 생각하기 때문이다.

2천여 사원의 평균연령은 29세.

젊은 기업인 만큼 기존의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점이 너무도 많다.

이른바 "이랜드식"이다.

매일 웃음과 인사연습을 하고 매달 MT나 문화행사를 갖고 계절마다 1가지
이상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또 새벽시간을 이용해 자기계발의 시간을 갖는다.

직원들은 매일 도시락을 싸다니고 화장실청소도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직접하고 있다.

그래서 이랜드는 단합력 높은 대규모 대학써클에 자주 비유되기도 한다.

또 기독교신자가 많은 만큼 사내외를 불문하고 공식적인 모임에서는
아무리 작은 모임이어도 술자리는 금지돼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입사 2년내에 해외경험을 쌓는다.

올 1/4분기에만 4백50여명의 직원이 해외에 다녀왔다.

모든 직원들이 현지에서 제작된 미국, 중국 지도를 하나씩 갖고 있다.

이랜드에는 또 교육이 많다.

평균교육기간이 직원 1인당 연 2개월이상이다.

회사가 너무 젊기 때문에 거기서 나오는 경험부족을 교육으로 메꾸고 있다.

단합된 조직력과 그것을 가능케하는 자발적 참여, 다양한 동기부여가
이랜드의 기업문화로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이제 이랜드의 고성장에도 한계가 왔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촘촘한 인간관계로 맺어졌던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조직관리가 차츰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

기독교신자대 비신자의 비율이 50대 50이 되면서 단합된 힘이 예전같지
않다는 평가도 있다.

또 각 브랜드별로 경쟁체제를 도입하다 보니 브랜드별 매출신장에는
도움이 되지만 그룹으로서는 불리한 점이 없지 않다.

한 브랜드가 범한 실수를 다른 브랜드가 범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 이랜드
그룹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랜드식의 "독야청청"이 더이상 신선한 것만도 아니다.

대리점에 들른 품질검사원이 도시락을 먹으며 점심 한끼라도 접대받지
않겠다는 태도가 여전히 처음 당하는 대리점주에게는 당혹감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랜드는 7년단위 그룹발전계획의 3차년도 첫해인 올해를 월드마케팅으로
눈을 돌리는 도약기로 삼고 있다.

이제 그룹규모에 걸맞게 증시상장도 준비하고 있다.

서구적 합리주의와 청교도 정신에 바탕을 둔 이랜드식 사고방식을 한국적
정서와 어떻게 접목시키느냐가 이랜드의 또 다른 과제로 남아 있다.

< 권영설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