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획원 과장을 끝으로 관에서 나와 "초야"에 묻혀온 이경조씨(59).

경제기획원 관료들은 "파워풀(재무부)"하지도, "컬러풀(상공부)"하지도
않고 그저 "오너러블"할 뿐이라던 어느 전직 장관의 말을 곱씹는 나날을
보내왔다.

퇴직후 "춥고 배고픈 세월"을 보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얼마전
모처럼의 "일자리"가 주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다름아닌 몽골정부의 정책자문관으로 1개월간 파견나가는 것.

그는 몽골정부가 추진하고있는 외자도입과 관련된 법령제정을 자문해주는
역할을 소개받아 지난달말 울란바토르로 떠났다.

"단기 아르바이트"긴 해도 자신의 공직시절 경륜을 살릴 수 있는, 꽤
괜찮은 일이 걸린 셈이다.

직업소개소는 퇴직 경제기획원 관료들의 친목 상조회인 경우회. "노병
들의 사랑방을 면치못하고 있다"며 자조해온 경우회가 요즘들어 조금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동남아 아프리카 동유럽등지의 개도국들로부터 "정책자문을 해달라"는
주문이 드물지않게 들어오고 있어서다.

올초에는 경우회의 또다른 회원을 3개월간 베트남에 파견했었다. 베트남
정부가 추진하고있는 경제개발계획수립에 대한 "정책지도"가 주문받은
일이었다.

이 정도의 단기 아르바이트로 회원들의 "배고픔"을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체감 추위"는 없앨 수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는
셈이다.

추위는 커녕 "현역시절의 정책노하우를 개도국에 수출하는 역군"으로
거듭 나는 명예, 그야말로 "오너(honor)"를 되찾게 됐다고나 할까.

따지고 보면 경우회가 직업소개소로 "자립"하게 된 것은 작년부터 본격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한 이런 "해외 인력송출"로 비롯된거나 마찬가지다.

그 이전에도 회원들에 대한 "직업알선"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점잖게
말해 "스리 쿠션", 속되게 표현하면 "구걸형"으로나 회원들의 자리를
만들어 줘왔다.

예컨대 재무관료 동창회인 재우회에 부탁해 국책은행 지점장 몇자리를
경우회원들의 "고정 티오"로 분양받고 있다던가, 지난해 이경식당시
경제부총리의 "빽"을 빌어 건설부산하인 토지개발공사의 사장쿼터를
따낸 식으로 말이다.

다른 경제부처들과 달리 산하에 "배타적"으로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
없으니 "궁색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경우회같은 퇴직관료들의 동창회가 "노병"들의 일자리 알선
이나 하는 직업소개소 일만 하는 건 물론 아니다. 사실 그런 일은
정관에도 없는 부수적인 일일 뿐이다.

"경제기획원및 기타 기관에 대하여 경제정책에 관한 자문및 건의.경제
기획에 관한 조사연구및 홍보"(경우회) "상공행정에 관한 정부 공공및
기타기관으로부터 의뢰되는 조사연구및 위임업무의 수행"(상우회)등
"그럴싸한" 사업목표를 정관에 집어넣고 있다.

건설부 예비역들의 동창회는 아예 명칭자체를 "건설진흥회"로 하고있을
정도다.

그러나 이들 동우회들이 정관에서 밝히고있는 "정책자문"이나 "정책수요
조사"사업을 한 적은 거의 없다고 한다.

"현역들이 그런 일을 맡기지도 않거니와 할만한 상근인력도 없다"(박경동
경우회 상임이사) "회원들의 회비로만 예산을 의존하고있는데 1천여명의
회원중 연간 2만원되는 회비를 제대로 납부하는 사람은 30%도 채 안된다"
(원덕상상우회 사무국장)는 등의 "애로"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고작해야 연초 한번씩 전회원들을 상대로 갖는 신년하례회나
정기총회같은 잔치판을 벌이는 게 "회"의 존재를 과시하는 "사업"의
전부인 것처럼 돼있다.

건설진흥회는 단 한번 본부의 "일"에 "자문"을 한 적이 있기는 하다.

88년 권녕각장관시절 건설부의 직제축소가 추진되자 성명서를 내 "직제
축소에 반대한다"는 훈수를 뒀던 것. 훈수가 주효한 덕분인지 어쨋든
권장관은 직제축소방침을 철회했었다.

그렇다고 이들 동우회가 "사랑방행사"에만 만족하고있지는 않은 것 같다.
개발연대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온 "주역"들이라는 자부심을
살려 "개발행정 기록남기기" 사업에 다투어 나서고있다.

경우회는 올해부터 이 일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다. "기록을 남기지
않는" 우리 관료행정의 맹점을 경제개발계획의 산실이었던 경제기획원
예비역관료들부터가 앞장서 바로잡아보자는 계획도 깔고있다고 한다.

상우회도 70년대의 중화학투자계획수립의 비사들을 당시 실무주역들의
증언을 통해 채록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관료들의 "배타적 프라이드"가 퇴직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이들 동우회가 "내부의 벽"부터 허는 일이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역시절의 "계급"이 회원들의 나이나 경륜보다 우선시되는 풍토도
그렇지만, 상역회(상공부 상역국출신들의 소그룹)등 출신부처의
"엘리트국"을 거친 예비역들로만 별도 구성된 "이너 써클"이 정작
본회보다 더 활성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그중의 하나다.

구상공부와 구동자부가 작년2월 통합된 뒤 별도로 운영돼온 상우회와
동우회를 합치자는 논의가 일고있지만 "주도권"을 놓고 벌어지고있는
신경전때문에 거론단계에만 그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경우회처럼 관료출신만이 아니라 "퇴역 출입기자"들까지도 정식 멤버로
받아들이고 있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배타성"은 동우회들의 보편적인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개발연대를 주도하며 숱한 "무용담"을 추억처럼 쌓아올리고 있는 우리
퇴직경제관료들이 "오너러블"한 예비역 경제관료의 진면목을 되찾을
길은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