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대직.대리". 요즘 은행원들이 꼽고 있는 "3D"다. "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일을 나타내는 "3D업종"에 빗댄
말이다.

어느 직장에나 "3D직종"은 있기 마련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 서치라이트
가 비치는 곳이 있으면 반드시 그림자가 드리운 곳도 존재한다. 그러나
불빛이 항상 고정된건 아니다.

시대에 따라 변한다. 이에따라 "3D직종"도 수시로 바뀌고 있다.
중소기업은행의 이모지점장(47).

그는 지난 1일 "은행원의 꽃"이라는 지점장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부임
1주일만에 "급변하는 금융환경"을 실감해야 했다.

대충 지점사정을 파악하고 직원들의 업무분장을 할 때였다. 이상하게도
대부계나 당좌계를 맡으려는 직원이 적었다.

전같았으면 희망자가 너무 많아 교통정리에 애를 먹었을 터였다. 결국
지점장직권으로 가장 고참대리를 대부계책임자로,그 다음 고참대리를
당좌계책임자로 배치키로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지점차장이 "관행이 변했다"고
딴죽을 걸고 나왔던 것. 요즘엔 입행기준이 아닌,지점전입순서로 대부나
당좌업무를 맡긴다는게 차장의 "충고"였다.

이지점장이 본점에 들어온 때는 지난 90년. 본점에서 차장과 부부장을
지내고 4년만에 지점에 나왔다. 이지점장이 지점차장시절만해도 대부나
당좌업무는 단연 "보직1순위"였다.

업무가 복잡하고 늦게 끝난다는 단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는 은행의 핵심업무다. 업체들앞에서 적당히 힘도 줄수 있다.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떡고물"이 생겼던것도 사실이다.

그보다도 대부나 여신업무를 해봐야만 은행업무를 익혔다고 평가받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4년만에 이런 관념은 뒤바뀌었다. 직원들이 대부
업무를 꺼려하는 이유는 이랬다.

예대부문이익이 줄어들면서 대부도 핵심업무에서 서서히 벗어나는 추세다.
기업체의 힘이 세짐에따라 대부담당자는 상대적으로 "약자"로 격하됐다.
오히려 툭하면 거래은행을 옮기겠다는 협박을 듣기 일쑤다.

그렇다고 업무가 줄어든것도 아니다. 늦게까지 당좌를 막거나 심사를
해야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반면 책임은 커졌다. 행여
부실여신이라도 발생하면 그 1차적인 책임은 고스란히 대부담당자가
져야한다.

조흥은행의 박모대리(34)는 지난번 여름휴가를 가는데 애를 먹었다.
겨우겨우 눈치를 봐서 3일간의 휴가를 얻는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휴가기간동안 업무를 대신 맡으려는 동료가 선뜻 나서지 않았다.
자신의 일도 아닌데 도장을 잘못 찍어 낭패당하지 않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물론 휴가를 갈수는 있었지만 마음이 편치못한다는게 박대리의 얘기다.
그래서 박대리는 동료업무를 대신 해주는 "대직"을 3D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S은행의 강모대리(38)는 지난해 서울여의도지점에 근무할때 "대리"의
책임을 절감한 적이 있었다.

한 거래업체가 부도위기에 몰렸다. 교환돌아온 2억원의 당좌수표를 결제
하자니 잔액이 모자랐다. 업체사장은 부친의 보통예금을 찾아 막아줄 것을
요청했다.

지점장도 튼튼한 회사라며 일단 "불비거래"로 처리,부도는 막자고 했다.
예금을 찾으려면 반드시 책임자(대리)의 도장이 필요하다. 그 의무는
강대리에게 돌아왔다.

결국 강대리는 지점장과 차장이 함께 도장을 찍는 조건으로 예금을 인출,
부도를 막았다. 그러나 정확히 두달후에 그 회사는 부도를 냈고 사장의
부친은 부당한 예금인출이라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강대리에게
돌아온건 "견책"이었다.

지점장대리. 말그대로 "지배인"인 지점장의 위임을 받아 업무를 처리하는
직위다. 이들의 도장이 찍히지 않으면 예금인출도,부도결정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대리는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고도 얘기돼왔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인사적체로 대리숫자는 행원만큼이나 늘었다. 따라서
과거의 행원업무를 하고있는 대리들이 많아졌다.

반면 책임은 그대로다. 자신이 결정권도 갖지못하면서 문제가 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지점대리보다는 차라리 본점 조사역
자리가 훨씬 낫다고하는 얘기도 나온다.

이렇게보면 "대리"도 3D의 하나로 꼽을만 하다. 물론 대부.대직.대리를
3D로 얘기하는데 동의하지 않는 은행원이 아직은 많다.

그러나 은행원의 선호도가 변한건 사실이다. 과거 지점에선 영업점의
현금출납을 담당하는 출납계와 연체금액을 받아내야하는 카드계,지점의
계수관리를 하는 경영관리계등이 3D로 거론됐었다.

반대로 대부 당좌 외환계등이 양지의 3총사였다. 지금은 아니다. 오히려
양지의 3총사가 3D로 거론된다.

이런 현상은 본점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예전엔 종합기획부 인사부
여신기획부등이 각광받았었다. 지금은 증권부 신탁부 국제금융부등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3D. 비록 싫지만 누군가는 해야하는 일이다. 3D직종이 변한다는건 그만큼
금융환경도,구성원의 의식도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이를 어떻게 조화
시키느냐가 은행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과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