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시행된지 1년이 지나가면서 비밀보장을 이유로 금지됐거나
일시 중지됐던 일들이 하나씩 가능해지면서 비밀보장을 "보장"한 긴급
명령의 정신이 후퇴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재무부는 그러나 "실명제가 어느정도 정착된만큼 비밀을 보장한다는 원칙을
지키면서도 할일은 해야 한다"(임창렬재무부 금융실명제실시단장)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비밀보장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재무부는 최근들어 비밀보장과 관련,3건의 중요한 유권해석을 내렸다.
비밀보장을 위해 "희생"했던 금융기관감독업무와 부조리 척격기능을
서서히 정상화시키겠다는 내용들이다.

우선 지난달28일 증권거래소는 "매매심리및 회원감리업무에 필요한 자료"
를 증권사에게 요청할수 있게했다고 밝혔다.

증권거래소는 긴급명령(4조1항3호)에서 정한 감독기관은 아니나 "매매심리
업무등은 증권회사가 거래소에 위임한 위탁매매업무의 일부"에 해당돼
긴급명령4조1항4호의 "동일금융기관의 내부"로서 자료제출을 요청할수
있다는게 재무부의 설명이다.

또 6일에는 은행 증권 보험등 3개감독기관은 피감독기관이 아니더라도
"감독.검사에 필요한 정보등"을 다른 금융권의 기관에 요청할수 있다는
유권해석을 내렸다.

이에따라 증권감독원은 시세조정이나 내부자거래등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 불공정거래혐의자의 금융거래자료를 은행이나
보험등 다른 금융기관에 요청할수 있게됐다.

재무부의 이같은 입장은 이전과는 확실이 달라진 것이다. 그동안 "실명제
로 불공정거래에 대한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실명제가
정착될때까지는 현행대로 비밀보장을 우선한다"(홍재형재무부장관)고
일관된 반응을 보여왔었다.

그러나 실명제1주년을 맞아 실명제가 어느정도 정착됨에 따라 비밀보장에
절대적인 우선순위가 주어졌던 과거와는 달리 비밀보장과 감독업무의
조화를 이뤄나가겠다는 식으로 정책우선순위가 바꾸고 있는 양상이다.

"작전설"로 대표되는 불공정거래가 증시에서 활기를 띠는 마당에 "비밀
보장"이란 염불만 외고 있어서는 실명제정착을 오히려 해칠 것이란 지적도
이런 결정을 내리게한 요인으로 보인다.

이와함께 부정선거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관리위원장에게 부정선거후보자에
대한 금융자료를 금융기관장에게 포괄적으로 요청할수 있도록 한 것도
눈여겨볼만한 대목이다.

홍장관은 최근 지난3월에 제정된 "공직선거및 부정선거방지법"이 신법
우선의 원칙에 따라 "긴급명령"보다 우선 적용된다고 밝혔다.

이에따라 선관위는 긴급명령의 비밀보장조항에도 불구하고 선거비용의
수입과 지출에 관한 조사를 위해 불가피할 경우 금융기관장에게 후보자
후보자의 직계존비속및 배우자등에 관한 금융거래자료를 요구할수 있게
됐다.

특히 "긴급명령"은 특정점포에 한해 자료제출권을 인정한 반면 부정선거
방지법은 "투망식의 포괄요구권"을 허용하고 있다. "부정선거방지"가
"비밀보장"보다 훨씬 중요하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신법우선"을 명백히 함으로써 그동안 논란을 빚었던 국회의
국정조사나 감사원의 감사활동에서도 관련법을 고치면 "긴급명령"에 앞서
필요한 사람에 대한 금융자료를 요청할수 있게됐다.

결국 사생활보호는 부조리척결이라는 또다른 공공목적과 타협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고있다. 좋게보면 "조화"로 해석할수도 있지만 실명제에 대한
불안심리가 완전히 불식되지 않은 시점이어서 또 다른 마찰이 예상된다.

<홍찬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