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7시께 광화문지하도.

하루도 걸르지않고 이 곳을 찾는 "단골손님"들이 있다. 다음날 아침
배달될 조간신문의 가판을 수집하는 공무원들이다. 이름하여 가판대책반.

그날그날의 소속부처 관련기사를 체크해 보고하는게 임무다.

경제기획원 가판대책반은 1청사 부총리집무실에서 사 은 신문을 체크한다.
재무부는 교보빌딩에 방을 빌려 전담직원을 상주시키고 있다. 건설부는
덕수궁뒤 국토관리청 서울사무소가 작업실이다.

그러나 대부분 부처의 가판대책반원은 지하가판대에 쭈그리고 앉아 정신
없이 지면을 훑어야 한다. 본부에선 공보관실의 담당국장이나 과장이
대기한다.

"대책반"의 보고를 받는대로 해당부서 국.과장, 사안에 따라선 장관에게
보고해 대응책을 지시받는다. 해당신문사에 전화를 걸어 "무슨 기사를
빼달라"거나 "몇자 고쳐달라"고 부탁하는 힘겨운 씨름이 시작된다.

노동부는 지난 3월 "주요 노조 업무조사"에 착수키로 한 내부방침이 일부
신문에 흘러나간뒤 가판대책반의 활동에 더욱 고삐가 조여졌다.

신종노동탄압정책이 아니냐는 세간의 지적이 일면서 장관이 곤욕을
치렀기 때문. 오비이락격으로 이 일이 있은 직후 담당과장이 지방으로
좌천됐다.

얼마뒤엔 노사정책실장과 기획관리실장이 자리를 맞바꿨다. "언론때문에
문책인사가 이뤄졌다"는게 노동관료들의 시각이다. 국세청 간부는 따로
정해진 퇴근시간이 없다.

가판에 "튀는 기사"라도 났다하면 담당 국.과장은 즉각 호출된다. 이주석
소득세과장같은 사람은 노모의 간병중 긴급호출을 받고 한밤중에 뛰어
나오기도 했다.

언론을 흔히 "제4부"라고 하지만 과천경제관료들은 요즘 대언론업무를
"제3의 업무"(오영교상공자원부 중소기업국장)라고 말한다.

제1의 업무는 페이퍼웍(paper-work).

고유의 정책수립업무다. 제2업무는 대국회업무다.

페이퍼웍은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정책으로 확정된다. 경제관료들은 이들
두종류의 일만 잘 해내면 A급이었으나 상황이 이렇게 달라졌다.

제3의 업무-. 말이 좋아 그럴 뿐이다.

"언론때문에 공무원 못해먹겠다"는게 과천관가의 솔직한 표현이다. 실제로
"신문때문에 일을 그르쳤다"고 불평.불만이 대단하다. 심지어는 언론을
지청구한다.

예컨대 새 정부의 역점사업인 경제행정규제완화작업도 언론이 일을
그르치게 만든다고 불만이다. 사전검토단계에서 "이런 이런 규제를 완화
키로 했다"고 치고나오곤, 확정단계에서 신문이 "하기로 했다"고 보도한
사항이 빠지면 이번엔 "알맹이가 없다"고 써대니 어디 일을 제대로 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기자공해론을 주장하는 관료도 있다.

"중요한 서류업무를 하고있는때는 말할 것도 없고 조용히 정책구상이라도
할라치면 기자들이 들어온다.

똑같은 사안을 갖고 A사기자가 들이닥쳐 한참 설명을 해 보내고 나면
이번엔 B사기자가 들어와 똑같은 질문을 해온다.

내 설명은 다시 반복된다.

끝났는가 싶으면 다시 C사, D사기자가. 기자뿐인가. 관계부처나 정보기관
까지 가세하기도 한다. 이렇게해서 하루가 간다"(경제기획원 K국장).

우리 경제관료들이 언론에 빼놓지않는 충고는 또 있다. 국익을 생각해
달라는 것. 지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때의 경우를 대표적인 예로 든다.

작년12월 제네바에서 쌀개방협상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기자들이
"있을 수 있는 모든 대안을 긁어버리는 바람에" 협상을 우리 페이스로
이끌기 어려웠다는 항변이다.

"일본기자들만 해도 국익에 관한한 철저한 언관공조체제가 작동하고있다"
는 "한일언론문화 비교론"까지 들먹인다. 일리가 있는 하소연이다.

과도한 취재경쟁이 빚는 부작용과 폐해에 대해선 언론내부에서도 물론
자성론이 있다. 그러나 우리관료들의 언론피해망상증 내지 언론기피증이
먼저 검증돼야 할 문제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 사전 브리핑을 철저히 한다든지, 정보를 미리 공개
하고 협조를 구하는 공조체제를 소홀히하고 있다는 얘기다.

"정책은 국민을 위해 있다"는 "기본"을 잊고있다고나 할까. 사실 5공때
까지만 해도 경제관료들의 할 일은 "제1업무"로 족했다. 언론, 곧 국민의
"알 권리"는 철저히 통제돼있었다.

"페이퍼웍만 끝내면 발뻗고 목욕탕에 갈 수있었다"(모경제부처 차관).

이렇게 보면 요즘 경제관료들이 겪는 "대언론 스트레스"는 문민문화 적응
과정의 불가피한 진통인 셈이다. "페이퍼웍이 관료업무의 본령이고 제2,
제3의 업무는 실력있는 엘리트가 할 일이 아니다"(재무부 L과장)는 과거의
도식을 바꾸지않고는 그들 말처럼 "관리 해먹기가 힘들어질 수 밖에".

그들이 주장하는 "한일언론문화 비교론"만 해도 그렇다. "일본 국내신문
에 한일관계기사가 나가는 날이면 한밤중까지 일본의 담당관리가 한국
특파원 집으로 전화를 걸어 일일이 사실확인을 해준다.

우리관리들처럼 이런 기사가 불리하니까 빼달라는 식의 면피성 홍보전략
과는 차원이 다르더라"는게 일본대사관에 근무했던 어느 경제관료의
말이다.

정재석부총리도 작년말 취임직후 10여년만에 공직에 돌아와 겪는 언론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었다.

"기자들이 과거에 비해 학력도 높고 똑똑해졌다. 언론기관도 엄청나게
늘었다. 그러면서도 기자들의 가동률이 높아졌다. 열심히 뛴다는 얘기다.

관료들의 자세도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됐다. 1급들이 수시로 기자
들에게 브리핑을 갖도록 해야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