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한 평생을 살아간다.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숙명의 길"만을 따라가는가 하면 이에 만족지않고 스스로 찾아서
"길"을 창조하며 개척해가는 사람도 있다.

나는 지금까지 일흔 다섯해에 달하는 인생의 길을 걸어오며 유난히
"세상의 길"을 내는 수송과 깊은 인연을 맺고 "나의 길"을 개척하면서
살아왔다. 1920년 일제치하의 암흑기에 태어나 고보 1학년까지 다니던
정규학업을 중단하고 선박기술을 익혀 약관의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서
중국과 동남아 등지를 항해한 것이 우선 그러하다.

조국의 해방과 함께 트럭 한대로 창업을 하여 어언 반세기에 걸친 사업의
역정에서도 줄곧 땅과 바다와 하늘의 길을 닦는 외길인생만을 살아왔다.

남이 터를 다져놓은 사업에 뛰어들지 않고 스스로의 창의로 사업을 개척함
을 신조로 삼았던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사업은 예술"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 예술가의 혼과 철학이 담긴 창작품은 수천년이 지나도 그
아름다움을 잃지 않듯이 경영자의 독창적 경륜을 바탕으로 발전한 기업은
오랫동안 좋은 평가를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국내에서 돈을 번 것이 아니라 해외로부터 달러를 획득해서 사업의
규모를 키워왔음을 하나의 자부심으로 간직하고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뛰어다니는 동안 겪은 풍상과 온갖 고난을 뼛속 깊이 체험하기도 했다.

세상에 남이 거저 가져다 주는 것은 없는 법이기에 자본이 없으면 노력으로
보충한다는 각오가 필요했다. 적수공권으로 시작했으니 남들보다 더 많이
뛰어야 했고 남이 두세시간 생각할때 나는 다섯시간을 생각해야만 했다.
일이 엉켜 고뇌에 빠질 때는 남들이 단잠에 든 깊은 밤에도 뜬눈으로 보야
했고 몇번인가 밤을 지새우며 울음을 삼키던 기억도 생생하다.

그동안 나는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끈질긴 집념과 노력 그리고
평소 쌓은 신용을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며 기회를 놓치지않는 센스와 결단
이 필요함을 터득했다. 나는 남의 흉내를 내는 모방이나 남이 닦아놓은 길
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한다.

남들이 성공하니까 욕심을 내 그걸 무모하게 쫓아다니는 것이 능사가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낚싯대 10대를 걸쳐 놓는다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것은 아니다.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서는 하늘을 바라보려 해서는 안된다. 물이 쏟아지고 말기 때문
이다. 이를 대분망천이라고 한다. 사업도 이와 마찬가지로 전문성을 가져
야 한다.

사람들은 "사업에 성공하려면 운이 따라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것이 노력하지 않고 저절로 얻게 되는 의미라면 맞지 않는 말이다.

어떤 기회나 사업의 찬스라는 것은 남들이 거저 가져다 주거나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인생에서 행복이나 가치를 찾는것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개척하고 노력하는 가운데 기회를 내것으로 만들어야만
마침내 성취할수 있는 것이다.

신념을 갖고 추진한 창업자의 철학이 면면히 살아 숨쉬는 기업이야말로
훌륭한 예술작품처럼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만인을 위해 기여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 남을 돕는 편이 더 즐겁고 아름답듯이 부실
기업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으며 구제금융이나 받아야 하는 기업보다는 착실한
성장으로 많은 세금을 국가에 바치고 사회의 복지증진에 기여하는 사업체이
어야만 진정한 존재가치를 지니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외길에 종사하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고 구상을 가다듬어 이를
실천에 옮겨왔다. 그중의 일부 오래된 이야기들만을 이 난을 통해 연재
하고 이제 중간에서 줄이는 바이지만 내 나름대로 몸으로 터득한 "체험의
철학"이 후진들에게 조금이라도 참고가 됐으면 더할나위 없는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때로 주관에 치우쳤다거나 다소 자화자찬식의 표현이 있었더라도 70여년간
살아오며 느낀 "수송외길 인생"에 확신을 갖는 기업인의 집념쯤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졌으면 고맙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