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놀룰루=정만호기자] APEC(아.태경제협력체) 정상회담에 이어 열린
재무장관회의는 우려하던 대로 미국의 금융시장개방 공세의 장으로 실체가
가시화됐다. 쌍무적인 협상이나 압력은 없었지만 "금융시장의 추가적인
개방이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 졌고 이같은 합의를 미국이 주도
했다는 점에서다.

특히 경제공동체의 의미를 갖는 "자본시장의 통합"이라는 단어를 합의문에
삽입키로 함으로써 개방과 규제완화를 향한 진로를 피할수 없는 사실로
기정사실화 시켜놓았다.

원칙적이긴 하지만 향후 아.태지역국가들이 추구해야할 금융정책의 향방이
"추가개방"으로 정해진 이상 이날 회의의 의미를 구체화시키기위해 앞으로
속개될 재무부실무자나 중앙은행 대표자 회의등은 보다 실무적인 개방스케줄
을 논의할수 밖에 없게된 형국이다.

이같은 상황은 회의개막과 함께 작성된 발표문(초안)에 극명하게 드러난다.
이 발표문에는 특정국가의 주문이나 개방계획이 전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토론주제도 <>인플레없는 지속적 성장 <>사회간접자본 투자재원조달 <>자본
시장 발전방안등으로 정해져 특정국가가 특별한 사안을 요구할 여지를 두지
않았었다. 장관회의에 앞서 열린 재무차관회의에서는 특히 "이 회담이 거시
정책 조정기구나 금융시장개방을 요구하는 채널로 활용되어서는 안된다"는
원칙까지 채택됐었다.

사회간접자본 시설투자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각국들이 국내채권시장의
추가적인 "발전"을,또 인플레없는 지속성장은 외국인의 직접투자 확대와
다양화를 추구해야하며 국경없는 증권투자를 겨냥한 셈이다.

결국 인플레 없는 성장과 사회간접자본 투자확대는 자본시장의 "발전과
통합"으로만이 가능하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개방"이라는 미국의 논리에
박수를 쳐준 셈이다. 미국측으로서는 양당사자가 맞붙는 쌍무적인 전쟁이
없이 역내국가의 개방이라는 목적을 달성해 나가고 있는 셈이다.

참가국 관계자들이 이번 회의를 "금융시장 개방을 위한 아.태지역
다자간회의"라거나 "축소판UR"라고 칭하는것도 이때문이다.

실제로 미국측도 이번 회의에 참가하는 목적이 "선린우호증진"차원이
아니었음을 명확히 했다. 벤슨 미재무장관은 이번 회의에 참가하기위해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며 가진 기자회견에서 상대국들에 "압력을 가하지
않겠지만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태지역 국가들의 팔을 비트는 일은 없을것"이라고 재삼 다짐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계속 성장을 유지해갈지,시회간접자본투자에 들어
가는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를 물어보겠다"며 간접적인 공세가 취해질 것
임을 분명히 했다. 벤슨 장관은 홍수가 나면 자신뿐 아니라 이웃들의 논밭이
한꺼번에 피해를 입듯이 아.태지역 국가들도 상호의존적 관계가 심화돼 한
나라가 인플레이션이나 실업 등으로 상황이 악화되면 다른 나라도 영향을
피할수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니까 이번 APEC 재무장관회의는 미측이
이같은 시각과 입장을 뚜렷하게 전달했고 다른 참가국들은 미측의 "지도"
에 이의가 없음을 밝힌 자리였다고 정리할수 있다.

미측이 APEC재무장관회의를 매년 정례화하자고 주장한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수 있다. 다른 나라들은 이회의의 연례화는 앞으로 성과를 보아가며
결정하자고 요구,"우선 내년에는 개최하자"는 선에서 합의됐지만 미국이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금융개방공세는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음이 이번
회의에서 확인됐다고 볼수 있다. 때문에 우리가 갈길은 더욱 분명해졌다.
국내경제사정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주도면밀한 개방프로그램을 준비해
두어야한다는 경고를 다시한번 새겨봐야 한다는 점이다.

"힘"으로 논리를 대신하는 미국의 개방압력의 기세를 누구러뜨리고
APEC회의가 개방협상자리로 변질되지 않도록 나머지 국가들이 공동대응을
모색해야할 필요성도 높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