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현실화"를 내걸었던 정재석경제팀이 7일 물가대책실무회의에서
가격관리를 강화하겠다고 급선회함으로써 물가정책이 혼선을 빚고 있다.
경제논리를 내세운 이상론이 일단 물가안정이란 현실론앞에서 일단 좌절된
것이다.

가격현실화를 통해 왜곡된 가격구조를 바로잡고 시장기능을 회복
시키겠다는 정부총리의 논리가 잇단 가격인상러시에다 정치권과 여론에
밀려 설땅을 잃게됨으로써 이른바 민간주도 경제정책에 난관이 예상되고
있다.

이날 물가대책회의에서 제시된 대책을 보면 가격현실화 논리와는 거리가
멀다. 30개 기초생필품 가격을 올 1년동안 5%이내에서 특별관리한다는
것은정부의 가격규제가 종전보다 강화되고 있음을 뜻한다. 지금까지
20개에 불과하던 특별관리품목에 10개 품목을 추가한데서 이런 움직임을
읽을수 있다.

목욕료 이미용료등 개인서비스요금을 과다인상한 업소에 대해 국세청이
세부조사를 실시하고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인상된 승용차 소주 등 공산품
메이커의 담합여부를 조사하는 데서도 정부의 강력한 가격규제의지를
엿볼수 있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전 행정력을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정부의 강력한 방침을 눈치챈 기업들은 이미 인상한 승용차
소주등의 가격을 원상회복시켰다. 여기에는 상공자원부등 주무당국의
강력한 요청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상공자원부는 한술 더떠
30대 그룹 담당임원과 업종별단체 관계자를 불러 가격동결을 종용할
계획이다. 지난해 3월 민간기업들이 1년간 가격동결을 약속한 만큼 오는
3월까지는 가격을 일체 올리지 말라는 주문을 한다는 것이다.

정재석경제팀이 가격현실화를 슬로건으로 내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강력한 가격관리에 나설수 밖에 없었던 것은 물론 정부총리의 가격현실화
발언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인상러시가 밀어닥쳤기 때문이다. 올해
경쟁력강화를 위해임금안정을 최대과제로 삼은 터라 정부로서도 물가불안을
방치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김대통령도 6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올해를
노사분규가 없는 한해로 만들 것을 노사양측에 제의한다"고 밝혔을
정도였다.

사실 연초부터 물가불안이 야기된 데는 정부총리의 가격현실화 발언이
직접적인 동기가 된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정부총리는 취임 일성에서
"공공요금의 현실화요인이 발생하면 그때그때 반영해 물가왜곡을
바로잡겠다"고 강조했다. 가격구조가 왜곡되면 결국 서민이 피해를 보는
만큼 경제논리로 풀게다는얘기였다. 그러나 이로인해 무차별적인
가격인상이 초래되자 정부총리는 7일서면 인터뷰를 통해 "공공요금의
현실화는 다른 물가에 미치는 심리적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런 말바꿈의 배경에는 물가불안에 놀란 정치권의 "압력"이 작용한
것이어서 정부총리의 자율화.민간주도의 경제철학이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지 관심을 끌고 있다.

사실 가격규제를 폐지하는 것은 경쟁력강화차원에서 당연한 논리다.
정부가 그물처럼 짜놓았던 각종 가격규제는 과거 물자부족시대의 유산이다.
공산품을 비롯해 서비스요금에 가해지는 정부규제는 종래 소비자를
보호한다는 논리에서 정당화되어 왔으나 국내시장이 개방되는 마당에
가격규제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정부총리가 취임 첫마디에서 가격현실화 방침을 밝힌 것은
경제논리로 보면 지극히 타당한 것 으로 받아들일만하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논리는 불과 2주일만에 정치논리와 여론에 밀려 설땅을 잃게 됐다.

정부총리는 가격현실화 외에도 공기업매각 민자유치 규제완화등
경제논리를 되찾겠다는 포부를 밝혔었다.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민자유치를
촉진하기위해 경제력집중이란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애기였다. 그러나 가격현실화정책부터 여론의 압력에 밀려난
상황이고 보면 이같은 민간주도의 경제정책이 무리없이 추진될수 있을지
의문이다.

<박영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