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는 'FFF 레이싱팀' 경기 차량에 고성능 레이싱 타이어를 제공한다/사진=한국타이어
한국타이어는 'FFF 레이싱팀' 경기 차량에 고성능 레이싱 타이어를 제공한다/사진=한국타이어
자동차는 고관여 제품이다. 이와 달리 자동차 타이어는 저관여 제품이다.

소비자는 자동차를 살 때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보를 탐색하고 여러 상품을 꼼꼼히 비교한다. 그런데 타이어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새 차를 살 때 다른 옵션은 따지지만 타이어에 신경쓰는 경우는 흔치 않다. 타이어를 교체할 때도 정비사가 권하는 브랜드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타이어는 ‘B2B 성향이 강한 B2C’ 상품으로 통한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한국타이어는 ‘마케팅 보다 브랜딩’ 전략을 택했다. 제품 판매 증대에 초점을 맞춘 마케팅 보다 자사 브랜드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와 느낌이 소비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하는 브랜딩에 집중하고 있다.

상황 1 세계 1, 2위 기업에 맞서야 하는 상황
도전 1 스포츠 마케팅 ‘투 트랙 전략’

글로벌 시장에서 타이어 1, 2위 기업은 브릿지스톤과 미쉐린이다. 두 회사는 마케팅 전략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브릿지스톤은 올림픽이나 미국프로골프(PGA) 등을 후원하는 스포츠 마케팅을 한다. 타이어 회사인데도 모터스포츠엔 관심이 없다.

반면 미쉐린은 스포츠 마케팅은 모터스포츠를 통해서만 한다. 대신 아기, 가족 등 친숙한 콘셉트로 브랜드 이미지를 만들고 ‘미슐랭 가이드’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타이어 선두 기업에 맞서야 하는 한국타이어는 스포츠 마케팅을 통한 브랜드 강화를 위해 투 트랙 전략을 세웠다. 하나는 주력 시장별 타깃 스포츠 선택이다. 미국은 프로야구, 유럽은 축구를 선택했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와 2018 시즌부터 공식 후원 계약을 체결해 광고, 프로모션, 이벤트 등으로 브랜드 위상을 강화하고 있다.

유럽에선 2016년부터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의 글로벌 마케팅 파트너가 됐다. 앞서 2012년 유럽 프로리그 상위팀 간 축구대회인 ‘유럽축구연맹 유로파리그’와 공식 후원 계약을 맺고 9년 동안 유럽에서 가장 큰 프로축구 대회의 공식 파트너로 활동했다.

김정곤 한국타이어 브랜드전략팀장은 “비용 효율을 감안해 주력 시장별 타깃 스포츠를 선정해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팀장은 “스포츠 마케팅의 효과를 경기장에서 우리 브랜드가 몇 번 노출됐는지로 따지기 보다는 각국 소비자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즐기면서 한국타이어 브랜드를 친근하게 느끼는 정성적 효과를 중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른 하나는 타이어와 관련성이 높은 모터스포츠 마케팅이다. 전세계 60여 개 모터스포츠 대회에 레이싱 타이어를 공급하거나 참가팀을 후원해 왔다. 지난달엔 세계 정상급 레이싱팀으로 꼽히는 FFF레이싱팀과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주요 출전 경기를 후원하기로 했다.

상황 2 타이어 판매 얘기만 넘쳐난다
도전 2 “기술과 미래, 그리고 혁신을 얘기하자”

국내 타이어 시장에선 ‘(우리 타이어가) 가격이 싸요. 질겨서 오래가요’같은 타이어 판매에 초점을 맞춘 얘기가 오랫동안 주류였다. 가격과 내구성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한국타이어는 우선 타이어에 대한 소비자 관심부터 높여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를 위해 2012년 ‘It is’ 캠페인을 선보였다. 운전자가 원하는 대로 반응하는 타이어가 가장 좋은 타이어라는 생각으로 핸들링, 가속, 제동 등을 강조했다.

이어 2013년 ‘더넥스트드라이빙랩(TNDL)’ 캠페인을 공개했다. ‘기술’과 ‘앞으로 닥칠 세상’을 얘기하자는 의도였다. ‘디지털 크리에이티브 카’, ‘마인드 리딩 타이어’, ‘볼 핀 타이어’, ‘트랜스포밍 타이어’ 등 기술과 미래를 상징하는 혁신적인 네 가지 주제를 잇따라 등장시켰다.

올해는 기술과 가까운 미래를 상징하는 다섯 번째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왼쪽)와 독일 프로축구(오른쪽) 경기장의 한국타이어 광고/사진=한국타이어
미국 메이저리그(왼쪽)와 독일 프로축구(오른쪽) 경기장의 한국타이어 광고/사진=한국타이어

상황 3 새로운 고객이 필요하다
도전 3 게임·스트릿 패션에 타이어 접목

한국타이어는 1억 원이 넘는 테슬라를 사는 사람들에 주목한다. 그 정도 거액으로 포르쉐 같은 전통적인 프리미엄 브랜드가 아니라 전기차를 사는 것은 신기술과 새 브랜드에 거부감이 없다는 의미라서다.

그런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은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에 신차용(OE, Original Equipment) 타이어 공급을 확대하는 것이다. 한국타이어는 테슬라 모델3와 모델Y를 비롯한 포르쉐 타이칸, 아우디 SQ8 등에 OE 타이어를 공급하고 있다.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기 위해 미국에선 캘리포니아 스타트업 ‘피치스’와 협업을 진행했다. 피치스는 빠르게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스트릿 패션 브랜드다.

한국타이어는 자동차를 트렌디하게 튜닝하는 문화를 스트릿 패션에 녹여내 커스터마이징 타이어를 선보였다. 김정곤 팀장은 “피치스의 마니아층에 한국타이어 브랜드를 자연스럽게 소개함으로써 미국 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는 좋은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선 넥슨과 온라인 레이싱 게임 ‘카트라이더’를 통한 제휴 마케팅을 벌였다. 30~50대가 주요 고객인데 이를 20대 이하로 넓히려는 시도였다.

■ 마케터를 위한 포인트

2000년대 초반 한국타이어 내부에선 “세일즈와 마케팅이 무엇이 다르냐”는 질문이 많았다. 지금은 더 이상 이 질문이 나오지 않는다. 마케팅이 작전을 세우면 세일즈가 실행한다는 것으로 역할구분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대신 “마케팅과 브랜딩은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 사람이 더러 있다. 이 질문에 대해 김정곤 팀장은 이렇게 말한다.

“스타벅스가 다른 브랜드를 제친 것은 고객들이 스타벅스의 브랜딩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도, 타이어도 커피 전문점처럼 일부 브랜드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사라지는 상황을 맞을 수 있습니다. 그 때 살아남는 브랜드는 마케팅을 잘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브랜딩이 뛰어난 브랜드일 것입니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에 소비자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그 회사가 마케팅을 잘해서가 아니라 브랜딩 때문입니다.”

장경영 선임기자 longrun@hankyung.com

■ 전문가 코멘트


□ 천성용 단국대 교수

과거 소비자들은 별 생각없이 자동차 정비사가 추천하는 타이어를 구매했다. 이 때 타이어 마케터들에게 중요한 ‘영업 대상’은 자동차 정비사이다. 정비소 선반을 자사의 타이어로만 채우면 소비자들은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를 선택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푸시 마케팅(push marketing)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최근 브랜드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까다로운 소비자들이 증가하면서 과거의 푸시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효과적이지 않다.

이제 타이어 회사도 고객에게 차별화된 브랜드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즉 고객이 우리 타이어 브랜드를 정비사에게 먼저 요구하게 만들어야 한다. 마케팅에서는 이러한 방식을 풀 마케팅(pull marketing)이라고 한다.

한국타이어는 이 과정에서 “브랜드 마케팅(Brand marketing)”을 적극 활용하였다. 마케팅에서 브랜드의 힘은 매우 강력하다. 브랜드의 사전적 의미는 ‘제품에 붙어 있는 이름’일 뿐이지만,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에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고, 브랜드와 감정적으로 연결된다.

한편, 성공적인 브랜드들은 제품의 물리적 속성(product attributes)이 아닌 제품이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beliefs and values)로 차별화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아디다스와 나이키 같은 브랜드는 운동화의 물리적 소재를 강조하기 보다 “Impossible is nothing”, “Just do it”과 같이 그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차별적으로 내세운다. 소비자들은 언제나 특별한 가치를 전달하는 브랜드를 사랑한다.

한국타이어의 경우에도 초기에는 가격과 내구성 등 ‘제품 속성’을 강조하다가 점차 핸들링, 가속 등 ‘성능 혜택’을 강조했고, 최근에는 미래와 혁신이라는 ‘가치’ 중심의 차별화된 메시지를 적극 전달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혁신적이고 트렌디한 자동차 스타일링 문화를 상징하는 ‘피치스(Peaches)’와 협업한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다고 판단한다.

다만, 마케터들은 브랜드 차별화가 단지 “다름”을 얘기하는 것만은 아님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에게 우리 브랜드 가치가 성공적으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그 가치가 실제 타깃 소비자에게 중요해야 하고(important), 기존의 것보다 더 우월한 가치를 전달해야 하며(superior), 시각적으로 쉽게 전달 가능해야(communicable) 한다.

또한,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조건은 경쟁자가 “쉽게 따라할 수 없는(preemptive)” 차별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브랜드 차별화에 성공한 마케터만이 그 댓가로 치열한 원가 경쟁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 최현자 서울대 교수

한국타이어 사례는 소비자의 제품 관여수준에 따른 정보처리 방식이나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와 인지도에 주목하여 브랜딩 전략을 세운 점이 흥미롭다.

소비자는 고관여 제품은 중심 경로(central route)를, 저관여 제품은 주변 경로(peripheral route)를 따르는 경향이 있다. 자동차처럼 관여 수준이 높은 제품에 대해선 상당한 인지적 노력을 기울이지만 타이어같이 저관여 제품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다.

고관여 제품의 경우 소비자가 기업이 제공하는 정보를 신중하게 처리하려 하므로 마케터는 충분하고 상세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와 달리 저관여 제품은 소비자가 인지적 노력을 많이 투입하지 않는 만큼 간단한 정보(브랜드 이미지)를 편하게 받아들이도록 전달해야 효과적이다.

한국타이어의 글로벌 스포츠 마케팅 활용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스포츠 경기가 정보(한국타이어라는 브랜드)의 주변에 존재하는 단서의 역할을 하고, 소비자는 주변 단서를 통해 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후원하는 브랜드에 대해 그 스포츠의 팬이 아닌 사람 보다 높은 로열티를 보인다. 미국 최대 자동차 경주대회 나스카(NASCAR) 팬들이 나스카 후원 브랜드에 대해 일반 소비자 보다 높은 로열티를 나타냈다는 실증 연구가 있다.

이런 연구 결과는 한국타이어가 미국에선 프로야구, 유럽에선 축구를 통해 스포츠 마케팅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브릿지스톤이 올림픽이나 골프 대회를 후원하는 이유도 각 대회의 팬들을 겨냥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두 회사가 어떤 스포츠가 자사에 유리할 지를 다르게 판단했을 뿐이다.

또한 소비자는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제품은 감성적 측면에서 구매 의사결정을 하는 경향이 있다. 다시 말해 자신이 ‘잘 아는’ 브랜드의 제품은 가격 품질 등 실용적 측면 보다 그 브랜드의 감성적 측면에 끌려 구매한다는 의미다.

타이어 브랜드 중 인지도가 최고 수준인 미쉐린이 아기, 가족 등을 활용해 브랜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이와 관련 된다.

물론 브랜드에 대한 선호도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브랜딩 전략도 중요하지만 소비자는 이에 걸맞는 최고의 품질을 기대한다는 것을 마케터는 늘 기억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