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나 자율주행차는 2000개 이상의 차량용 반도체를 사용한다. 사진은 현대차 아이오닉 5 . 사진=현대차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는 2000개 이상의 차량용 반도체를 사용한다. 사진은 현대차 아이오닉 5 . 사진=현대차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이 장기화되며 국내 완성차업계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한국GM은 이미 감산에 들어갔고 비교적 많은 재고를 확보한 현대차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25일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의 보고서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MCU) 수급은 다음달 바닥을 보일 전망이다. 완성차 업체들은 부품에 따라 통상 2~10개월치 재고를 비축하는데, 지난해 10월부터 공급난이 이어지며 재고 부족이 현실화된 것이다.

IHS마킷은 "반도체 부족 요인은 주문자 부착 생산(OEM)에 의한 수요 증가와 한정적인 반도체 공급에 따른 것"이라며 "두 문제가 해소되지 않는 한 관련 사태가 풀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공급난도 올 3분기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반도체 공급난에 따른 완성차 생산 차질 규모도 예상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이다. IHS마킷은 당초 1분기 전 세계 자동차 생산량이 67만대 가량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으나 최근 이를 100만대로 상향했다. 이달 들어 미국에 몰아친 한파와 일본에서 발생한 규모 7.3의 강진으로 차량용 반도체 업체들의 공장 가동에 차질이 발생한 점이 반영됐다.

다양한 부품 가운데 일부라도 재고가 바닥나면 완성차를 생산할 수 없다. 지난해 초 발생한 와이어링 하네스(자동차 전선 제품) 공급 차질에 국내 완성차 업계가 공장을 멈췄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GM은 지난 8일부터 GM의 결정에 따라 부평2공장 50% 감산 조치에 들어갔다. 상대적으로 많은 재고를 비축해 공급난 초반에 여유를 보이던 현대차도 최근 차량용 반도체 재고를 매주 확인하며 생산계획 조정에 나섰다.
차량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반자율주행 장치, 내비게이션 등의 전장부품은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사진=현대차
차량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 반자율주행 장치, 내비게이션 등의 전장부품은 반도체를 필요로 한다. 사진=현대차
문제는 현대차가 야심차게 선보인 전용 전기차 아이오닉 5다. 일반적으로 내연기관 완성차 한 대에는 300~400개의 차량용 반도체가 들어간다. 전장부품이 대폭 늘어나는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이상이 들어간다. 현대차는 올해 아이오닉 5를 국내 시장에서 2만6500대 이상, 전 세계에는 7만대 이상 판매한다는 계획이다. 내연기관 자동차 70만대 분의 반도체가 필요한 셈이다.

당장 주문을 하더라도 제때 물량을 받기는 어렵다. 차량용 반도체의 리드타임(업체에 발주하고 납품받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통상 12주가 소요됐는데 현재는 38주까지 길어졌다. 주문을 하더라도 부품을 받기까지 빠르면 6개월, 길면 10개월이 걸리는 것. 현대차는 유럽 수출용 아이오닉 5 양산은 내달 시작할 예정인데, 기존 재고가 바닥을 보이면 생산 차질로 이어질 수 있다. 4월로 예정된 내수용 양산도 장담할 수 없다.

기아와 제네시스의 전기차 출시 일정에도 비상이 걸렸다. 기아는 오는 7월 CV(프로젝트명), 제네시스는 하반기 JW(프로젝트명)를 선보일 예정이다. 아이오닉 5와 같이 전용 플랫폼 E-GMP를 바탕으로 개발돼 차량용 반도체가 대거 사용된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자동차 업계가 모두 전기차 생산에 나서며 MCU 수요는 크게 늘었지만, 게임·전자·가전기기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낮은 MCU 공급은 줄어들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MCU는 높은 신뢰성과 안전성을 요구하기에 신규 업체 진입도 쉽지 않다"며 "단기간에 해결이 어려운 품귀 현상은 아이오닉 5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업계의 전기차 출시 일정에 암초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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