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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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면담 내용을 녹취하고, 녹취 자료는 노동조합에 전달하라.'

르노삼성자동차 노동조합이 최근 각 조합원에 보낸 '희망퇴직 관련 노조 대응지침'이다. 지침은 회사 측과의 희망퇴직 관련 면담에 대한 대응 방안을 자세하게 제시하고 있다.

지침에는 우선 조합원이 회사 측과 희망퇴직 관련 면담을 하게 되면 취지를 물어보고, 녹취부터 하라고 돼있다. 면담 내용과 녹취 자료는 노조 대의원 등에게 전달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만약 희망퇴직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재면담 등 희망퇴직을 유도한다면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고발하겠다는 내용도 명시했다.

구체적으로는 면담 전 먼저 휴대폰 녹취 기능을 실행하고, 가급적 날짜와 시간을 입력하라고 안내했다. 희망퇴직 관련 내용이 아니면 삭제하겠다고 밝히면 된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면담이 끝나면 다른 사람 음성이 추가되지 않도록 녹취 기능을 끄고, 녹취 내용을 공유하겠다고 주변에 알리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조합에 넘기라고 설명했다.

녹취가 안되면 면담 내용을 문자 등 메시지로 적어 담당 부서장에게 보내라는 내용도 있다. 이와 함께 '사실관계 확인서'를 작성하라는 게 지침의 주된 내용이다. 박종규 르노삼성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희망퇴직을 진행하는 경영진에게 노조의 위력을 보여주자"며 "2월 1~2일 파업 찬반투표에서 절대적인 찬성율로 경영진을 압박하자"고 했다.

르노삼성은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경영 상황이 급격히 악화된 데 따른 것이다. 르노삼성의 지난해 판매량은 11만여 대로, 전년 대비 34.5% 급감했다. 생산량은 31.5% 줄었다. 판매량과 생산량 모두 16년 만의 최저치다. 2012년 이후 8년 만에 영업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크리스토프 부떼 르노삼성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최근 한 포럼에서 회사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르노삼성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는데, 한국의 높은 임금과 세금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게 부떼 CFO의 지적이다. 그는 르노그룹 내 부산공장과 경쟁 관계인 스페인 바라돌리드공장을 예로 들며 “바라돌리드공장의 시급은 부산공장의 62%에 불과하며, 재산세(지방세)는 3분의 1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가운데 나온 노조의 대응지침은 파업 찬성율을 높이려는 전략이라는 게 업계 시각이다. 노조는 1일부터 이틀간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한다. 국내 완성차업체 중 유일하게 2020년 임금·단체협상을 타결하지 못한 르노삼성차 노사는 지난 7일 새해 들어 첫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이후 본협상이 네 차례 진행됐으나 진전은 없는 상황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일감이 줄어 700억원대 적자를 기록했다"며 "올해 불확실한 경영 환경 속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모든 임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시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노조 관계자는 "이번 투표는 파업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며 "파업권을 확보하더라도 투쟁 수위는 쟁의대책위원회에서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일규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