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부품 공급이 끊겨 가동을 멈춘 현대차 전주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지난 2월 부품 공급이 끊겨 가동을 멈춘 현대차 전주공장 모습. 사진=현대차
한국 자동차 시장이 2020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어려움 속에서도 선전했지만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파업으로 재차 몸살을 앓았다.

25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국내 시장은 연초부터 코로나19 확산으로 부품 공급이 끊겨 여러 공장이 멈췄고 수출도 급감했다. 정부의 개별소비세(개소세) 감면으로 숨통이 트였지만, 노조의 파업도 겪어야 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의 여파는 연초부터 국내 자동차 업계를 강타했다. 부품 업체들의 중국 공장에서 생산되던 자동차 전선제품인 와이어링 하네스 공급이 끊겨 완성차 공장도 멈춰선 것이다. 올 2월 4일 쌍용차를 시작으로 현대차와 기아차, 르노삼성, 한국GM 등 모든 완성차 업체가 일시적으로 생산을 중단해야 했다.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회관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자동차 부품업계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김범준 기자bjk07@hankyung.com
지난 3월 서울 서초구 자동차산업회관에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자동차 부품업계 간담회가 열렸다. 사진=김범준 기자bjk07@hankyung.com

연초부터 코로나19…뿌리부터 말라갔다

완성차 생산중단 사태는 3월 들어 대부분 정리됐지만, 이 시기 자금력이 취약한 부품 협력업체들의 경영 여건은 더욱 어려워졌다.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지난 2월 부품업체 평균 가동률이 50% 수준까지 떨어져 줄도산 우려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했다.

통상 부품업체들은 완성차 업체의 연간 생산계획을 바탕으로 회사를 운영한다. 현대차가 2020년 그랜저 13만대 생산을 계획했다면 부품업체도 13만대 분량의 부품을 공급하기 위한 설비를 갖추고 인력을 충원하는 식이다. 특히 금형 등은 초기 투자비가 많이 들기에 연초부터 발생한 생산중단 사태는 중소·중견기업인 2차·3차 협력업체들의 체력을 크게 깎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차체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현대자동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 생산라인에서 직원들이 차체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사진=현대차
이후로도 코로나19 사태는 자동차 업계를 계속해 괴롭혔다. 미국 제너럴모터스(GM), 메르세데스-벤츠의 모기업 다임러와 BMW, 폭스바겐 등 해외 자동차 업체들도 공장을 멈췄고, 이들 업체에 부품을 수출하던 국내 부품업체들은 추가적인 타격을 입었다.

현대차그룹 해외 공장들도 코로나19 사태를 피하지 못했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사업장 운영 중단 조치를 내리면서 현대차에서는 인도와 미국, 체코 등의 공장이 휴업했고 기아차도 미국과 슬로바키아 공장 등이 일시적으로 문을 닫아야 했다.

국내 완성차의 해외 수출도 함께 끊겼다. 지난 4월 국내 업체들의 완성차 수출은 19만6803대로 전년 대비 72.6% 급감했다. 하반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며 수출이 다소 회복됐지만, 올해 1~11월 국내 완성차 업계 수출 실적은 171만4702대에 그쳐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1.9% 감소한 상태다. 연간 수출 200만대도 16년 만에 무너졌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개별소비세 인하 폭을 30%로 줄이고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했다. 사진 = 한국경제신문DB
정부가 지난 7월부터 개별소비세 인하 폭을 30%로 줄이고 기간을 연말까지 연장했다. 사진 = 한국경제신문DB

업계 지원에 개소세까지…약빨 먹혔다

연초부터 자동차 생산과 수출, 부품 수출이 모두 줄어들며 국내 자동차 산업은 뿌리부터 마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외에 비하면 가장 양호한 편이었다. 중소 부품업계가 어려움에 처하자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협력업체 납품대금 5870억원을 최대 2주 이상 조기 지급하고 3080억원의 현금을 무이자로 지원하며 국내 업계 구명에 나섰다.

정부의 개소세 감면도 자동차 업계 숨통을 틔워줬다. 정부가 5%인 자동차 개소세를 3~6월 70% 감면해 1.5%로 낮추며 소비 증진에 나선 덕분에 침체됐던 국내 자동차 시장은 V자 반등에 성공했다. 2월 8만1722대까지 쪼그라들었던 국내 완성차 5사 실적은 3월 개소세 효과에 15만1025대를 기록, 84.8% 급증했다.
쌍용차 대리점에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스1
쌍용차 대리점에 차량들이 전시되어 있다. 사진=뉴스1
내수 시장은 상반기 내내 꾸준히 성장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상반기 내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7.2% 증가한 93만464대를 기록했다. 해외 각국이 공장을 닫고 대리점 영업을 중단시키면서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이 추락했지만,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자동차 시장으로 거듭났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는 올해 내수 시장 규모가 191만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 11월까지 국내 완성차 5사 내수판매는 147만3973대, 수입차는 24만3440대가 팔려 171만7000여대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 유럽, 중국 등 주요 자동차 시장이 두 자릿 수 침체를 보이는 가운데 한국 시장만 성장한 것이다.

여름에 시작한 임단협…겨울되자 '피업'

자동차 업계는 코로나19에 입은 피해를 만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이내 새로운 장벽을 만났다.

올해 국내 완성차 5사 가운데 쌍용차와 현대차를 제외한 3사는 임단협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쌍용차와 현대차는 코로나19 사태를 감안해 무분규 임금동결로 임단협을 마쳤다. 그러나 기아차와 한국GM은 부분파업이라는 진통을 겪었고 르노삼성은 해를 넘겨 협상을 이어가게 됐다.
부분 파업 중인 기아차 근로자들이 4시간 근무를 마치자 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부분 파업 중인 기아차 근로자들이 4시간 근무를 마치자 퇴근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7월 임단협 교섭에 착수한 한국GM은 총 15일의 부분파업 끝에 이달 18일에야 올해 임단협을 타결했다. 파업으로 2만5000여 대의 생산손실이 발생했고, GM 본사에서는 한국 철수 가능성까지 내비치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결국 임단협은 연내 타결됐지만, 2022년 부평2공장 신차 배정 결정권을 쥐고 있는 GM의 시선이 부정적으로 굳혀지고 있어 업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기아차도 올해 임단협에서 4차례에 걸쳐 총 14일간 부분파업에 나섰다. 이로 인해 3만대를 웃도는 생산손실이 발생했다. 지난 22일 마련한 잠정합의안에는 기본급 동결과 성과급 150%, 격려금 120만원, 재래시장 상품권 150만원, 잔업 복원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진통 끝에 마련한 잠정합의안은 오는 29일 조합원 찬반투표를 거칠 예정이다. 투표에서 가결되면 기아차도 연내 임단협을 마무리하게 된다.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본사에서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사진=뉴스1
르노삼성 임단협은 지난 9월 6차 실무교섭 이후 11월 노조위원장 선거가 겹치며 교착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그 사이 르노삼성 노조는 금속노조 가입을 시도하다 조합원 찬반투표에 부결돼 실패했고, 중앙노동위원회로부터 쟁의조정 중지 결정을 받아 조합원 찬반투표만 거치면 파업도 가능해졌다. 11월 노조위원장 선거에서는 기존 박종규 위원장이 연임하며 임단협 난항도 예고됐다. 아직까지 교섭이 재개되지 않아 르노삼성 임단협은 해를 넘길 전망이다.

쌍용차는 11년 만에 위기에 처했다. 노사가 협력해 티볼리 에어를 재출시하고 올 뉴 렉스턴을 선보이며 하반기 실적이 개선됐지만, 장기간 부진에 더한 코로나19 타격을 극복하긴 역부족이었다.

여기에 마힌드라의 2300억원 규모 투자 계획 철회와 매각 지연까지 겹면서 은행권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결국 쌍용차는 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쌍용차는 3개월의 회생절차 유예기간 매각 작업을 마치고 유동성 문제를 조기에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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