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벨로스터 N이 장애물을 회피하는 짐카나 코스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2020 벨로스터 N이 장애물을 회피하는 짐카나 코스를 주행하고 있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이동수단이지만, 레이싱 스포츠로 즐기는 이들도 적지 않다. 완성차 업체들도 이들을 만족시킬 고성능 자동차를 개발·출시한다. 수익에 도움이 되진 않더라도 자신들의 기술력을 시장에서 증명할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벤츠 AMG, BMW M 등이 대표적이다.

현대차도 오랜 기간 고성능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결국 i30 N이 출시됐고, 뒤이어 벨로스터 N도 선보였다. 벨로스터 N은 레이싱 마니아 시장에서 성능을 인정받으며 많은 지지를 받았다. 다만, 시장 자체가 작아 판매량은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벨로스터는 2018년 4254대, 2019년 2175대로 2년간 6439가 팔렸는데, 이는 지난해 준중형 세단 아반떼 판매량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현대차는 벨로스터 N을 완성도 높은 고성능 차로 만들었지만, 부족한 대중성 탓에 마니아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린 결과다.
현대차가 8단 습식 DCT를 단 2020 벨로스터 N을 선보였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현대차가 8단 습식 DCT를 단 2020 벨로스터 N을 선보였다.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올해부터는 상황이 달라질 전망이다. 벨로스터 N의 대중성을 낮췄던 가장 큰 요인인 자동변속 기능의 부재가 해결된 덕분이다. 지난 21일 경기도 용인 AMG 스피드웨이에서 만난 2020 벨로스터 N은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탈 수 있는 고성능 해치백으로 손색이 없었다.

2020 벨로스터 N의 가장 큰 특징은 '스마트스트림 습식 8DCT'다. 8단 습식 더블 클러치 변속기를 탑재하면서 최고출력 275마력, 최대토크 36.0kg.m의 성능과 자동변속이라는 편의성을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RPM과 속도에 맞춰 기어를 변속하는 수동변속기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많은 운전자들에게 매력으로 다가갈 요소다.

실제 운전도 일반적인 승용차를 몰듯 매우 편리했다. 물론 차의 크기는 상당히 작다. 2020 벨로스터 N의 전장·전폭·전고는 4265·1810·1400mm이며 축간거리는 2650mm다. 준중형 세단인 아반떼보다 작고 이미 단종된 소형 세단 엑센트와 비슷한 정도다. 앞좌석만 탄다면 불편할 일이 없지만 뒷좌석에도 사람을 태운다면 비좁게 느껴진다. 다만 짧은 축간거리는 더욱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8단 습식 DCT가 적용된 2020 벨로스터 N 실내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8단 습식 DCT가 적용된 2020 벨로스터 N 실내 모습. 사진=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시동을 걸자 여느 승용차와는 확연히 다르게 부릉대는 배기음이 귀를 간지럽혔다. 이내 장애물을 세우고 연속 회전으로 피해 주행하는 슬라럼과 짐카나 체험에 나섰다. 주행모드 스포츠를 기준으로 60~70km/h 사이 속도의 급가속과 급회전을 반복했지만 벨로스터 N은 안정적인 그립력을 유지하며 장애물을 빗겨났다. 변속은 자동으로 이뤄졌는데, 변속충격 없이 매우 부드러운 전환을 느낄 수 있었다.

내친 김에 런치 컨트롤도 시도했다. 런치 컨트롤은 정지 상태에서 가속 페달과 제동 페달을 동시에 밟아 엔진 RPM을 높인 뒤 빠르게 출발하는 기법이다. 일반적인 자동차에서 두 페달을 동시에 밟을 경우 잘못 조작한 것으로 판단해 작동하지 않지만, 스포츠 성향 자동차에서 이렇게 조작할 경우 굉음과 함께 차가 꿈틀대며 급발진 준비에 들어간다.

8인치 내비게이션에서 런치 컨트롤 사용 설정을 한 뒤 작동시켰다. 벨로스터의 런치 컨트롤은 흔들림 없이 안정적으로 속도를 빠르게 모습을 보였다. 여타 스포츠카 대비 다소 낮은 배기량의 한계인지 '붕-붕-붕붕붕' 하고 짧게 끊기며 울리는 배기음도 다른 스포츠카들과 비교하면 귀엽게 느껴졌다.

내친김에 인스트럭터(교관)의 지도에 따라 서킷에 올랐다. 5대의 차량이 함께 서킷을 돌았는데, 준수한 성능은 물론 벨로스터 특유의 '팝콘배기'를 느낄 수 있었다. 서킷은 고속 주행을 위한 스포츠 모드와 N모드로 주행했다. 스포츠 모드에서도 제법 크다고 느껴졌던 엔진음은 N모드에서 더욱 커지며 재미를 더했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잠시 떼거나 변속할 때 벨로스터 N에서는 '타다닥'하는 팝콘 튀기는 소리가 울려왔다.
서킷을 주행하는 2020 벨로스터 N 모습. 사진=현대차
서킷을 주행하는 2020 벨로스터 N 모습. 사진=현대차
2020 벨로스터 N에는 만화 속에서 등장하던 부스터도 달려있다. 서킷 직전 구간에서 핸들에 달린 NGS(N Grin Shift) 버튼을 누르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자 계기반에 20초를 세는 원형 그래픽이 나오며 속도가 급격히 높아졌다. 엔진은 20초 동안 한계까지 성능을 뿜어냈는데, 고배기량의 유명 스포츠카가 부럽지 않은 순간이었다. 100km/h를 넘나드는 속도로 180도 회전 코스에 진입했지만, 차량이 밀리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약 30분 동안 서킷을 도는 내내 언더스티어나 오버스티어(운전자 의도보다 핸들이 덜 돌아가거나 더 돌아가는 현상)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역동적인 운전을 즐기는 이들에게 2020 벨로스터 N은 좋은 선택지가 된다. 3654만원에 달하는 풀옵션 가격은 엑센트급 크기의 차가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지만, 서킷에서 경주가 가능한 자동차의 가격으로는 저렴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서킷 주행에 필수적인 차동제한장치(LSD)를 포함한 퍼포먼스 패키지는 일종의 '인질 패키지'로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서킷 주행을 감안해 벨로스터 N을 구매한다면 LSD가 필수적이기에 퍼포먼스 패키지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이 패키지를 선택하면 서킷 주행에 적합하지 않은 19인치 휠이 장착된다.

서킷 주행을 즐기는 마니아들은 파손 가능성이 높은 19인치 휠 대신 18인치 휠 사용을 선호한다. 결과적으로 서킷 주행을 염두에 두고 벨로스터 N을 구매한다면, LSD를 위해 추가금을 내고 옵션을 선택한 뒤 다시 사비를 들여 휠과 타이어를 바꿔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셈이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