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매터널 사고에서 여러 명 목숨 구한 이종태(45) 씨 사연 훈훈
-타타대우차 '인생트럭' 공모전 대상에 선정돼
타타대우상용차 인생 트럭 공모전 대상작으로 선정된 이종태 씨의 사연이 우리 사회에 훈훈함을 일으키고 있어 주목된다. 지난 2월 순천-남원 간 고속도로 사매터널 사고 현장에서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인명을 먼저 구조한 희생 정신 때문이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한국도로공사는 이 씨에게 '의인상'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본지는 당시 사고 현장을 기억해 인생트럭에 공모한 이종태 씨 사연을 타태대우로부터 제공받아 직접 소개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만든 감동적인 사연이기 때문이다. 이하 본분은 이종태 씨가 직접 작성한 편지이며, 전재를 기본으로 하되 일부 단어는 문맥에 맞춰 수정됐다. 편집자

저는 2019년 5월 타타대우 프리마 480 25t 카고를 구매해 운행하던 45세 이종태입니다. 9살 아들과 저를 만나 고생만 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2014년까지 운영하던 사업의 부도로 어린 아들, 그리고 아내와 함께 경남 양산으로 연고를 옮기며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운전 밖에 없었습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5년 동안 25t 카고 기사 생활을 하다 지인의 권유로 2019년 5월 타타대우 프리마 480 25t 카고 트럭 2대를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사업 부도에 따른 신용 여력이 없어 친구 명의로 출고해 열심히 일에 몰두했습니다. 제가 운전하는 차는 명의만 친구일 뿐 제가 직접 대출금을 내면서 책임졌습니다. 선뜻 이름을 빌려준 친구가 은인 같아 한 팀으로 죽을 만큼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생긴 것에 감사하고 얼른 신용을 회복해 명의로 돌려야겠다는 일념 하에 일에만 매진해 평균 1,500만원 대의 월 매출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집에 가는 것도 어려웠을 만큼 차에서 먹고 자며 열심히 운행한 결과 손익 분기점을 2~3개월 지나 안정권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어린 아들 통닭이라도 마음 편하게 시켜 줄 수 있었고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워터파크도 처음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늘 고생만 하며 몸이 아픈 아내에게도 열심히 사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습니다.
행복도 잠시, 불행은 순간

하지만 지난 2월 불행하게도 순천~완주 고속도로 사매 2터널 대형 추돌사고로 광양에서 충남 아산으로 향하던 제 차는 사고 현장에서 100% 전소됐습니다. 제 가족을 먹여 살려온 인생트럭이었던 차가 눈앞에서 활활 타 잿더미가 돼버렸습니다. 기사 생활때부터 꼭 마련하고자 해서 구입한 트럭이었습니다. 그 소원을 이룬지 7개월 만에 너무나 큰 사건이었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고 불에 타는 모습이 평생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입니다.
사건의 전말입니다. 2월17일 12:20분경 북남원 IC 부근부터 약한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눈이 도로에 쌓여 있더군요. 그래서 리타더(브레이크) 2단을 넣어 속도를 65km/h까지 낮춰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었습니다. 그 때 사매1터널 중간 부분에서 사람의 정차 신호를 확인하고 즉시 리타더를 3단까지 내려 속도를 자연스럽게 줄이고 있었습니다. 눈길인 데다 적재물로 무거운 코일을 싣고 있어 급제동보다 살며시 제동을 걸었습니다. 순간 룸미러를 보니 뒤에서 화물차가 미끄러지듯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순간 제 차의 코일이 낙하할까 우려돼 지체 없이 1차선으로 변경해 사매 2터널 입구 부근에 무사히 정차했습니다. 그리고 뒤를 확인하니 승용차 2대도 나란히 정차하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5명 숨진 터널사고에서 '의인'으로 불린 사람

하지만 그 순간 사매 2터널 중간부분에서 대형 폭발과 함께 화염이 솟아 올랐습니다. 순간 논란 저는 급히 전화기만 챙기고 슬리퍼만 신은 채 안전지대로 피하는 중에 5톤 윙바디 차가 승용차 여러 대를 충격하면서 제 차의 적재함 위까지 올라타는 상황을 목격했습니다. 마치 윙바디 차가 승용차를 빗자루로 쓸듯 돌진하는 것처럼 보였고 제 차 뒤 승용차 탑승자들은 윙바디 차와 추돌 여파로 정신이 혼미한 상태처럼 보였습니다. 뒤 쪽에서는 계속 추돌이 일어나는 급박한 상황이었는데, 저는 즉시 5명의 부상자를 가드레일 밖으로 대피시켰습니다. 지금도 꿈인지 생시인지 믿기지 않습니다. 그때는 무조건 사람부터 살리자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사람부터 구해야 한다

그 후 사무실에 이 상황을 알리고자 통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아주머니 한 분이 아이가 차 안에 있다며 도와 달라고 뛰어나오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저는 슬리퍼만 신은 채 즉시 터널로 다시 뛰어 들어갔습니다. 5t 윙바디 차 밑에 깔린 승용차에는 일가족 4명이 있었고, 그 중 아빠와 아들이 갇혀 있었습니다. 저는 먼저 운전석 쪽으로 뛰어 갔지만 아이부터 꺼내 달라는 요청에 따라 반대편으로 간 다음 다른 남성 한 명과 뒷좌석 아이를 먼저 구했습니다. 저 또한 터널 내 유독가스를 꽤 많이 마신 지라 상당히 어지러웠지만 그래도 아이를 안고 사매 1터널 반대쪽으로 구급차를 기대하며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아수라장인 현장에 구급차가 들어올 공간은 없었고 의식이 없는 아이를 안은 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심정은 허무와 절망감마저 생겼습니다. 그래도 일단 주위 사람들에게 119에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통화를 계속 요청하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행히 5분 뒤에 아이 아빠도 무사히 빠져나오는 것을 보고 안도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있었을까? 어느덧 구급 대원들이 도착했고 한참을 함께 부상자들을 도와주고 나서야 제가 추운 겨울에 점퍼도 없이 슬리퍼 한쪽만 신고 눈길 위를 뛰어다니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한기가 몰려오더군요.

그렇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터널 입구에 정차했던 제 차에도 불길이 솟구치는 중이었고 저는 한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곧 구급 대원들의 본격적인 화재진압이 시작됐고 저는 경찰과 고속도로공단에 신상을 알려준 뒤에 현장을 빠져 나왔습니다.

슬픔과 안도의 교차

약간의 안정을 찾고 여러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프리마의 리타더(브레이크) 성능이 떨어졌더라면 저는 아마도 터널 중간 부분 폭발 현장까지 밀고 들어갔을 것이었고 그 생각이 드니 아찔했습니다. 저 또한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고 사랑스러운 아들과 아내 얼굴도 못봤을 것이라 여기니 눈물부터 흐릅니다.

그리고 터널 안에서 많은 사망자가 나왔는데 그 분들을 생각하면 너무나 안타깝더군요. 뉴스로만 보던 일이 제 인생에 일어나 며칠 동안 너무 힘들었고, 눈만 감으면 제 차가 불에 활활 타는 모습이 떠올라 잠을 자기도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제가 책임지고 할부금을 낸다고 하지만 제 친구에게도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왜 나는 이리도 되는 일이 없나'라는 마음이 힘듭니다.
5명 숨진 터널사고에서 '의인'으로 불린 사람

사고 며칠 후 소식을 들은 제조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구매 후 7개월 운행밖에 되지 않았지만 제조사가 위로와 격려를 보내줘 조금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러면서 '인생트럭 스토리텔링 응모전'이 있다는 안내를 받고 이렇게 응모하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며칠 후 여러 언론에서 사고 현장 구조 활동 사례를 소개하면서 부끄럽지만 한국도로공사 의인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린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 줄 수 있어 마음의 위로가 되더군요.

사건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르겠지만 하루 빨리 해결돼 제가 같은 회사의 차주가 될 날을 기도합니다. 아울러 큰 사건을 겪으며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은 제 마음을 다독여 주신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사고로 돌아가신 분들 몫까지 열심히 살 것을 이 글을 통해 다짐합니다.

글/이종태 정리/편집부

*이 글은 타타대우차 인생트럭 공모 당선작으로 주최사로부터 편지를 제공받아 소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