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어맨, 렉스턴에 이어 3번째 쌍용차를 가질 수 있을까 [김보형 기자의 시승기]
쌍용자동차의 연간 내수 판매량은 10만대쯤 된다. 연간 국내 자동차 판매량이 180만대 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시장 점유율은 10%에도 못미친다. 주위에서 "쌍용차를 샀다"는 이야기를 듣기 어려운 이유다.

그런 쌍용차를 2번이나 구매하는 게 흔치 않은 일이지만 우리집이 그랬다. 1997년 출시된 대형 세단 '체어맨'과 2001년 나온 준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렉스턴'을 연이어 구매했다.

그시절 쌍용차는 현대차가 갖지 못한 '아이덴티티'가 있었다. 투박하지만 남성미가 있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인상이었다. '체어맨이 고급스럽다'는 건 쌍용차의 기술 제휴사였던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후광효과일 수도 있다. 아무튼 쌍용은 뻔한 현대차와 분명 달랐다.

벤츠S클래스에 적용됐던(지금은 사라짐) 와이퍼 1개 스타일을 본딴 체어맨(차량 뼈대인 플랫폼도 벤츠 E클래스)은 다른 국산 대형 세단이 가지지 못한 '감성'을 갖고 있었다. '대한민국 1%'를 표방한 렉스턴 역시 우직한 경쟁차(현대차 SUV 테라칸)와 달랐다.

하지만 사라진 대우그룹과 중국 상하이차, 법정관리 등을 거치면서 쌍용만의 아이덴티티는 퇴색된 게 사실이다. 2015년 티볼리로 소형 SUV 시장을 석권했지만 과거처럼 남다른 매력은 없다. 이마저도 최근엔 현대차와 기아차의 SUV 신차 물량 공세에 주춤한 형편이다.

◆"실내는 확 바꿨다"

쌍용차가 코란도와 티볼리의 부분 변경 모델인 리스펙 코란도와 리스펙 티볼리를 출시했다. 회사 규모상 신차를 자주 내놓을 수 없는 쌍용차의 눈물어린 '판매 확대' 전략이다. 이름도 겸손하다. 리스펙(RE:SPEC)이란 이름은 "고객을 존중(Respect)하는 마음을 담아 가장 선호하는 사양으로 상품을 재구성(RE:SPEC)해 새로운 가치를 제공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시승 코스는 서울 양재동에서 경기도 이천까지로 왕복 약 100㎞ 구간이었다. 갈 때는 리스펙 코란도, 돌아올 땐 리스펙 티볼리를 시승했다.

부분 변경 모델 인만큼 외관에 눈에 띄는 변화는 없다. 엔진이나 변속기 등 주행성능도 그대로다. 코란도는 작년 2월 출시됐으니 판매한지 1년을 갓 넘은, 아직 신차다. (육안으로 확인할 순 없지만 이번 리스펙 코란도는 전고를 10mm 높였다고 한다. 다시 봐도 모르겠다.)
체어맨, 렉스턴에 이어 3번째 쌍용차를 가질 수 있을까 [김보형 기자의 시승기]
가장 달라진점은 인포콘(INFOCONN) 서비스였다. 인포콘은 정보(Information)·엔터테인먼트(Entertainment)·모바일 연결성(Mobile Connectivity)의 줄임말로 쌍용차가 지난 2일 출시한 커넥티드카서비스 브랜드다. 블루링크(현대차)와 유보(기아차) 같은 개념으로 쌍용차도 스마트카 시대에 합류했다.

인포콘의 시작은 스마트폰이었다. 별도의 앱을 통해 원격 시동은 물론 문 열고 닫기, 에어컨과 히터를 제어할 수 있었다. 덥거나 추운날 유용한 기능으로 보인다.

◆"음성인식으로 심심하지 않다"

리스펙 코란도에 탑승해 음성으로 내비게이션 목적지를 설정했다. 그 다음 (쌍용차측의 지시대로) "벚꽃 엔딩 틀어줘"라고 말하니 지니뮤직이 바로 노래를 틀어줬다. 지니뮤직 등 스트리밍 서비스는 월 8800원의 이용요금은 별도로 내야 한다. (또 시킨대로) "지구는 몇살이야"고 묻자 백과사전을 검색해 46억년이라고 알려줬다. SK텔레콤의 "아리야~" 같은 음성인식이 차 안으로 들어온 셈이다.

안전을 지켜주는 유용한 기능은 또 있다. 사고로 에어백이 작동했을 때 인포콘 상담센터가 3차례 차주에게 전화를 걸어준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구난신고도 대신 해준다. 쌍용차는 이 서비스를 업계 최초로 10년간 무상 제공한다.

운전석은 최근 트렌드를 따라 항공기 조종석(콕핏)을 형상화했다. 10.25인치 풀 디지털 클러스터(계기판)이 적용돼 시인성도 좋은 편이다. 내비게이션 등 AVN 스크리는 조금 작은 9인치다. 클러스터와 AVN 스크린을 디자인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은 조금 아쉽다.

고속도로에 들어선 뒤엔 지능형 주행제어(인텔리전스어댑티브컨트롤크루즈·IACC) 시스템을 시험해봤다. 속도 및 차간거리를 설정해 놓으면 자동으로 차량을 제어하는 기능이다. 2500만원대(2509만원 C5 플러스 트림부터)에 내비게이션과 IACC가 적용되는 점은 경쟁차들과 비교해서도 가성비가 좋다는 평가다.

시승한 차는 1497cc가솔린 엔진을 탑재해(1597cc 디젤모젤도 있다) 디젤 특유의 '웅'하는 소음은 없었다. 볼보·미니 등 글로벌 46개 메이커의 모델을 통해 검증받은 아이신의 GENⅢ 6단 자동변속기는 매끄러운 변속감을 준다. 170마력답게 가속 성능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리스펙이란 겸손한 이름답게 신모델임에도 가격은 오히려 내렸다. 인기가 많은 모델인 C5플러스트림은 2620만원에 2509만원으로 111만원 떨어졌다. C3플러스(2389만원->2287만원)도 가격이 내려갔다.

◆"2000만원으로 SUV 탄다"

돌아오는 길에는 쌍용차의 핵심 차종인 리스펙 티볼리를 시승했다. 인포콘 기능은 코란도와 동일하게 적용돼 커넥티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소형 SUV답게 실내 공간은 빠듯하다. 최고출력 163마력을 내는 가솔린 엔진은 일상 주행엔 큰 문제가 없다. 코란도와 마찬가지로 아이신의 GENⅢ 6단 자동변속기가 들어갔다. 고속주행시 풍절음은 꽤 있다. (오디오를 작동하면 거슬리는 수준은 아니다.)
체어맨, 렉스턴에 이어 3번째 쌍용차를 가질 수 있을까 [김보형 기자의 시승기]
1999만원짜리 V:3 트림부터 차선 중앙 주행을 유지하는 '차선중앙유지보조(CLKA)와 전방추돌경보(FCWS) 등 다양한 안전사양이 들어간다. 이 역시 경쟁 차종에선 보기 어려운 면이다. 리스펙 티볼리도 코란도와 마찬가지로 주요 인기 트림 가격을 기존보다 최대 100만원까지 내렸다.

세계의 명차는 이미 한국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지갑이 홀쭉할 뿐이다. 2000만원 초반 가격대로 소형 SUV(티볼리)를, 2500만원대로 준중형 SUV(코란도)를 살 수 있다면, 그것도 어지간한 옵션을 포함해서다.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는 합격점이다.

다만 체어맨과 렉스턴이 지니고 있었던 쌍용만의 아이덴티티는 더이상 느낄 수 없다. 3번째 쌍용차를 구매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져든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