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으로 도망친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 회장이 르노의 영향력 약화를 위해 닛산자동차와 일본 정부가 공모했다고 8일(현지시간) 밝혔다. 일본 검찰의 조사에 대해서는 "인격 살인"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곤 전 회장은 레바논 베이루트의 프레스신디케이트에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닛산에 대한 르노의 영향력을 없애기 위해 일본 정부가 나를 제거한 것"이라며 "일본 사법당국이 근거 없는 혐의로 자백을 강요했다. 도쿄지방검찰청은 정치 검찰"이라고 말했다.

곤 전 회장은 프랑스 르노자동차가 지난 1999년 빚이 21조원에 달하던 일본 닛산자동차 지분 43.7%를 인수한 뒤 파견한 경영자다. 부도 위기에 처한 닛산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스타 경영자가 됐다. 곤 회장은 20년 가까이 경영체제를 유지했고, 독립 경영을 이어왔던 르노와 닛산의 합병도 추진하고 있었다.

곤 전 회장의 경영체제는 지난 2018년 11월 일본 검찰이 전격 체포에 나서며 일시에 무너졌다. 일본 검찰은 그가 급여를 축소 신고하고 회사 돈에 손을 댔다고 주장한다. 곤 전 회장은 160억원에 달하는 보석금을 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달 29일 자가용 제트기를 이용해 레바논으로 도주했다.

기자회견에서 그는 "일본 검찰이 하루 8시간 이상 조사했고 변호사 입회도 거부했다"며 "조사 과정에서 가족까지 잡아가겠다고 협박했다. 일본 정부의 부당한 박해를 피해 도망쳤다"고 말했다. 또 "일본에 계속 있었다면 유죄를 받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검찰에서 기소한 사건 가운데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비중은 99.9%에 달한다. 일본인보다 외국인에 대한 유죄 판결이 더 많다는 게 곤 전 회장의 주장이다. 그는 "일본 검찰의 수사 방법은 국제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계속 싸우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본 검찰의 기소 원인으로도 르노와 닛산의 합병을 막기위한 정치공작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본 동료들 중 몇몇이 르노가 닛산에 미치는 영향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옳았다"면서 "나를 제거하는 계획에 일본 정부가 개입돼 있다"고 강조했다. 사이카와 히로토 전 닛산 사장과 경제산업성 출신 사외이사 등의 이름을 직접 언급했고 일본 정부 관계자의 실명은 레바논 정부를 고려해 밝히지 않겠다고 했다.

곤 회장이 떠난 닛산은 실적과 주가 모두 지속 하락세다. 곤 회장이 최고경영책임자(CEO)를 맡았던 2017년 닛산의 순이익은 7469억엔에 달했지만, 이사회가 만장일치로 그를 해임한 2018년은 3191억엔에 그쳤다. 지난해 순이익은 1100억엔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그간 든든한 우군이던 르노도 닛산의 '쿠데타' 탓에 등을 돌렸다.

곤 전 회장의 기자회견 직후 일본의 모리 마사코 법무상은 긴급 성명을 내고 "일본에서 도주한 곤 피고인은 인터폴에 수배된 상태"라며 "일본 사법시스템에 대한 허위정보를 전파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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