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의 흥행을 계기로 프리미엄 소형 SUV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기아자동차
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의 흥행을 계기로 프리미엄 소형 SUV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사진=기아자동차
자동차 업계가 중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시장의 대형 SUV 인기가 머지않아 중·소형 SUV로 넘어갈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최근 자동차 시장의 주인공은 누가뭐래도 대형 SUV다. 과거에는 낮은 연비와 불편한 승차감, 비싼 가격 등의 이유로 외면받았지만, 주52시간 근무제 정착으로 야외활동을 하는 인구가 늘고 대형 SUV도 세단 못지 않은 승차감과 연비 효율성을 갖추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가족을 모두 태우고 짐도 충분히 실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도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말 대형 SUV 팰리세이드를 선보여 소비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다른 자동차 업체들도 각기 대형 SUV를 앞다퉈 선보이며 경쟁에 나섰다. 현재 국내 시장에는 약 30종에 달하는 준대형·대형 SUV가 공급되고 있다.

◆ 구매층 한정…"대형 SUV 붐 2~3년이면 끝"

대형 SUV 인기는 지속될 수 있을까? 앞다퉈 대형 SUV를 공급해온 자동차 업체들 사이에서는 회의적인 목소리가 늘고 있다. 대형 SUV 구매층이 매우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팰리세이드는 사전계약된 2만506대 가운데 85.2%의 계약자가 남성이었고, 40대와 50대가 각각 37%, 26.9%로 약 70%를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1~9월 수입 대형 SUV 구매 연령대를 보더라도 중장년 남성이 다수로 나타난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대표적인 대형 SUV인 포드 익스플로러는 9월까지 개인 판매량 2845대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67.3%인 1916대는 구매자 연령이 40대 이상으로 나타났다. 메르세데스-벤츠 GLE는 79%, 볼보 XC90도 63% 이상이 40대 구매자로 나타났다.
국내 출시를 앞둔 포드의 대형 SUV 2020 올 뉴 익스플로러. 사진=포드
국내 출시를 앞둔 포드의 대형 SUV 2020 올 뉴 익스플로러. 사진=포드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대형 SUV의 수요층은 중장년 남성으로 제한된 편"이라며 "단순히 소득 문제라기보단 현재 젊은 세대에게 대형 SUV가 매력적이지 않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 2030세대는 나이가 들더라도 대형 SUV를 선호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 큰 차 필요없는 혼족의 시대

업계는 증가한 비혼족과 늦어진 결혼 연령, 결혼을 하더라도 맞벌이를 하며 아이를 갖지 않는 딩크족 증가 등이 영향을 줄 것으로 바라본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분기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911명을 기록했다. 지난해 서울시 합계출산율도 0.76명에 그쳤다.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녀의 수가 1명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이 관계자는 "90년대만 하더라도 자녀를 2명씩 낳는 부부가 많았고, 당시 자녀들이 성년이 되니 공간이 넓은 대형 SUV 수요가 늘어난 것으로 본다"며 "동승할 자녀가 없다면 넓은 공간을 필요할 이유도 없지 않겠느냐. 대형 SUV 붐은 2~3년 안에 끝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다른 수입차 업체 관계자도 "대형 SUV는 여러 가족을 편하게 태우기 위한 용도인데, 1인가구가 주류로 부상한 요즘 시대에 적합한 차량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수입차 업체 관계자도 "현대차의 베뉴 광고를 보고 기발하다고 감탄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차를 혼자 또는 둘이 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 않느냐"며 "자신에게 필요한 기능을 갖춘 작은 차면 충분하다는 메시지에 공감한다. 이따금 큰 차가 필요하면 (이미 큰 차를 가진) 부모님께 빌려도 충분하다"고 말했다.

◆ 혼족-셀토스가 연 작은 프리미엄의 시대

업계는 시장의 관심이 중·소형 차량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예측했지만, 대형차 대비 낮은 수익성은 과제로 남았다. 경차의 경우 1대당 제조사 마진이 50만원 남짓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소형 SUV 베뉴를 출시하며 '혼라이프'를 내세웠다. 사진=현대자동차
현대차는 소형 SUV 베뉴를 출시하며 '혼라이프'를 내세웠다. 사진=현대자동차
한 국내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소형차는 저렴하다는 인식이 강해 가격탄력성이 매우 낮다"며 "가격이 저렴하게 책정되는 탓에 팔아도 수익이 없으니 반가운 흐름은 아니었다"고 털어놨다. 대형차 가격을 100만원 높이면 소비자들이 쉽게 납득하지만, 소형차 가격을 100만원 높이면 반발이 심해 가격을 높일 수 없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의 흥행은 업계에 해답을 만들어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셀토스는 소형 SUV임에도 풀옵션 가격이 중형 SUV 뺨치는 3300만원에 달한다. 가격대가 높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흥행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출시 직후부터 생산라인이 100% 가동되고 있지만,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출고대기 기간이 2개월을 넘길 정도다.

셀토스는 그간 소형차에서 선택할 수 없었던 첨단·안전 옵션을 지원하기에 최상위 트림을 선택하는 소비자 비중도 높다. 신차 구매 플랫폼 겟차는 셀토스 구매 상담의 60% 이상이 최상위 노블레스 트림에 몰렸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셀토스의 흥행을 계기로 1~2인이 쓰기 적당하도록 작으면서도 최고급 사양을 갖춘 프리미엄 중·소형차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프리미엄 소형차에 대한 기아차의 실험이 성공한 셈"이라며 "시장 수요가 확인된 만큼 가격을 높이고 고급 사양으로 무장한 준중형·소형 SUV들이 점차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