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제어 없는 주행, 자동차의 순수함 느껴져

해마다 첨단 기술을 듬뿍 담은 자동차들이 국내외에서 대거 출시된다. 이들은 세대를 거듭할수록 몸집을 키우고 엔진과 섀시, 여러 편의·안전 시스템을 전자식으로 제어하도록 진화해 왔다. 이제는 자율주행, 전동화, 커넥티드 등 미래 자동차 기술이 대세를 이루며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에 직면하고 있다.

한편으론 옛 차에 대한 향수가 떠오를 때가 있다. 빛바랜 차에서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추억을 되새겨볼 수 있는가 하면, 넘쳐나서 복잡한 기능보다 비어있는 것에서 여유를 찾고 싶어서다. 국산차 역사에서도 그런 차들이 적지 않았다. 이 가운데 국내 마이카 시대를 열었던 현대자동차 포니는 국민들에게도 특별한 존재였다. 1984년형 포니2 CX를 잠시 만나봤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디자인
포니의 외관은 반듯한 직선들로 이뤄졌다. 패스트백 스타일의 차체는 이탈리아 디자인 공방인 '이탈디자인'의 수장이었던 조르제토 쥬지아로가 빚어낸 작품이다. 전면부는 일자로 배열한 사각형의 헤드램프와 그릴로 채웠다. 그릴 한쪽엔 타원형 엠블럼 이전의 현대차 레터링이 자리한다. 차체 앞뒤엔 출시 당시 북미 안전 법규를 충족하기 위한 5마일 범퍼를 장착했다. 시속 5마일 이하로 충돌할 때 차체 손상을 막기 위해 자바라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측면은 낮은 차체, 큰 창틀, 작은 바퀴가 주는 비례감이 수수하다. 지붕과 차체 옆을 구분하는 배수 레일과 얇은 A·B필러, 별다른 디자인을 갖추지 않은 13인치 크기의 스틸 휠도 왠지 모르게 정이 간다. 후면부는 트렁크 리드를 살짝 접어 단조로움을 줄였다. 이전 포니와 차별화한 요소이기도 하다. 테일램프는 색깔별로 각 기능을 담은 사각형들이 테트리스를 연상케 한다. 차체 크기는 길이 4,184㎜, 너비 1,566㎜, 높이 1,327㎜, 휠베이스 2,340㎜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실내는 단출한 대시보드와 오래된 직물 특유의 냄새에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35년 전에 등장한 만큼 지금 보편화된 편의품목들은 찾아볼 수 없다. 도어트림엔 파워윈도우 스위치 대신 다이얼식 손잡이가 존재하며 고가의 에어컨을 적용하지 않은 송풍구는 말 그대로 바람만 내뿜는다. 얇디얇은 4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조향과 경적 기능만 담았다. 현대의 이니셜(HD)을 새긴 점도 예스럽다.

계기판은 속도계와 시계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방향지시등을 비롯해 배터리, 냉각수, 엔진, 안전벨트, 도어, 초크밸브 경고등도 아이콘처럼 배치했다. 계기판 우측엔 유행에 따라 세로형 공조 레버를 마련했다. 센터페시아엔 오토 리버스 기능의 오디오 데크를 준비했다.

시트 포지션은 스포츠카 수준으로 낮다. 하지만 차 자체의 높이가 낮은 탓에 머리공간이 넉넉한 편은 아니다. 지금의 경차보다 좁은 차체 폭은 실내에서 확실히 체감할 수 있다. 헤드레스트가 없는 뒷좌석은 2+2 쿠페 2열 수준의 공간감을 보여준다. 트렁크는 당시 흐름을 반영해 테일램프 상단까지만 열리는 방식을 채택했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성능
동력계는 카뷰레터 방식의 연료 분사 시스템을 채택한 미쓰비시 1.4ℓ 가솔린 4G33 엔진을 얹어 최고 92마력, 최대 12.5㎏·m를 발휘한다. 수치만 낮을 뿐 공차중량 920㎏의 차체를 움직이는 데엔 아직도 무리가 없다. 털털한 엔진음에서는 세월이 느껴질 뿐이다.

변속기는 4단 수동을 조합했다. 도심 제한속도에 이르기 전에 이미 4단으로 주행할 정도로 빠듯한 변속을 요구한다. 그러나 기어가 물리는 감각이 직관적이어서 변속이 재미있다. 제원상 최고속도는 150㎞/h지만 이제 80㎞/h 이상 내기가 버겁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핸들링은 전자 제어 없이 모두 운전자의 손발과 차체로만 이뤄져 솔직하다. 심지어 직진을 할 때에도 보타를 지속적으로 해줘야 한다. 스티어링 휠 역시 보조 모터가 없어 선회가 쉽지 않다. 특히 유턴을 하거나 주차를 할 때엔 땀이 날 지경이다. 가냘픈 차체와 바퀴, 뒷바퀴 굴림 방식이 주는 몸놀림은 순수하고 제법 스릴있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승차감은 가볍고 거칠다. 전방 시야로 확인한 것보다 노면의 굴곡을 자세히 느낄 수 있다. 차체가 작기도 하지만 리프 리지드 스프링의 리어 서스펜션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올드카의 감성을 감안하자면 불쾌한 경험은 아니다. 방음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감과 약한 제동력 역시 올드카 특성상 문제될 건 없다.

▲총평
포니는 이름 그대로 조랑말의 특성을 담고 있다. 왜소하지만 곧은 생김새와 경쾌한 몸놀림이 이를 방증한다. 세월만큼 낡았지만 정체성을 가릴 순 없는 셈이다. 이 점은 포니 외에 모든 올드카가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시승]때묻지 않은 그 시절의 차, 현대차 포니2

올드카는 소형과 대형, 엔트리와 플래그십을 떠나서 또 다른 이동성의 가치를 지닌다. 특히 그 차가 소형차라 하더라도 국산 첫 고유 제품이라면 더욱 그렇다. 한국자동차산업협회 통계에 따르면 현재(2019년 4월 기준) 국내에 등록된 포니는 6,438대(해치백)다. 아직 적지 않은 개체가 존재하는 만큼 이들이 오랫동안 가치를 보존하길 바라본다.

시승 지원 : 라라클래식

구기성 기자 kksstudio@autotimes.co.kr


▶ [시승]상쾌한 움직임에 빠지다, BMW Z4
▶ [시승]후륜구동의 참맛, BMW 3시리즈로 느끼다
▶ [시승]미드십 컨버터블의 정수, 페라리 488 스파이더
▶ [시승]든든한 기둥, BMW X5 M50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