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보다 합의가 필요할 때

요즘 한국 자동차산업을 두고 '위기'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과거 어느 한 순간도 '위기' 아닐 때가 없었다는 말도 수긍이 간다. 특정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마다 다를 수밖에 없어서다. 그래서 '위기'라는 말만 나오면 언제나 '위기 조장 vs 안일한 생각'이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그런데 자동차산업은 글로벌 갈등이어서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사실을 간과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제와 같은 문제는 첨예한 갈등 합의가 되지 않아도 결국 표심에 따라 결정될 수 있지만 자동차는 그렇지 않다. 이익이 충돌하면 곧바로 시장 규모 싸움으로 연결된다. 따라서 자동차산업은 외부 변동이 있을 때마다 국내가 출렁거리기 마련이다. 이때마다 충격을 줄이려 안간힘을 쓰지만 결코 쉽지 않다. 단적으로 연간 180만대만 만들어 국내에 팔면 그만일텐데 이미 대한민국의 자동차 생산은 400만대를 넘어선 지 오래다.
[하이빔]한국 자동차산업, 위기인가 아닌가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외부 충격으로 국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대처 방안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미국의 무역확장법이다. 여기서 확장이란 일자리가 많이 걸려 있는 미국 내 생산 증대를 의미한다. 미국 소비자에게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미국에서, 미국인이 만든 자동차를 팔아야 한다는 게 트럼트 대통령의 생각이다. 그간 자유로운 교역을 지향했던 미국이었지만 정작 미국 내 자동차 부문 일자리가 줄어드니 미국 우선 주의가 강력하게 부상하는 중이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한국도 그렇게 하자는 목소리를 낸다. 한 마디로 '상호 평등주의(?)'에 입각한 생각이다. 그러나 평등주의 실행은 곧 한국 자동차 제조업의 추락을 의미한다. 연간 410만대를 만들어 미국에 90만대를 수출하는 한국이 미국의 보호 무역을 평등하게 받아들이면 미국 수출 물량은 85만대가 줄어야 한다. 미국이 한국에 5만대를 수출하니 '5만대 vs 5만대'가 평등인 셈이다. 이 때 80만대는 미국에서 생산돼야 한다.

한국에 GM 공장이 있으니 미국이 보호를 강화하면 서로 피해라는 주장도 있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누가 더 많은 피해를 입느냐다. 부평 및 창원공장에서 생산돼 미국으로 건너가는 트랙스와 스파크를 미국에서 생산하면 남은 한국지엠의 3개 공장 가운데 2개는 사라져야 한다. 마찬가지로 르노삼성 부산공장에서 만들어져 미국으로 수출되는 닛산 로그 또한 미국 생산으로 전환되면 르노삼성은 국내 공장 절반을 줄여야 한다. 현대기아차도 일부 생산을 미국으로 이전하면 마찬가지 입장이다. 그래서 '평등'을 주장할수록 오히려 한국의 피해가 막대하다. 자동차산업에서 평등보다 힘의 논리가 우선인 배경이다.

그럼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단연 시장 규모다. 미국은 완성차를 수입하지 않아도 연간 1,900만대의 소비 시장이 있다. 그러니 1,900만대를 미국에서 모두 만들어 미국에만 팔아도 자동차산업이 견고하게 유지된다. 반면 한국은 내수가 180만대다. 그런데 한국에서 410만대를 만든다. 180만대만 국내에서 판매되면 무려 230만대의 생산이 줄어야 한다. 부품회사는 쓰러지고 자동차산업은 황폐화된다. 정부가 돈 들여 살려도 만들어 팔 곳이 없으니 실업자는 넘쳐 나고 이들은 정부를 향해 불만을 쏟아낸다. 그리고 표심으로 선출되는 정치인들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나랏돈을 쏟아 부어 생계를 지원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감당하기 어렵다. 누가 권력을 잡아도 보호 무역 기조가 바뀌지 않는 한 자동차산업의 추락을 막을 수 없는 시나리오다.

미국이 아니면 자동차 팔 곳이 없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중국, 유럽 등으로 눈을 돌리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러시아, 인도 등에 80만대를 수출하면 된다고 주장한다. 이론으로는 가능하지만 관건은 미국 수출량을 나머지 지역이 모두 흡수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연간 2,900만대의 중국은 여전히 관세장벽을 유지하고, 유럽은 이미 포화다. 게다가 아프리카는 수요 증가율이 저조하다. 다시 말해 미국 수출이 막히면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뾰족한 대책이 없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유일한 방법은 미국이 관세 장벽을 높일수록 수출 가격은 낮추는 방안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갈등은 불가피하다. '비용절감'은 곧 누군가의 손해이거나 앞으로 생겨날 이익의 포기를 의미해서다. 기업이 이익을 줄이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줄어 지속 가능성에 문제가 생기고, 임금이 줄거나 오르지 않으면 근로자의 생계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서로 양보하는 합의가 필요하지만 지금의 국내 상황을 고려할 때 '합의'는 좀처럼 쉽지 않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이런 점을 '위기'로 진단한다. 제품개발 및 판매 경쟁은 기업 스스로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지만 외부 충격이 왔을 때 내부 갈등 해결이 어렵다는 것 말이다. 따라서 이제는 '한국 내 자동차산업'이 아니라 글로벌 내 '한국의 자동차산업'의 시각을 바꿔야 한다는 조언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쟁자는 일본 토요타 공장, 독일 볼프스부르크의 폭스바겐 공장이 아니라 미국 내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이라는 것을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