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수는 있지만 국민적 공감대 있어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공개된 국내 기름 가격 정보에 따르면 현재 휘발유 1ℓ에 부과된 교통에너지환경세는 529원이다. 그런데 실제 세금 부과 근거인 '교통에너지환경세법'에는 475원으로 명시돼 있어 54원을 더 거두는 셈이다. 대통령령으로 475원의 30%에 해당되는 141원 이내 범위에서 올리고 내릴 수 있도록 근거가 마련돼 있어서다. 마찬가지로 경유는 340원을 거둬야 하지만 지금은 35원 많은 375원이 부과돼 있다. 추가 세율로 보면 휘발유는 약 12%, 경유는 10% 가량이 더해진 상황이다.

[하이빔]기름 값 상한제, 안하나 못하나

그런데 조세가 아닌 국가 에너지 공급 측면을 규정한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르면 석유의 수입 및 판매 가격이 현저하게 등락하거나 등락 우려가 있을 때 산업부는 국민생활의 안정과 국민경제의 원활한 운용을 위해 석유판매가격의 최고 및 최저액을 정할 수도 있다. 대통령령으로 교통에너지환경세의 증감 세율을 탄력적으로 바꿀 수 있고, 산업부가 최저가와 최고가를 고시할 수 있으니 한국에서도 기름 값 상한제는 충분히 도입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목소리다.

'기름 값 상한제'란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 국내에서 판매되는 기름의 세금을 낮추고, 안정기에 접어들면 다시 세율을 높이는 제도다. 동일본 대지진 회복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잠시 중단됐지만 일본은 이미 시행 중이며, 심한 유가 변동 충격을 줄이려는 일부 국가에서도 마련돼 있다. 일본의 경우 기름 값의 상한선을 정하되 기준은 3개월 평균 휘발유 소매가격이다. 3개월 연속 ℓ당 160엔을 넘으면 세율은 마이너스로 바뀌고 130엔 밑으로 내려가면 다시 기존 세율로 환원된다. 실제 일본 유류세법에 따르면 기름 값이 비쌀 때 ℓ당 53.8엔의 세금은 28.7엔, 세율로는 46% 가량이 인하된다. 그래서 우리도 이런 제도의 필요성은 오래 전부터 제기돼 왔다. 급격한 기름 값 인상이 국민 생활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어서다.

하지만 시행되지 않는 이유는 조세저항 때문이다. 여기서 조세저항이란 유류세가 떨어질 때는 국민 모두가 반기지만 다시 안정화 돼 세율이 오를 때 생기는 저항을 의미한다. 정확하게는 세율의 '환원'이지만 이를 '인상'으로 받아들인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과거 기름 값이 오를 때마다 '기름 값 상한제' 도입 목소리가 높았지만 매번 좌절됐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교통에너지환경세 최저 285원에서 최대 617원까지 조정 가능

그럼 2018년 6월4일 기준으로 몇 가지 경우의 수를 대입했을 때 정유사가 주유소에 공급하는 휘발유 및 경유 가격은 어떻게 변할까? 현재 정부가 운용 중인 휘발유 12%, 경유 10% 정도의 세액을 적용하면 휘발유는 ℓ당 1,544원, 경유는 1,349원이 된다. 그런데 법에 표시된 금액만을 기준 삼으면 휘발유는 1,461원, 경유는 1,295원으로 내려간다. 반대로 30%를 추가하면 휘발유는 1,681원, 경유는 1,453원이 되고, 기준 금액에서 30% 내리면 휘발유는 1,166원, 경유는 1,137원으로 달라진다. 한 마디로 세액 조정만으로 휘발유 기준 최대 500원 가량의 가격 조절이 가능한 상황이다. 이는 정부가 국제유가의 급격한 변동성에 개입할 수 없다면 세액 조절로 국민들의 유류비 부담 충격을 줄여주자는 목소리의 근거가 되는 대목이다. 게다가 '기름 값 상한제'는 정부 입장에서도 변동성이 큰 것보다 안정적인 평균 세수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어 도입을 촉구하는 근간이 되기도 한다.

물론 제도에 관한 얘기는 과거에도 있어 왔다. 그러다 최근 다시 흘러나오는 것은 상승세로 돌아선 국제 유가 때문이다. 중동 정세가 불안한 데다 저유가에 신음하던 산유국들이 유가 상승을 주도하면서 배럴당 70달러를 이미 넘었다. 자칫 100달러 시대가 다시 열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 경우 국민들은 유가 폭탄을 고스란히 맞아야 하고, 이는 곧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이 때 세액이 조정되지 않는다면 정부 세수만 늘어나고, 그 부담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기름 값 상한제'를 정부도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세율이 환원될 때 발생하는 조세저항이 걱정거리다.
[하이빔]기름 값 상한제, 안하나 못하나

결국 대책은 인식 전환을 위한 공론화다. 저유가 때 세율이 다시 오르는 점을 두고 '인상'이 아니라 '환원'이라는 국민적 의식이 있어야 도입이 가능해서다. 그런데 국민적 공감대를 얻어내는 것도 사실은 정부의 몫이다. 국민들에게 판단을 묻지도 않고 오로지 조세저항이 두려워 도입을 꺼리는 지금의 풍토를 놔두는 것 자체가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나아가 유류세 조정은 여야 정쟁의 대상조차 아닌 만큼 움직일 곳은 정부 밖에 없다. 좋은 제도인데, 단순히 조세저항만을 걱정해 도입을 외면하는 게 잘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은 이유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