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 페달' 밟은 수입차… 제값 주고 사면 '호갱님'
“혹시 대기업 다니세요?”

한 수입차 브랜드 매장에 들어가 상담받는 과정에서 딜러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삼성전자나 대한항공 같은 대기업에 다니면 추가로 100만원을 더 깎아주겠다”고 했다. 딜러가 내민 업무협약사 리스트에는 주요 대기업의 이름이 A, B그룹으로 나뉘어 빼곡히 적혀 있었다. A그룹은 100만원, B그룹은 50만원의 추가 할인 혜택을 준다.

수입차 전성시대, 파격할인 경쟁

10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 영동대로 수입차 거리. 수입차 브랜드의 할인 전쟁은 점입가경이었다. 아우디 매장에 들어가 대형 세단 A6(2018년형)를 보러왔다고 하자 “기본으로 1300만원까지 할인이 들어간다”며 “알아보고 온 금액에 최대한 맞춰드리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우디가 지난달 26일 한국 시장에 선보인 신차다. 기본 트림(세부 모델) 가격은 6170만원. 차값의 20% 이상을 할인해주고 있는 셈이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마찬가지였다. BMW의 준중형 세단 320d M패키지(5600만원)는 1000만원까지 할인이 가능했다. A딜러는 “지난달 초까지는 ‘트레이드인’ 할인이 더해져 더 싸게 구매할 수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트레이드인이란 일종의 보상판매다. 일정 수준의 조건을 만족하는 소비자의 차량을 업체에서 매입하고 새 차를 최대 500만원까지 추가 할인해주는 제도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320d는 지난 2월 1585대가 팔려 가장 많이 판매된 수입차 모델로 기록됐다. 지난달 최대 1500만원까지 할인 판매한 것으로 알려진 벤츠의 중형 세단 E200 아방가르드(6220만원)는 수입차 모델 중 3월 판매량 1위에 올랐다. 매달 할인 금액에 따라 베스트셀링 모델이 바뀐다.

독이 된 할인 판매?

지나친 판매 경쟁은 ‘제 살 깎아 먹기’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의 우려다. 경기 분당경찰서는 지난달 BMW 전직 딜러 B씨를 배임죄로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는 판매실적을 올리기 위해 자신의 돈이나 다른 구매자로부터 받은 차량 대금을 할인 보조금으로 유용하는 ‘돌려막기’식 영업을 하다가 한계에 이르렀다. 약속한 날짜가 지나도 차를 인도받지 못한 구매자가 판매사 측에 항의하면서 B씨는 덜미가 잡혔다. 도를 넘어선 할인 판매가 독이 됐다. 한때 BMW 판매왕에 오르기도 했던 B씨는 경찰에 “회사로부터 실적 압박을 많이 받아 무리해서 할인 판매를 했다”고 진술했다. 한 수입차 딜러는 “판매 경쟁이 심해지면서 딜러들이 자신의 판매 수당은 물론 사비를 털어가며 추가 할인에 나서고 있다”며 “차를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다”고 털어놨다.

소비자들도 새 차를 싸게 샀다고 마냥 좋아할 일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산차에 비해 여전히 비싼 수입차 부품값과 공임은 차를 모는 내내 소비자 몫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입차 업체들은 차를 싸게 파는 대신 수익률을 보전하기 위해 서비스 비용을 높게 책정한다”며 “할인 경쟁의 부담이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오는 구조”라고 꼬집었다.

수입차 업체가 할인 경쟁을 벌이며 판매량을 늘리는 데만 집중할 게 아니라 사후서비스망 확보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수입 자동차 등록대수는 189만6689대에 달한다. 작년 9월 기준 KAIDA에 등록된 수입차 서비스센터는 451곳이다. 서비스센터 한 곳당 4000대 이상의 차를 맡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수입차 판매량은 급증하고 있는데 서비스센터 숫자는 제자리걸음”이라며 “수입차 업체들이 과도한 할인 경쟁을 멈추고 서비스망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관 기자 pj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