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성동구의 BMW 전시장에서 고객이 가격이 1억원에 육박하는 BMW 6 시리즈 그란투리스모 차량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16일 서울 성동구의 BMW 전시장에서 고객이 가격이 1억원에 육박하는 BMW 6 시리즈 그란투리스모 차량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한국 수입차 시장의 양강이자 고급차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나란히 경신했다. 벤츠는 6만8861대를 팔아 지난해 국내 판매 1위를 기록한 현대자동차 그랜저(13만2080대)의 절반을 넘어서는 기염을 토했다. BMW도 전년 대비 23% 늘어난 5만9624대를 팔았다. 또 양사 한국 시장 전체 판매대수는 처음으로 일본을 앞질렀다. 7737대가 더 많았다.

'하차감' 즐기는 2030세대… 벤츠·BMW 고급차 12만대 넘게 팔려
대당 1억원 이상 고급 모델의 판매량 증가세가 특히 두드러졌다. BMW의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모델인 X5와 X6 판매는 전년 대비 각각 61.3%, 43.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벤츠의 서브 브랜드 AMG에서도 1억원 이상 차량 판매가 전년보다 23.8% 늘어났다.

롤스로이스 벤틀리 등과 같은 초고가 브랜드도 특수를 누렸다. 최저 4억원을 호가하는 롤스로이스는 지난해 86대가 팔려 전년 대비 62.3% 증가했다. 한국 시장 진출 이후 최고 실적이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는 지난해 평균 차량 가격이 2억원 이상인 벤틀리 브랜드를 전년보다 52.4% 늘어난 259대 판매했다.

(1) 소득 증가 억대연봉 65만명…가구 10%가 억대 소득

◆억대 연봉 65만 명 시대=기본적으로 고소득자의 지속적인 증가가 수입차 시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해 12월 국세청이 발표한 ‘2017년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귀속 근로소득세 연말정산 신고자 중 총급여액 1억원 초과자는 65만3326명으로 전년(59만6124명)보다 9.6%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2012년 41만5475명이던 ‘억대 연봉자’는 4년 만에 24만 명 가까이 늘어났다. 또 2016년 기준 금융소득만으로 연간 1억원이 넘는 소득을 올리는 사람도 1만8585명에 달했다. 금융소득으로 연간 2000만원 이상 버는 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자는 9만4129명에 달했다. 부유층과 고소득자 층이 그만큼 두터워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형재 국민대 자동차서비스연구소장(경영대 교수)은 “고가 수입차 시장이 급성장하는 것은 고액 연봉자 또는 자산이 많은 중산층 이상 소비자의 구매력이 커졌기 때문으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이 1억원 이상인 가구도 2016년 처음으로 전체 가구의 10%를 넘어섰다. 맞벌이 부부 증가로 가구당 구매력이 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2) 하차감 자기 만족이 중요…이왕이면 수입車

◆승차감보다 ‘하차감’=직장인 채선우 씨(28)는 지난해 11월 5000만원을 주고 BMW 320d M스포츠패키지를 구매했다. 그는 “사회 초년생에게는 부담스러운 가격대지만 어릴 때부터 이런 차를 사야겠다고 마음먹어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르쉐코리아 관계자는 “젊은 자동차 애호가에게 차는 단순히 탈 것 이상의 가치를 지닌다”며 “자신이 높은 가치를 부여한 차를 위해 다른 소비를 포기하거나 줄이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수입차업계에선 이런 성향을 ‘하차감’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차에서 내릴 때 느끼는 기분, 즉 남들과 다른 차를 운전한다는 데서 오는 만족을 뜻하는 말이다. 재규어랜드로버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수입차가 연간 20만 대 이상씩 팔려나가면서 이제 외제차를 타는 것만으론 개성을 표출하기 어려워졌다”며 “이런 이유로 고성능·고가의 수입차량을 구매하는 고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욕구를 분에 넘치는 과소비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3) 2030 고객 절반이 젊은층…2천만원대도 인기

◆고객 절반은 2030=20~30대가 수입차 시장의 주력 소비층으로 대두되는 것도 시장 확대를 견인하고 있다는 관측이다. 2016년 수입차 개인구매 고객 중 2030 비중은 46.0%에 달했다. 이상국 도요타 용산지점장은 “캠리와 캠리하이브리드 구매고객의 60% 이상이 20~30대”라며 “맞벌이하는 젊은 신혼부부의 가구소득이 늘면서 수입차 구매도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캠리와 캠리하이브리드는 지난해 한국 시장에서 도요타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한 모델이다.

여기에 국산차와 가격경쟁에서 밀리지 않는 저가 수입차의 잇따른 등장도 2030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특히 2000만원대 수입차는 브랜드별 전체 판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모델별 판매순위에서 10위에 오른 닛산의 중형 세단 알티마2.5는 2000만원대에 출시돼 지난해 닛산 전체 판매량의 58%를 담당했다.

푸조 2008은 경쟁 국산 차종의 상위 세부모델과 비슷한 가격대로 소형 SUV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4) 다양한 할부 금융 원금 유예 할부제 등...목돈 없어도 구매

◆‘일단 사고 보자’=수입차 업체들이 제공하는 다양한 할부제도도 고객 접근성을 키웠다. 2010년부터 시작된 원금유예 할부제도는 차값의 일부만 먼저 내고 36~60개월 뒤 한꺼번에 잔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당장 목돈이 없어도 수입차를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긴 셈이다.

하지만 이 같은 할부제도가 젊은 2030에 썩 좋은 결과만 제공해주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원금유예기간이 끝난 뒤 잔금을 치르지 못해 손해를 감수하고 중고차 시장에 차를 내놔야 하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중고차 시장에서 수입차 매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차 늘고 있다. SK엔카닷컴에 따르면 중고차 시장에서 2015년 17%의 점유율을 차지하던 수입차 매물은 2016년 20%, 지난해에는 26%까지 늘어났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각종 할부제도를 이용하면 손쉽게 수입차 시장에 진입할 수 있지만 과용은 금물”이라며 “자칫 카푸어(car poor)로 전락하거나 큰 손해를 보고 차를 되팔아야 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박종관/도병욱 기자 pjk@hankyung.com